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10년]③ 한결같은 진보정부의 정책… 똘똘해진 수요자에 번번히 패했다

조은임 기자 2023. 1. 6. 10: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김모(33·여)씨는 2017년 봄부터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후 있을 대선에서 진보정권이 이길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전세로 살던 김씨는 지방의 주택과 서울의 전세보증금을 합해 경기 김포신도시에 미분양 아파트 전용 84㎡를 매입했다. 당시 3억3000만원이었던 아파트값은 고점을 찍었던 2020~2021년 6억원을 넘어섰다. 집값이 하락기로 접어든 지금도 해당 아파트 값은 4억원을 웃돈다. 김씨는 “진보정부가 ‘아파트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했을 때 거꾸로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전 정부들을 돌아보며 공부를 해왔는데 정권별 아파트값의 흐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규제가 집값을 밀어올린다’는 이제 부동산 시장에서 일종의 법칙이 됐다. 역대 정권별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진단과 해법은 달랐지만 하나 만은 분명해졌다. 수요를 거스르는 규제 일변도 정책은 되레 시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고강도 규제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시장을 자극해 가격이 상승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진보정권에서 같은 일이 반복된 건 최근의 상승기 막판까지 시장에서 학습효과로 작용했다. 김씨처럼 똑똑해진 수요자들은 진보정부의 규제 정책에서 빈틈을 찾거나 오히려 규제를 역이용했다.

그래픽=손민균

◇盧·文 닮은 규제 정책, 결과는 ‘집값 폭등’

대체로 진보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규제 위주로 접근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시작부터 시장의 여건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전 정부로부터 부동산 광풍을 물려받으면서 임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전 김대중 정부는 1997년 12월 국가 부도 위기 상황에 집권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경제위기를 모면했고,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을 활성화 시켜야 했다. 1998년 양도소득세, 취득세 감면을 시작으로 청약자격·제한 완화,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 등 부동산 활성화대책을 쏟아냈다. 부동산 시장에는 투기가 판을 쳤다. 이후 2002년 정권말까지 과열된 시장을 진화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5.5%까지 올리는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초부터 5년 내내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다. 2002년 ‘5·23 주택가격 안정대책’을 시작으로 17번의 대책이 발표됐다. 하지만 임기 내내 대책발표 후 단기 안정, 그리고 다시 급등한 후 또 새로운 대책 발표 등 일정한 패턴을 반복했다.

투기과열지구·투기지구 그리고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대표적인 규제책이 이 시기에 골격이 잡혔다. 하지만 집값은 70% 넘게(부동산R114 기준) 상승했고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실거래가 신고제와 등기부 기재 등은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과세 기반을 넓혔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26번에 이르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가 예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초대 사회수석에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자였던 김수현 전 수석을 재등판 시키면서 첫 단추 부터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임대차 3법 등 규제일변도의 정책이 나열됐고, 전국이 규제지역으로 묶여 거주이전의 자유, 재산권 침해 등 국민의 기본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15억원 이상의 아파트에는 전면 대출 금지라는 초유의 금융규제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규제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착각에 아마추어적인 실책도 더해졌다.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면서 2017년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를 추진했다가 다시 되돌린 점이 대표적이다. 공급정책은 노무현 정부 당시보다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권 말기 3기 신도시 개발 등으로 200만호 넘는 공급계획을 내놨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가 터지면서 동력을 잃었다. ‘공정’을 표방하며 등장했던 탓에 지지율 또한 급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집값 상승률은 82% 수준이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은 거대한 힘이 있어 추세는 거스를 수가 없다”면서 “정부의 힘을 너무 과신해서는 안 되는데 시장에 혼란을 주고 나면 다시 시장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해 진다”고 했다.

3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아파트 단지 모습./뉴스1

◇집값은 ‘공급’이 잡았다… 부동산 시장 급랭 속 공급 확충 ‘숙제’

부동산 전문가들은 역대 정권을 되돌아 보면 집값을 잡은 건 규제로 수요를 억누르는 규제가 아니라 안정적인 공급이었다고 말한다.

이명박(MB) 정부의 ‘핀셋 공급’이 대표적이었다. MB정부는 임기 첫해인 2009년 수도권 부동산 공급 방침을 발표하고 서울의 내곡·세곡동 등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1만7199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했다. 또 보금자리 주택을 통해 2018년까지 수도권 300만, 지방 200만 가구를 공급할 것을 약속했다.

역대급 가격 폭등과 함께 1989년 임기를 시작한 노태우 정부는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택지 개발을 통한 200만호 주택공급방안을 발표했다. 본격적으로 입주가 시작된 1991년부터 아파트 가격은 안정세를 찾기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공급 속도전’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가격은 내리고 거래는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공급을 멈출 경우 경제 여건이 좋아지면 집값이 다시 폭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주택 270만호 공급 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단은 규제완화에 방점을 찍었지만 공급도 놓치지 않겠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 지난 3일 규제지역 해제, 중도금 대출 상한 폐지 등 대대적인 규제완화책을 내놓으면서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는 공급방안도 곁들였다. 지방의 100만㎡ 미만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고, 국가전략사업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는 해제 총량에서 제외한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규제지역 해제와 함께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도 강남·서초·송파·용산구만 남겨놓고 걷어낸 것 또한 공급 확대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가 않다.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며 공급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계획한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PF대출 등 건설사의 자금조달이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미분양 물량이 가파르게 늘면서 미분양발(發) PF시장 경색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미분양을 해결하기 위한 규제완화책을 내놓았지만 금리인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어느정도로 먹힐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단기적으로는 가격급락이나 경착륙 위기감이 워낙 큰 상황이라서 같은 비중으로 공급 활성화를 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지금 공공측면의 공급은 어느정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민간 쪽이 조금 우려스럽긴 해서 규제완화의 효과를 잘 두고봐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현재처럼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는 규제완화 자체가 민간 공급을 유도할 수 있는 공급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건설사들이 분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