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불내고… 병적 충동, 의지 아닌 치료로 해소해야” [헬스조선 명의]

이해림 기자 2023. 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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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충동조절장애 명의'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

 

현대인의 삶은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감정적 응어리를 해소하려 음주, 자해, 도둑질, 방화 등 잘못된 행동을 충동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느는 이유다. 충동을 억누르는 건 ‘의지’에 달렸다는 생각 탓에, 대부분은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충동조절장애는 엄연히 정신 질환이다. 약물치료와 인지 행동 치료를 통해 충동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어떤 때에 충동조절장애를 의심하고 정신과에 내원해야 하는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인 이병철 교수(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게 들어본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사진=신지호 사진기자
- 충동조절장애 환자의 행동 특성은 무엇인가? 
충동조절장애는 물건을 훔치거나(병적 도벽), 불을 지르거나(병적 방화), 화를 내는(간헐성 폭발 장애) 등의 행동을 충동적으로 하는 것을 일컬으며, 이런 일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반복될 때 진단된다.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병적 도벽을 예로 들면, 비싼 물건을 가지고 싶어서 도둑질하는 게 아니라 도둑질을 함으로써 느껴지는 감정적 만족 자체가 목적이란 뜻이다. 물건을 훔치기 전에 느껴지던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물건을 훔친 후에 이완되는 과정에 중독된 것이다.

당장의 급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목적으로 무모하게 일을 저지르는 특징도 있다. 금전적 이득이나 권력을 얻을 심산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과는 다르다. 앞뒤 안 가리고 갑작스럽게 행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에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잘못된 행위를 하는 일이 반복되며 우울감이나 좌절감도 많이 느낀다. 그 탓에 우울증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당사자에겐 도둑질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 방안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거나,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 

- 충동조절장애의 세부 유형엔 어떤 것이 있나? 
충동조절장애는 개인이 경험한 다양한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 ▲간헐성 폭발 장애 ▲병적 도벽 ▲병적 방화다. 간헐성 폭발 장애는 말 그대로 분노가 폭발하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폭력적인 행동을 충동적으로 하기 시작하면,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과격하게 화를 내버리고 난 다음엔 곧바로 후회하기 시작한다는 점이 통상적인 폭력과 구분되는 점이다.

병적 도벽이 있는 사람은 금전적 이득이나 물욕에 의해서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의 돈으로도 살 수 있거나 아주 사소한 물건들, 때로는 본인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훔친다. 심리적 긴장감과 스릴이 도둑질을 한 후에 이완되는 것을 경험하는 게 목적이라 그렇다. 병적 방화도 마찬가지다. 분노를 표출하거나 앙갚음을 하는 게 아닌, 불을 지르는 행동에서 스릴을 느끼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 충동조절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원인은 없다. 충동조절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자에 대해서도 밝혀진 건 없으나, 유전적 영향이 있으리라 추측하곤 있다. 부모나 형제에게 충동조절장애가 있으면 발병 위험이 비교적 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며 경험하는 좌절감이나 스트레스, 분노, 공격성 등을 잘못된 방식으로 해소할 경우 충동조절장애로 이어지곤 한다. 선천적인 요인보단 후천적인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사진=신지호 사진기자
- 충동조절장애가 있어도 본인 의지만 있으면 행동을 자제할 수 있나?
의지로 자제가 안 되기 때문에 정신과적 질환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충동조절장애 단계라면 본인의 의지만으로 행동을 제어할 수 없다.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려 특정 행동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단 한 번 들면, 환자가 이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써도 시시때때로 충동이 불쑥 치민다. 나중엔 아주 작은 자극만 있어도 엄청난 충동이 올라오게 된다. 환자 입장에선 행동을 미룰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것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충동이 점차 가라앉는다. 이 충동을 보다 건강한 행동으로 대신 해소하기도 한다. 충동조절장애 환자들은 이게 불가능하다. 도둑질이나 방화 등, 자신이 충동적으로 저지르곤 하던 바로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나 불만족이 해결되지 않아서다.

- 충동의 강도가 갈수록 심해져 점점 더 자극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나?
그렇다. 병적 도벽 환자를 예로 들면, 처음엔 작은 것을 훔치기만 해도 만족스럽지만,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사소한 도둑질로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때가 온다. 더 ‘위험한’ 도둑질을 해야 스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러다 보면 나중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의 행동까지 저지르기도 한다.

