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열광하는 '제로' 소주…설탕 없는데 달콤한 술 맛 비밀은 [비크닉]
#INTRO: 헬시플레저
초록색 병에 든 독한 술로 '부어라 마셔라' 했던 음주 문화가 술을 즐기는 문화로 점점 바뀌고 있어요. 건강한(Healthy)과 기쁨(Pleasure)를 합쳐 건강을 즐겁게 관리하자는 '헬시플레저'가 주류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죠.
독주하면 떠오르는 소주도 예외는 아니에요. 최근 소주 업계의 트렌드 변화를 알 수 있는 단어는 '제로(Zero)', 즉 무가당 소주예요. 설탕도 넣지 않았는데 달곰한 무가당 소주,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그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지난달 25일,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40240 독도소주' 공장을 찾았습니다. 소주 공장의 이모저모, 비크닉 독자 여러분께 처음으로 공개할게요.
#어떻게 만들지?
임진욱 독도소주 대표는 제품을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원재료인 쌀의 '향'이었다고 설명했어요. 즐기면서 마실 수 있는 술, 향이 나는 술을 만드는 게 목표였죠. 그래서 쌀을 직접 도정해서 써야겠다고 결심했대요.
갓 발효한 쌀은 막걸리 같은 형태의 술이 되는데요, 도수가 무려 70도에 달하는 독주예요. 건더기를 살짝 걸러 한 모금 마시니 입가부터 목까지 확 뜨거워지면서 제법 취기가 올라옵니다. 생쌀의 맛도 느껴지고요.
이 정도도 제법 그럴싸한 술이 완성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소주가 나오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과정의 시작이거든요. 맑은 소주를 만들기 위해선, 기압을 낮춰 막걸리 형태의 원주(元酒)를 끓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알코올을 빼내야 해요. 이렇게 증류한 원액에 물을 섞는 제성 과정을 거치면 70도짜리 술이 마법처럼 17도, 27도, 37도로 바뀝니다.
이때 섞는 물도 특별합니다. 울릉도 앞바다 해저 1500미터에서 끌어올린 해양심층수에서 농축한 미네랄을 역삼투압 처리해 얻은 순수한 물을 사용한대요. 단맛을 내는 과당(설탕) 대신 에리트리톨, 스테비아, 토마틴 등 천연 감미료를 추가해 달짝지근한 맛을 살리면 그제서야 소주 한 병이 완성됩니다. 단맛을 내지만 체내 흡수는 적은 원료들을 연구했다고 임 대표는 설명했어요.
#독도를 알리고 싶었다
"799-805는 독도의 예전 우편번호였어요. 판매 수익의 10%는 독도를 홍보하는 비영리단체에 후원했고요. 나라에서 도와주는 것도 없는데 독도를 알리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이렇게까지 노력한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임 대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독도를 알리고 싶어서 독도소주를 만들었어요. 이같은 기획 의도는 소주병 라벨 곳곳에 녹아있어요. 독도의 새 우편번호 '40240', 독도의 위도와 경도, 영어로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The beautiful island of Korea)' 등이요.
한때 독도 앞바다에 살았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춘 '강치', 섬에 독도의 자음과 모음을 풀어 쓴 'ㄷㅗㄱㄷㅗ'도 섬 안에 그려 넣었어요. 독도소주 생산지로 평창을 선택한 것 역시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직관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평창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도시니까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독도소주는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꼭 구입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새로운 지역 기념품이 됐어요. 울릉도 지역 7곳의 점포에서 전체 상품군 중 매출 3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요.
독도소주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해 세계인들에게 독도를 알리는 게 꿈입니다. 독도소주를 마시고 ‘독도가 뭐지?’ 정도만 떠올려도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로 소주 경쟁, 더 치열해진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무가당 주류가 처음 출시된 지난해 9월 이후 매출이 매달 두 자릿수로 성장해왔어요. 연령별 매출 비중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3%, 30대는 36%. 주로 2030이 찾는 술입니다.
다만, 제로라고 해서 '제로 칼로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류를 함유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열량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무가당 소주 제품의 영양 정보를 살펴보면 당류는 0%이지만 총칼로리는 일반 소주와 비슷한 300여kcal 수준이에요. 소주의 열량을 좌우하는 건 당보다는 알코올이기 때문이죠.
살을 빼고는 싶은데 술을 마시고 싶다면, 제로 소주를 마시는 것보다는 술을 자제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깁니다. 과유불급, 술은 기분이 좋을 정도로만 적당히 즐기자고요. 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다는 사실, 잊지 말아요!
#뱀발: 소주(燒酒)와 소주(燒酎)
같은 소주인데 어떤 곳에선 '燒酒'라고 쓰고, 또 어떤 곳에서는 '燒酎'가 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소주의 한자어를 燒酒로 정의했지만, 시판되는 대부분의 소주병 라벨을 확인해보면 燒酎라는 표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거든요.
책 『술의 여행』의 저자 허시명 평론가는 燒酎가 구한말에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일본식 조어(造語)라고 설명했어요. 1909년에 일본인의 주도로 국내에 주세법이 만들어지면서 일본식 증류주인 소주(燒酎, しょうちゅう)가 소주(燒酒)를 대체하게 됐다는 것이죠. 우리 역사에 소주(燒酒)가 등장한 것은 『고려사』 우왕 원년(1375)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소주는 사실 모두 소주(燒酒)였다는 게 허 평론가의 주장이에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도 燒酒는 100번 이상 나오지만 燒酎는 등장하지 않네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소주(燒酒)라는 말은 희미해졌어요. 하지만 전통주의 계보를 잇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 소주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을 겁니다.
박영민 기자 park.y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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