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딕 스키 자연설서 즐긴다…백패커들 모여든 '겨울 왕국'
울릉도 겨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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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행 쉬워졌네
이태 전 9월 포항 영일만과 울릉도 사동항을 잇는 울릉크루즈(최대 승객 1200명, 자동차 200대)가 취항하면서 울릉도 여행은 한결 수월해졌다. 울릉크루즈 박영인 과장은 “기존 쾌속선은 파고가 3m 미만이어야 운항할 수 있지만, 울릉크루즈는 5m까지도 운항할 수 있다”면서 “연간 100일을 훌쩍 넘겼던 여객선 결항률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울릉도의 겨울 풍경도 달라졌단다. 섬을 찾는 여행자가 크게 늘었고, 손님이 없어 겨우내 문을 닫았던 가게들도 겨울 장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크루즈 탑승객은 44만 명에 이른다.
지난달 22일 오후 11시 포항 영일만에서 출항하는 울릉크루즈에 몸을 실었다. 울릉도까지 장장 7시간에 달하는 뱃길이었지만, 몸은 편했다. 아무렇게 드러누워 뱃멀미와 사투를 벌이는 낡은 바닥형 좌석이 아니라, 침대 딸린 2인실 객실에 몸을 뉘었다. 샤워 시설도 있고, 조식도 딸려 나왔다. 오전 7시 20분, 도착 안내 방송에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울릉도 사동항 앞이었다. 동해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겨울왕국 나리분지
울릉도에서도 가장 많은 눈이 쌓인다는 나리분지로 이동하니 더욱 현실감이 없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구름처럼 분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지난 계절 더덕과 옥수수 따위로 무성했던 너른 밭은 아예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성인봉(984m)을 비롯해 나리분지를 감싼 봉우리들의 자태는 수묵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자동차로 4시간, 다시 울릉도까지 뱃길로 7시간, 그리고 눈에 갇혀 날린 이틀까지 이 모든 험한 여정이 단번에 용서되는 장관이었다.
나리분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눈이 그쳤어도 경사가 심해 제설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부 여행자는 멀찍이 차를 대고 두발로 고갯길을 넘었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에서 수많은 여행자가 미끄러지고 넘어졌다. 그래도 하나같이 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리분지 설원에서는 ‘울라 윈터 피크닉(2월 28일까지)’이라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코스모스 리조트와 울릉크루즈가 겨울 울릉도를 띄울 심산으로 올해 처음 축제를 기획했단다. ‘울라’는 울릉도 송곳봉을 닮은 고릴라 캐릭터의 이름이다.
축제 분위기는 딱 겨울 울릉도다웠다. 나리분지에서 캠핑을 한 백패커 몇몇이 이글루를 만들며 눈 세상을 만끽하고 있었고, 설원을 누비는 스키어도 눈에 띄었다. 최희찬 울릉산악회장이 “나리분지는 북유럽에서나 즐기는 ‘노르딕 스키’를 자연설에서 즐길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라고 귀띔했다. 축제장 한편에서 노르딕 스키와 신발, 스틱도 빌릴 수 있었다.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장비를 갖추고 설원 위에 서자 자동적으로 인생사진이 완성됐다. 천부버스정류장과 나리분지를 오가는 셔틀버스는 물론이고 야영장 이용과 캠핑 장비 대여 모두 공짜였다.
별미 천국 맛보기
울릉도 여행자의 첫 끼는 대개 뜨끈한 국물 요리다. 장시간 뱃길을 달리며 헛헛해진 속을 달래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명성 높은 오징어내장탕‧따깨비칼국수 대신에 엉겅퀴소고깃국으로 첫 끼를 시작했다. 울릉도 특산물인 물엉겅퀴는 타지역산과 달리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울릉도에서는 보통 시래기처럼 된장국에 넣어 먹는데, 얼큰하게 끓여낸 소고깃국에도 무척 잘 어울렸다.
꽁치물회도 울릉도 대표 향토 음식이다. 현포항 앞 ‘만광식당’이 소문난 맛집인데, 길쭉하게 썰어낸 꽁치 살을 오이·배‧상추 등과 함께 고추장·된장·설탕에 섞어 비벼 먹는다. 의외로 비린 맛이 전혀 없어,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다.
나리분지에서는 절대 빈속에 마을을 뜨면 안된다. ‘나리촌식당’ ‘산나물식당’ ‘야영장식당’ ‘늘푸른산장’ 등 산채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네 곳이 분지 안쪽에 포진해 있는데, 저마다 강력한 손맛을 자랑한다. 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겨울에도 갖은 나물 반찬이 상에 올라온다. 일명 ‘씨껍데기술’로 불리는 나리분지 전통주에 울릉도 더덕전까지 곁들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근래에는 젊은 감성의 카페와 디저트 가게도 속속 생기고 있다. 서면 태하리의 카페 ‘래우’에서 독도새우 닮은 독도새우빵을 내놓는다. 머리에는 초콜릿 앙금, 꼬리에는 치즈앙금이 들어간다. 코스모스 리조트 내 카페 ‘울라’에서는 ‘울릉도 해양심층수 소금을 넣은’ 소금라떼가 인기 메뉴다. 송곳봉과 코끼리바위 등 절경을 누릴 수 있어 투숙객이 아닌 손님도 즐겨 찾는 장소다. 사동항 카페 ‘미당’에서는 울릉도 특산물인 홍감자를 꼭 닮은 홍감자빵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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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섬 일주
울릉도가 낯선 여행자라면 첫날 저동항 인근 ‘울라 웰컴하우스’부터 들르는 것이 순서다. 지난해 5월 개관한 여행자센터인데, 이곳에서 여객선 운항정보와 관광지 운영 상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센터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손바닥만한 크기의 카드가 눈길을 끈다. 울릉도 대표 식당과 카페, 관광지, 여행 코스 등을 담은 일명 ‘보다 놀다 먹다’ 카드인데, 종류가 200여 종에 달했다. 카드 한장 한장이 안내지도이자 할인 쿠폰 역할을 해줘 취향대로 골라 담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울라 웰컴하우스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섬 일주를 해봤다. 항구마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저동항 명물 촛대바위를 시작으로, 해안 절벽을 따라 난 행남 해안 산책로를 걷고, 독도박물관을 구경했다. 일몰 풍경은 서면 남서일몰전망대에서, 저녁은 사동항 인근 고깃집에서 약소고기로 해결했다.
세 번째 울릉도 방문이었만, 북면 현포항 인근 언덕에 ‘예림원’이란 관광지가 있는 건 처음 알았다. 예림원은 울릉도 자생 분재 300점을 볼 수 있는 식물원이자, 조각공원이요, 북부 해안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다. 한겨울에 꽃망울 터트린 매화와 애기동백은 유난히 향이 깊고 색이 고왔다.
울릉도=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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