- 충동조절장애로 오인되기 쉬운 다른 정신적 장애나 질환이 있나? 
스트레스나 감정적 응어리를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충동조절장애뿐만 아니라 우울증이나 알코올의존증에서도 관찰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양극성 장애가 있을 때도다. 다만, 다른 정신과적 장애나 질환에선 이런 현상이 한두 번 관찰되지만, 충동조절장애는 반복되는 게 차이다. 그것도 불을 지른다거나, 머리카락을 뽑는다거나, 물건을 훔친다든가 하는 특정 유형의 행동으로서만 반복된다.

- 충동조절장애를 진단하기 위한 검사가 있나?
현재로선 우울증처럼 진단 검사가 따로 있진 않다. 특정 유형의 행동이 일관적으로 반복되는지, 이 행동을 충동적으로 한 후에 환자 본인이 후회하는지 등의 행동 특성을 보고 진단을 내린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사진=신지호 사진기자
-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간헐성 폭발 장애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째는 죄책감의 유무다.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인 간헐성 폭발 장애 환자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돌아서면 후회한다.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것에 매우 큰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을 본인이 자각한다. 그러나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폭력적 행동을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행동을 해서 자신이 원하던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 차이점이 나온다. 바로 목적의 유무다. 충동조절장애 환자는 금전, 권력 등을 좇아 행동하지 않는다. 특정 행동을 하면 따라오는 감정적인 만족감을 얻는 것만이 목표다. 그래서 도둑질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병적 도벽 환자들은 값싸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훔치곤 한다. 도둑질을 하고 싶단 충동에 휩싸여 누가 봐도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무릅쓸 때도 있다. 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타인보다 우위에 서거나, 금전적 이익을 얻거나, 권력을 손에 쥐는 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주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행동만 한다.

- 욕구와 충동을 도둑질이나 방화 같은 행동 말고, 더 건전한 행동으로 대신 해소할 수도 있나? 
충동은 ‘강한 이끌림’이다. 충동에는 열정이나 의지 같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단 뜻이다. 충동조절장애 환자의 충동은 분명 치료 대상이지만, 그게 꼭 충동 자체를 뿌리 뽑아야 한단 뜻은 아니다. 아무런 충동 없이 사는 건 충동조절장애가 없는 정상인도 불가능하다.

충동을 없애는 게 아니라, 이를 건강하게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게 치료 목표다. 산악 등반가처럼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 직업’을 갖는 것이 그 예다.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거친 산에 오르는 건 보통 의지로 하기 어려운 일이다. 충동조절장애 환자의 강한 충동을 이런 쪽으로 돌리면 ‘직업적 열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병적 방화 환자가 불에 대한 충동과 관심을 직업적으로 승화시켜 소방관이 되는 식이다. 그럼 위험한 화재 현장에도 두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된다. 공격성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에서 타인에게 표출하는 건 문제지만, 잘 조절하고 다듬을 경우 직업적 성취도를 높여줄 수 있다.

- 충동조절장애 중에서도 간헐성 폭발 장애와 병적 방화는 남성, 병적 도벽은 여성에서 자주 나타난다는데, 이유가 있나? 
특정 성별에 특정 유형의 충동조절장애가 더 많이 나타나는 이유에 관해선 연구된 게 별로 없다. 추측하건대 남성과 여성이 접하는 문화가 다른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남성은 권력이나 힘에, 여성은 소유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원인에 대해서도 명확히 연구된 건 없다. 어떤 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변하면 충동조절장애가 생긴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다만, 생리 전후로 여성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거나, 산후 우울증이 생기면서 충동적 도벽이 심해지는 여성들이 간혹 있다. 호르몬 변화로 말미암은 스트레스가 어떻게 충동조절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지는 ​앞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병철 교수가 약물이 뇌에 작용해 충동조절장애 증상을 완화하는 기전을 설명하고 있다. 좌측 작은 부분은 '편도', 우측 큰 부분은 '전두엽'. 빨간색으로 칠한 것은 과도하게 활성화됐단 뜻이다. /사진=신지호 사진기자
- 충동조절장애는 어떻게 치료하나?
약물치료와 인지 행동 치료를 한다. 치료 초기엔 급한 불을 끄려 우선 약물을 처방한다. 환자의 충동을 가라앉히고, 불안·긴장·스트레스를 줄여 충동적 행동을 하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다. 우울감을 낮추는 항우울제와 충동을 억제하는 항갈망제가 주로 쓰인다. 충동조절장애 환자들은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인 편도가 과활성화(빨간색)돼있고,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활동은 감소해(파란색)있다. 약을 복용하면 편도의 활동이 줄어 충동·불안·긴장·스트레스가 완화된다.

