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부동산 비리 상관관계 해부…92년 선거판 파헤친 '대외비'

나원정 2023. 2. 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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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일 개봉 '대외비' 영화 VS 실화
1일 개봉하는 영화 '대외비'는 1992년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과 정치판의 숨은 실세 순태(이성민), 행동파 조폭 필도(김무열)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비밀 문서를 손에 쥐고 판을 뒤집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범죄드라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992년 부산,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조진웅)은 마지막 희망이던 지역구 공천이 하루아침에 무산된 뒤 선거판을 뒤흔들 ‘핵폭탄급’ 카드를 입수한다.
그건 바로 해운대구 재개발 계획이 담긴 부산시의 대외비 문서. 해웅은 이를 이용해 검은 돈으로 선거 자금을 마련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다. 부산의 숨은 실세 순태(이성민)는 자신이 짠 정치판을 망친 해웅을 상대할 계략을 짠다.


92년 선거판, 나쁜놈 VS 더 나쁜놈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대외비’(이원태 감독)는 선거를 앞두고 돈과 권력에 눈먼 악인들의 잔혹한 쟁탈전을 그린 범죄 드라마다.
지난해 개봉한 변성현 감독의 영화 ‘킹메이커’(2022)가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기점으로 부정 선거의 시초를 캤다면 ‘대외비’는 정치판과 부동산 비리의 상관 관계를 뿌리부터 파헤친다.
주인공 해웅부터 그를 돕는 조폭 필도(김무열)까지 악과 차악의 대결을 통해서다. 이 감독이 영화 ‘악인전’(2019), ‘법’과 ‘쩐(錢)’ 카르텔에 맞선 복수극 드라마 ‘법쩐’(SBS, 2022) 등 전작에서 일관되게 그려온 주제다.
1992년이란 시대 배경도 돋보인다. 14대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한 해에 치른 92년은 한국 정치가 크게 요동쳤던 때다. 무주택자에 저가 분양하려던 사업 부지를 민간 주택조합에 내준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 등 부동산 개발이 얽힌 권력형 대형 비리가 잇따라 터진 것도 이 시기 전후다.
이원태 감독은 “당시는 대선과 총선 중 하나만 져도 다 무너질 수 있다는 정치권의 위기감이 최고조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문민 정부가 들어서며 현대 사회 정치판에서 분수령이 됐던 시기”라면서 “관객이 쉽게 따라올 수 있는 부동산 개발 소재를 통해 권력의 무서운 속성을 직접적이고 원색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88올림픽 후 개발 거품…허상 좇다 IMF 터져"


영화 '대외비'로 27일 전화 인터뷰한 이원태 감독은 "권력과 인간의 본성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배경이 총선과 대선을 한해에 치른 1992년이었다"고 말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4대 총선은 2년 전 이뤄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여대야소 정국을 맞은 채 치러졌다. 초거대 여당이 된 민주자유당은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지만, 공천 과정의 잡음과 계파간 갈등, 부정 선거 의혹으로 국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각색을 겸한 이 감독이 이런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보탰다.
그는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됐다고 착각했던 시기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부르짖고 OECD에 가입했다. 사회에 거품이 끼고 개발 열풍이 불면서 국민들도 과소비 분위기였다. 그러다 바로 몇 년 뒤 IMF 금융위기가 터졌다. 허상을 좇다 나라가 도산 위기에 몰렸다”면서 “권력과 인간 본성에 대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배경으로 시기적절했다”고 말했다.
마산 출신인 이 감독은 80년대 후반 해운대에서 대입 재수를 하며 지켜본 부산 지역 변천사도 영화에 녹여냈다.

"권력자 부동산 개발은 고대 로마부터 반복된 일"


영화엔 해운대 재개발 지도가 특정 권력층 사이에 공유되고, 그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정황이 그려진다. 90년대 미래형 첨단산업단지 조성을 목표로 첫 삽을 떴지만, 주상복합 아파트‧호텔 등 고가의 주거‧상업지구가 된 부산 센텀시티 사례가 떠오른다.
이 감독은 “권력자가 자기 업적을 가시화하고 경제 효과를 위해 부동산을 개발하는 일은 고대부터 반복돼온 일이다. 로마 시대에 황제가 바뀌면 제일 먼저 경기장, 대형 목욕탕을 지었다. 중국 역사도 그렇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개발도 그런 사례”라면서 “개발 전 해운대는 거의 시골 느낌이었는데, 90년대를 통과하면서 어마어마한 관광지가 됐다. 제가 직접 목격한 드라마틱한 변화를 영화에 끌고 왔다”고 했다.
또 “부산이 사투리, 지역 분위기 등 영화적으로 재밌는 지역이어서 택했지만, 전국 어디로 옮겨도 상관없다. 권력의 민낯, 인간의 욕망, 믿음의 허약함이란 본질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고전서 따온 보편성…프랑스서 자기네 얘기냐더라"



선거 출마 후보, 숨은 실세, 정치 깡패 등 정치판 무대의 범죄 영화에서 익히 봐온 인물 구성은 고전에서 따왔다.
“주인공 해웅은 『파우스트』에서 인간의 욕망을 보여준 파우스트, 순태는 그에게 ‘권력을 쥐려면 네 영혼을 팔라’고 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죠. 『군주론』에서 ‘권력과 도덕은 별개다. 권력의 본질은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라 설파한 마키아벨리와도 비슷하고요.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선 '신념만 가진 정치인은 위험하다'는 부분을 참고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 대한 프랑스 배급사의 반응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악인전’을 함께한 프랑스 배급사 관계자가 ‘대외비’ 가편집본을 보고 '혹시 몇해 전 프랑스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갖고 시나리오를 썼냐'고 묻더군요. 내가 각색을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이 영화로 특정 정치 실화를 부각시키기보다는 동시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적 담론에 가닿고 싶었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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