'교수 5명 중 한 명은 창업' 연구성과 1등 대학의 창업 비결
[혁신창업의 길] 42. 울산과학기술원(U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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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로 척수손상 치료하는 교수 창업가
김정범(48)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생명공학 스타트업 슈파인세라퓨틱스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캠퍼스 내 줄기세포연구관 105동 2층엔 그의 연구실과 실험실, 그리고 회사 업무공간까지 같이 있다. 김 교수는 그간 연구해온 성체 줄기세포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2017년 회사를 설립했다. 교통사고 등으로 급성 척수손상이 생긴 환자를 위한 치료제 개발이 목표다. 의료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간 50만 명의 척수손상 환자가 발생한다. 기존 병원에서 하는 척수손상 치료는 이미 손상된 신경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신경을 압박하는 부서진 뼈를 제거하고 척추를 고정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슈파인세라퓨틱스는 줄기세포 기술을 바탕으로 손상된 신경재생을 유도해 끊어진 신경다발을 다시 살리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척수손상으로 뒷다리가 마비된 실험쥐에 신경세포 사멸을 방지하고 재생을 유도하는 ‘하이드로 젤’을 적용했더니, 운동신경과 감각능력이 다시 살아나는 결과를 확인했다. 김 교수는“현재 임상 1상 실험에 쓸 하이드로젤을 대량생산할 GMP 생산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캠퍼스 반대편 114동 경영관 6층엔 학부생이 창업한 바이오 스타트업 타이로스코프가 자리잡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환자 생체 데이터를 수집한 뒤 모바일로 상태예측 정보를 제공하는 솔루션‘글랜디(Glandy)’가 이 회사의 주력제품이다. UNIST 학부에서 경영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산업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박재민(31)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대학원생 신분이던 2020년 4월 타이로스코프를 창업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테크 스타트업 왕중왕전’에선 학생팀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누적 투자액은 17억원, 직원도 18명인 어엿한 스타트업이다. 박 대표는“글랜디를 사용하면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도 자신의 갑상선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매일 자신의 갑상선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불안감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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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서 먼 신생 대학의 '창업 대박'
UNIST는 개교 15년차의 신생 대학이다. 2009년 울산과학기술대라는 이름의 국립대로 개교해, 2015년 과학기술원으로 전환했다. 짧은 학교 역사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수ㆍ학생의 창업 비율은 국내 으뜸 수준이다. 지난 2월 기준, 전임교수는 330명인데, 교수 창업기업은 66개에 달한다. 교수 다섯 명 중 한 명, 20%가 창업한 셈이다. 이들 기업의 연매출을 합하면 1164억원, 누적 투자금액은 3078억원에 달한다. 고용인원도 321명이다.
김정범 교수의 슈파인세라퓨틱스는 UNIST 교수창업 기업 중‘아기’수준이다. 2020년 12월 코스닥 기업공개에 성공한 UNIST 1호 상장기업 클리노믹스는 게놈 연구의 권위자인 박종화(55)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창업한 기업이다. 시리즈C 단계까지 총 1090억원의 투자를 받고 상장을 준비 중인 2차전지 하이니켈 양극재 기업 에스엠랩은 국내 2차전지 연구분야 석학 조재필(54)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가 세운 회사다. 김건호(43) 기계공학과 교수는 급속 정밀 냉각기술 의료기기 기업 리센스메디컬을 세웠다. 최근까지 총 534억원의 투자유치에 성공했으며, 미국 샌디에이고에 곧바로 진출해 글로벌 시장을 개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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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생태계 부족하고, 인재 확보 어려운 단점도
학생 기숙사동 1층엔 2017년 설립한 955㎡(약 289평) 규모의 학생창업 전용공간인 ‘유니스파크’(UNISPARK)가 있다. 이곳엔 현재 7개 기업이 무료로 입주하고 있다. 최용준 창업팀장은“창업팀들에게는 전문가의 1대1 멘토링, 단계별 맞춤형 창업교육, 활동지원금, 입주공간 제공 등을 마련해주고 있다”며“R&D에서 나온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교수들의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클래스101이나 타이로스코프와 같은 주목받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UNIST에도 어려운 점은 적지않다. 학교가 위치한 울산이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여서 창업 관련 생태계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고, 주변 지역이 그린벨트 등으로 묶여있어 창업기업들을 위한 보육 공간과 직원들이 머무를 정주 여건도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학생창업 기업 클래스101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2018년 서울로 회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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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구중심 대학은 연구도 창업도 뛰어나야"
일반적으로 교수 창업의 가장 큰 부담은 연구와 교육에 지장을 준다는 점이다. UNIST는 교수가 창업을 할 경우 휴직은 최초 3년 후 3년을 더 할 수 있게 했고, 교수와 창업을 겸직할 경우 강의 시간을 줄이는 대신, 보수를 조정하는 ‘수업시수 선택권’제도도 마련하고 있다. 학생창업의 경우 2014년부터 ‘유니콘(UNICorn)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창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창업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서부터, 시제품을 제작하고, 국내외 시장 진출에 이르기까지 창업 전주기를 지원한다. 더 많은 학생이 ‘유니콘’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참여 학생에게는‘학점’을 인정해준다. 교내에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지원ㆍ육성)와 벤처캐피털(투자)를 겸하는 민간기업 선보엔젤파트너스가 입주해 활동하는 것도 강점이다. UNIST는 캠퍼스 내 부족한 창업공간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산학협력관’도 건설하고 있다. 지상 7층, 연면적 8723㎡ 규모의 산학협력관에는 교내 교원ㆍ학생 창업기업 뿐 아니라, 외부 기업들도 입주할 수 있다.
권순용 UNIST 산학협력단장 겸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UNIST의 창업지원제도는 거시적 측면의 위법적인 부분은 엄격한 룰을 적용하되, 가능한 부분의 규제는 최소화하자는 네거티브 지향 시스템”이라며 “연구기능을 하는 대학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창업기업이 공존하려면 실무적으로 부대끼는 요소가 많은데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규제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창업을 활성화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UNIST가 대학의 본연의 기능인 연구와 교육에 소홀히 하고, 창업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UNIST의 최대 강점은 교수진의 탁월한 연구력이다. 2022년 기준 논문 피인용도 상위 세계 1% 과학자(HCRㆍHighly Cited Researcher) 교수가 총 10명으로, 국내 대학 중 1위다. 논문의 질적 우수성을 평가하는 ‘라이덴랭킹’에서도 6년 연속 국내 1위를 지키고 있다.
이용훈 총장은 “좋은 연구중심 대학은 뛰어난 논문뿐 아니라, 그 논문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창업해 산업을 일으키는데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좋은 논문에서 나온 결과가 창업으로 이어져야 진짜 임팩트 있는 기업이 된다”고 말했다.
울산=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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