급한 충동이 사그라졌다면 전두엽을 활성화할 차례다. 이 일을 인지 행동 치료가 한다. 환자가 충동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고, 충동을 일으키는 습관이나 생활 환경을 바꾸는 것이 골자다. 충동이 생길 때마다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파악해 미리 대처할 수 있게도 한다. 이렇게 감정의 과활성화를 완화하는 ‘약물치료’와 이성적 사고를 활성화하는 ‘인지 행동 치료’가 합쳐졌을 때 충동조절장애가 효과적으로 치료된다. 둘 다 필요하므로 어느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 말할 순 없다.

환자의 충동과 불안이 극도로 심해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 입원 치료를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입원하는 사람은 드물다. 입원하더라도 약물로 초기 증상을 조절해 외래 진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면 바로 퇴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 충동조절장애는 치료해도 재발이 쉽다던데, 평생 관리해야 하나? 
충동을 직업적 열정으로 승화시켜도, 스트레스나 불안이 극심해진 상황에선 과거에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이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 스트레스나 불안이 아예 없는 삶은 없다. 치료한 후에 충동조절장애가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본인의 감정 상태에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태라면, 아직 충동적 행동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미리 정신과를 찾아오는 게 좋다.

- 충동조절장애에 자주 동반되는 다른 정신질환이 있나? 
충동조절장애 환자는 충동적으로 행동한 후에 욕구를 억누르지 못했단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진다. 이에 우울증을 경험할 위험이 크다. 우울을 잊으려 술을 마시다가 알코올의존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 어떤 행동을 보일 때 충동조절장애를 의심하고 정신과를 찾으면 되나?
충동을 특정 유형의 행동으로 해소하는 일이 반복될 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불을 지르거나, 도둑질하거나 하는 식이다. 불법적인 행동을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후에야 정신과를 찾는 경우가 많지만,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수록 경과가 좋다. 고조됐던 긴장감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인 행동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방화나 도둑질이 아니더라도 연필을 돌리거나, 다리를 덜덜 떠는 행동을 반복하는 충동조절장애 환자들도 있다. 어떤 행동이든 정상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 아닌 것 같고, 행동이 점점 더 과격해진다면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게 좋다.

- 충동조절장애 환자 대부분은 아동기부터 증상이 나타난다던데,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충동조절장애를 의심해봐야 하나?
아이들은 성장 중이라 변화에 유연하다. 어른이 봤을 땐 심각한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라도 치료를 잘하면 문제없이 자란다. 조기에 진단해 치료를 시작할수록 좋다.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성인과 다르지 않다. 문제적인 행동을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일이 반복되고, 그 행동 유형이 일관될 때다.

방화나 폭력과 관련된 충동조절장애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특히 빨리 치료해야 한다. 상황 대처 능력이 어른보다 떨어지는 아이 특성상,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아이가 불을 지르면 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우려가 있다. 충동조절장애 탓에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사회성이 나빠지기 쉽다. 어린아이들은 폭력적인 또래에게 순종하는 경향이 있다. 충동적으로 폭력적 행동을 하는 아이는 타인과 이견을 조율하거나, 타인에게 무언가 양보하는 등 어린 시절에 배워야 할 인간관계 덕목을 제대로 학습할 수 없게 된다.

어린이 환자는 약물치료가 꼭 필요하지 않다. 놀이치료나 상담을 오히려 더 많이 한다. 소아정신과를 찾아서 충동조절장애가 있는지 진단 받은 후,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보통 상담 치료를 시작한다. 약물치료는 정도가 심한 경우에만 고려한다. 충동조절장애 환자들은 커가면서 점점 더 과격한 행동을 충동적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 증상이 약한 어린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사진=신지호 사진기자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 교수는…
한림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한 후,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레지던트를 수료했다. 2019년 9월부터 한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정신신체학회, 한국중독정신의학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임원을 지낼 정도로 정신건강 분야 학술 활동에 열심이다. 재수하던 시절, 심한 두드러기로 고생하다 주사를 맞자마자 깨끗이 낫는 경험을 하고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덜고 삶을 토닥이는 걸 의사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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