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주려다 웃음거리로 전락한 'SBS 연예대상'
[이준목 기자]
'2022 SBS 연예대상'을 단 두 단어로 요약하면 '고인 물'과 '낚시'일 것이다. 새로운 히트작과 인물의 부재, 종잡을 수 없는 시상 기준은 결국 재미도 감동도 잡지 못했다. 수상자들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민망한 상황을 초래했다.
▲ 'SBS 연예대상' 한 장면. |
ⓒ SBS |
그런데 유재석의 수상이 발표된 직후 시상식 분위기는 묘하게 흘렀다. 유재석은 자신이 받을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유재석은 " 상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느낌이 올 때가 있는데 오늘은 전혀...(예상하지 못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유재석은 "지석진 형과 다른 수상 후보들한테도 죄송하다. 제가 가질 수 있는 영광을 모두 지석진 형에게 드리고 싶다. 제가 진심으로 지석진 형이 받기를 기도했었다. 너무 미안하다"라며 수상 소감을 사과로 시작하는 진풍경이 펼쳐쳤다. 그러자 객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지석진은 "굉장히 이기적으로 보인다. 너무 잘나 보이니까 그냥 즐기라"고 받아치며 폭소를 자아냈다.
유재석이 특별히 지석진을 언급한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지석진은 올해 유력한 대상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됐다. 다른 대상후보들의 경우, 유재석-김종국-신동엽은 모두 이미 수상경력이 있고, 탁재훈과 이상민은 바로 지난해 <미운우리새끼>팀이 단체로 수상한 바 있어서 유일하게 대상 경력이 없는 지석진에게 시선이 쏠렸다.
데뷔 30년차의 방송 베테랑인 지석진은 SBS의 간판 예능 <런닝맨>의 고정멤버로 오랫동안 활약해 왔다. 하지만 연예대상에서는 <런닝맨>의 다른 주요 멤버들에 비하여 유독 지석진을 홀대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난해인 2021년에도 지석진은 이상민과 함께 대상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정작 돌아온 것은 뜬금없는 '명예사원상'이었다. <런닝맨> 팬들과 시청자들은 엄연히 방송사의 이름을 내건 연말 시상식의 무게에 걸맞지 않는 장난스러운 시상을 두고, SBS가 지석진을 노골적으로 조롱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무관'에 그친 지석진
올해 시상식에서도 초중반까지 분위기는 지석진과 탁재훈의 대상 경쟁으로 흘러가는 듯 했다. 다른 대상 후보들이 잇달아 먼저 수상에 성공하자 자연히 아직 상을 못받은 지석진에게 시선이 쏠렸다. 지석진은 "기대를 안 하고 왔는데 하나하나 날라가는거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농담섞인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SBS 연예대상' 한 장면. |
ⓒ SBS |
물론 유재석은 충분히 대상 수상 자격이 있었다. 장수 예능 <런닝맨>이 핵심멤버 이광수의 이탈, 장기 방영으로 인한 매너리즘 등 여러 번의 고비속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던데는 굳건히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아준 '1인자' 유재석의 비중이 컸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유재석이 예년에 비하여 딱히 더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줬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SBS 연예대상은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준 메인 MC보다는 오랫동안 프로그램에 꾸준히 기여한 '2인자'나 '팀워크'에 대상을 부여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던 만큼 지석진의 수상은 명분이나 개연성이 충분했다. 애초에 연말시상식이란 게 방송국에 크게 기여했던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라는 성격을 감안할 때, SBS는 지석진이라는 방송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석진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았던 명예사원상은 폐지되지 않고 올해는 <미우새>의 이상민에게 돌아갔다. 대상 후보였던 이상민이 명예사원상을 수상하자 객석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시상자로 나선 지석진은 명예사원상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이 상이 쏠쏠하다. 쌀 20kg에 SBS 사내 식당에서 식사도 할 수 있고, 금 10돈도 준다. 욕심 나지않냐"고 방송국을 대신하여 변명을 해줘야 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또한 '예능 대부' 이경규는 신설된 '베스트 캐릭터상'을 수상했다. 시상의 이유란 게 이경규가 방송에서 화를 낼 때마다 시청률이 소폭 상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경규는 "살다살다 이런 희한한 상은 처음 받아본다. 무슨 상인진 모르겠지만 화날 때마다 시청률이 소폭 상승한다니 참 좋다"고 농반진반으로 뼈있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으로 올해도 SBS 연예대상은 몇몇 장수 프로그램 위주의 '나눠먹기'와 '몰아주기' 잔치였다. <미운 우리 새끼>,<런닝맨>,<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등 짧게는 4-5년, 길게는 10여 년을 훌쩍 넘긴 장수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시상을 휩쓸었다. 방송 2년차로 그나마 최신작인 <골때리는 그녀들>은 올해 최다인 무려 9관왕을 휩쓸었다.
베스트 캐릭터상과 에코브리티상, 소셜스타상, 신스틸러상, SBS의 아들·딸 상, 올해의 티키타카상, 감독상 등 처음 들어보는 각종 신설 수상 종목이 대거 등장했고, 중복 수상 역시 다수였다.
지난해인 2021년 SBS 연예대상에서 뜬금없는 <미운 우리 새끼>팀의 공동 대상 수상이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면서 시상식 분위기가 묘해지자, MC인 신동엽은 "지금 보는 분들은 '이럴거면 그냥 한 X끼만 주지'라고 생각해셨을 것"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대중에게 웃음을 주는 예능을 만드는 것은, 알고보면 대단히 프로폐셔널한 작업이다. 예능인들은 웃음을 주는 사람이지, 우습게 봐도 되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SBS는 혹평을 받았던 지난해의 참사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2년 연속 재미도 감동도 존중도 없는 연예대상으로, 받는 수상자들조차 웃지못할 상황을 초래했다. 대중에게 즐거운 웃음을 주어야 할 방송 시상식이, 웃음거리로 전락한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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