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 베트남서 패스트푸드 아니다"…韓최대 흑자국 된 비결
베트남 현지 버거 패스트푸드 시장 1위. 베이커리 1위, 증류주 1위, 제과 파이 시장 점유율 1위, 멀티플렉스 1위-.
한국 식품·유통 기업들이 지난해 베트남에서 거둔 성적표다. 베트남이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으로 떠오르면서 현지에서 활약 중인 한국 기업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베트남 무역수지는 342억5000만 달러(약 43조원) 흑자다. 연간 기준으로 베트남이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무역협회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주요 수출 품목은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석유제품이지만, 특히 베트남에선 K-식품·패션·뷰티·프랜차이즈도 수출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숨은 공신’으로 꼽힌다.
현지화 메뉴·인테리어, 주차 서비스까지
롯데리아는 베트남 현지에서만 270개 매장을 운영하며 버거 패스트푸드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매출은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실적을 뛰어넘어 1000억원(추정치)을 돌파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롯데리아는 고급 레스토랑이자 치킨 맛집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현지 식문화를 반영해 밥과 치킨·햄버거 패티, 야채, 베트남식 수프를 추가한 메뉴와 현지 식당과 차별화한 카페형 인테리어, 무선망 인터넷 등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베트남에서 38개 매장을 운영하는 CJ푸드빌의 뚜레쥬르도 현지 베이커리 사업자 가운데 1위다. 과거 프랑스 영향으로 로컬 베이커리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상황에서 매장당 400여 종 제품을 선보이는 프리미엄 베이커리를 내세웠다.
주요 교통수단인 자전거와 오토바이 무료 발레파킹 서비스도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마일리지와 멤버십 제도도 먹혀 지난해 4월 론칭한 멤버십 회원 수가 31만 명에 이른다.
하이트진로 소주류 제품은 베트남 증류주(스피릿) 시장에서 1위(2021년)를 기록했다. 최근 1년간 대형마트·편의점 등 930여 곳에 신규 입점하고 판매 활성화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지난해 2월에는 핫플레이스 꺼우저이 지역에 진로비비큐 3호점을 열어 현지인들에게 한국 음식에 곁들인 진로를 마시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오리온 베트남 법인도 지난해 설립 이래 최초로 연매출 4000억원을 돌파했다. 초코파이는 현지 Z세대를 겨냥해 출시한 ‘수박맛’ 등이 인기를 끌며 매출 1000억원을 넘었다. 베트남 제과 파이 시장이 1300억원 규모인데, 이 정도면 시장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쿠스타스(한국명 카스타드)’도 베트남 전통음식을 접목한 신제품 인기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40% 성장했다.
CJ CGV 베트남은 81개 극장을 운영하는 현지 멀티플렉스 1위 업체다. 베트남 다른 극장사들에게는 없는 4DX·IMAX·골드클래스·침대관 등 특화관과 현지 최초로 온라인 웹·모바일 예약 시스템을 도입한 게 주효했다. 최근 상영한 한국 영화 ‘육사오’는 지난해 10월까지 224만 관람객을 모아 베트남에서 개봉한 역대 한국 영화 중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수입 화장품 시장서 한국산 점유율 최고
K-뷰티도 인기다.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트남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산 점유율(30%)이 가장 높다. 명품 브랜드가 많은 유럽연합(EU·23%)이나 일본(17%)산을 눌렀다. 한국의 베트남 화장품 수출액은 한류에 힘입어 2억3000만 달러(2020년 기준, 무역협회)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현지 매스티지(masstige·대중명품) 브랜드 중 고객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라네즈는 베트남 틱톡에서 뷰티 팔로워 수가 2위다. 아모레퍼시픽 베트남 법인은 지난해 전년 대비 2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K-패션도 확산일로다. 패션 기업 LF의 헤지스는 베트남 최초의 현대적인 백화점인 다이아몬드 백화점에 입점하는 등 현지 7개 매장을 운영하며 지난해 현지 매출이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다. 남성복 브랜드 마에스트로도 호찌민에 신규 매장을 오픈하는 등 베트남 고급 캐주얼웨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랜드도 지난해 베트남 현지 매출이 10% 이상 성장했다. 현지 4개 법인에서 1만1000여 명이 근무하며 연간 니트 의류 2800만 장을 공급하는 등 3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베트남 MZ세대를 중심으로 패션전문 온라인 플랫폼 성장기가 찾아온다고 판단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온라인 패션 플랫폼을 론칭하고 사업을 확장 중”이라고 말했다.
1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35세 미만
이같은 한국 제품 인기는 베트남 9800만 인구 중 젊은 층 인구 비중이 높다는 점도 요인이다. 베트남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35세 미만이고, 인구 4명 중 1명이 15세 미만이다. 한류의 중심에 있는 젊은 층이 다수인 셈이다.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여서 생존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일부 국내 기업들에게는 중국을 대체할 곳으로 여겨진다.
현지 투자도 늘고 있다. 2014년부터 베트남 하노이시에 지상 65층, 지하 5층의 초고층 빌딩인 롯데센터 하노이를 운영하고 있는 롯데그룹은 이르면 올해 8월 하노이 최대 규모 복합 쇼핑몰 ‘롯데몰 하노이’도 열 예정이다. 연면적 10만 7000평, 영업면적 2만2000평 규모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베트남의 유통 시장은 지난 20여 년간 그 규모가 무려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경쟁도 심화하면서 새로운 경쟁력을 가진 유통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신개념 복합 쇼핑몰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롯데시네마·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등도 입점하고 해외 컨템포러리, 화장품, F&B브랜드, 복합 문화 공간, 현지 최대 규모의 키즈 놀이 컨텐츠로 차별화한다는 구상이다.
현지 소비자들의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일단 전망은 밝다는 평이다. 한국무역협회 호치민 지부가 지난해 5~6월 베트남 성인 남여 956명을 대상으로 구매 의사가 높은 한국 제품에 대해 물은 결과 화장품(37.9%), 식품(27.7%), 전자제품(15.1%) 순으로 답했다. 향후 유망한 한국 상품에 대한 질문에도 화장품(50.7%), 전자제품(38.9%), 식품(32.2%), 건강식품(23.3%) 등을 꼽았다.
무역협회 측은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하는 생산기지 역할 뿐 아니라 인구 1억 명, 경제 성장에 따른 구매력 증가로 코로나19 이후 가장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소비시장 중 하나”라며 “한국 기업은 이미 일본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중국과 베트남의 저가 유사 상품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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