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콘 크기였던 막내 꿈은 축구선수…사둥이 '영웅호걸' 기적
새해를 맞는 새벽, 모든 방송사 카메라가 '희망'을 표현하기 몰려가는 곳이 있다. 새해둥이가 태어나는 병원이다. 새해는 희망과, 희망은 탄생과 동의어라서다. 1일에는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0시 0분 태어난 김미진씨(36)씨의 세쌍둥이(김서준·서아·서진) 출산 소식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충북 음성에 사는 윤수일(51)·문은정(43)씨 부부에게도 토끼의 해(계묘년·癸卯年)는 특별하다. 부부는 12년 전인 2011년 토끼의 해(신묘년·辛卯年) 네쌍둥이 영·웅·호·걸(태영·태웅·태호·태걸) 형제를 얻었다. 5월 11일 첫째 태영군이, 6월 7일 막내 태걸 군이 세상의 빛을 봤다. 27일에 걸쳐 태어난, 귀한 네 생명이었다. 네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70만분의 1, 게다가 난산(難産)이 겹치며 사실상 100만분의 1 확률을 뚫었다는 말이 나왔다. 기적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도 소식을 크게 다뤘다. 그리고 12년. 체중이 1kg도 안 되는 미숙아였던 네 형제는 연예인과 제빵사, 축구선수를 꿈꾸는 건강한 초등학생으로 자랐다.
지난 토끼해, 27일에 걸쳐 기적처럼 만난 네쌍둥이 '영·웅·호·걸'
분만을 맡은 서울대병원 전종관 교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전 교수는 “둘째까지 낳은 뒤 감염 위험이 있어 바로 자궁 묶는 수술을 했다”며 “운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 둘은 신생아중환자실에, 둘은 뱃속에 있는데 산모가 ‘너무 편해졌다’고 한 게 지금도 기억난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생명을 대하는 부부의 긍정적인 자세가 인상적이었다는 회고였다.
네쌍둥이와 함께 한 12년이 가져다준 '희로애락'
가벼운 나들이 때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4인용 유모차에 길을 잃지 않도록 끈 달린 가방까지 단단히 준비해도 아찔한 상황이 생긴다. 윤씨는 “네다섯살때 쯤 공룡박물관에 갔다가 셋째 태호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집에 갈 시간 됐다’고 하니 먼저 뛰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는 아이의 성장, 그리고 부모의 기쁨으로 이어졌다. 정상 생활이 힘들지 모른다던 첫째 태영군은 넷 중 가장 개구쟁이로 자랐다. TV 리모콘만 했던 넷째 태걸군은 형제 중 가장 먼저 태권도 ‘파란띠’를 땄고, 축구선수를 꿈꿀 만큼 튼튼하다. 길을 잃었던 태호군은 1㎞ 넘는 거리를 혼자 걸어 아빠의 차 앞에 서 있었다고 한다. 윤씨는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지 차를 기억하고 먼저 갔는데 가족들이 안 오니 울고 있었다고 한다”며 대견했던 기억으로 꼽았다.
재학 중인 생극초등학교에서 만난 네쌍둥이는 항상 티격태격이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 윤씨는 “집안에 큰일이 생겨도 지금처럼 단합하고 의견을 모으면 이겨낼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은 아이 한두 명도 잘 안 낳는 저출산 시대’라는 말에 부부가 오히려 “오히려 아이들을 보며 배우는 게 많다”고 답한 이유다.
첫돌 지나 토끼 해 맞는 다섯 쌍둥이
군인 부부지만, 역시 출산을 앞두고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씨는 “처음엔 선택적 유산을 권유 받았다”며 “다섯을 다 품고 갈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20주가 넘어서면서는 움직이는 게 불편해 거의 누워서만 생활해야 했다. 그러나, 출산은 시작일 뿐이었다. 다섯 아이는 어떨 땐 동시에, 어떨 땐 한 명이 울면 나머지도 따라울기 시작했다. 서씨는 “다 안아 줄 수가 없어서 가장 많이 우는 한 아이는 안고, 한 아이는 업고 그렇게 달랬다”고 말했다. 한번 외출하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달라붙어야 한다. 준비에만 2시간이 걸리곤 한다.
그러나 서씨는 “고맙다”는 말, 그리고 “매일 행복하고 재밌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제 막 돌을 지난 아이들이라 갈길은 멀지만, 다섯 쌍둥이와 함께 맞을 새해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컸다. 그는 “아이들에게 '와줘서 너무 고맙고, 또 다섯 쌍둥이로 와줘서 더 고맙다. 사이좋게 잘 지내고, 새해에도 행복하게 지내자'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쌍둥이 새해 소망은 제각각, 부모는 “자식 건강” 하나
영웅호걸 형제에게 ‘검은 토끼의 해’ 소망을 물었다. “게임기와 집을 사고 싶다. 집이 비싸요?”(태영) “살을 빼고 더 유명해지고 싶다. 10만원 모으기 하고 싶다”(태웅) “촬영을 한 번 더 해서 출연료를 제가 받고 싶다”(태호) “독도에 가보고 싶다. 반 친구가 다녀왔다고 자랑했다”(태걸) 등 돌아오는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새해 희망은 오직 하나였다. 네쌍둥이 엄마 문씨는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그렇게 돕고 있다”고 했고, 다섯쌍둥이 엄마 서씨 역시 “건강하게 컸으면 하는 게 제일 큰 바램”이라고 말했다.
손성배·김남영·최서인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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