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중국의 색, 홍색 vs 백색
중국의 색(色)은 정색(正色)과 간색(間色)으로 나뉜다. 정색은 적(赤)과 청, 황, 백, 흑의 오색을 말한다. 간색은 서로 다른 정색이 여러 비율로 섞여 이뤄진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단연 홍(紅)색이다. 서양에선 홍색이 위험과 급함을 뜻하지만, 중국에선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행운과 경사는 모두 홍색으로 표현한다. 잔치를 여는 식당은 홍색으로 꾸미고 송나라 때부터는 신랑·신부가 홍색 혼례복을 입는 게 풍속이 됐다.
홍색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기에 아이들에게도 빨간 옷을 입힌다. 설엔 길(吉)하라고 세뱃돈을 홍바오(紅包)에 넣어준다. 근대 정치 운동에서 홍색은 진보와 전위(前衛)의 상징으로 쓰여 공산군은 홍군(紅軍)으로 불렸다. 홍군이 차지한 대륙은 홍색강산(紅色江山)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혁명 2세대는 홍이대(紅二代)라 일컫는다. 또 중국 해커는 홍커(紅客)라 말한다.
그런 중국에 지난해 말 백(白)색의 도전이 몰아쳤다.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중국인이 A4 흰색 종이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아무것도 쓴 게 없는 백지였지만 그 뜻을 중국 경찰도 시민도 모두 알았다. “봉쇄가 아닌 자유를 달라”는 무언의 외침이었다. 백색은 고대 중국에서 흉사나 불길, 사람이 죽었음을 상징한다. 흰색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항복이다. 동서양이 비슷하다. 중국에서 패전한 군사는 백의로 갈아입고 투항했다. 2차 세계대전 말 미군이 독일로 진격하자 독일인의 집 창가마다 하얀 침대보가 걸렸다. 저항은 없다는 표시였다.
한데 중국 인민은 이번에 역설적이게도 투항의 색으로 거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무려 3년을 끌던 봉쇄 정책이 풀렸다. 중국 인민 사이엔 이제 “백지 시위가 효과가 있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중국의 의과대학 여러 곳에서 임금과 처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백지 운동이 중국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왔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 흰색은 시작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백(白)은 상형문자다. 일(日)자 위에 한 획을 삐친 것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모습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제일 먼저 명령한 게 “빛이 있으라”가 아니었나. 그래도 중국의 바탕색은 뭐니뭐니해도 홍색이다. 이 홍색 바다에 뛰어든 백색 파문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게 될지 새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징조는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중국 곳곳에서 금지된 폭죽을 터뜨리며 경찰과 충돌하는 중국 민중의 모습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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