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남아 있는 뱅쇼를 원한다면 이렇게 [노부부의 집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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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기자]
한국에서도 뱅쇼(vin chaud)가 이제 제법 친근하다. 특히 이렇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많은 카페에서도 쉽게 뱅쇼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뱅쇼는 솔직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술이었다. 어느 겨울, 친구들과 카페에 들어갔는데, 추천 메뉴로 있길래 호기심에서 주문을 했다. 딱 한번 입에 대보고 너무 달아서 그냥 내려놓고는 손도 안 대었다.
향기롭고 따뜻한 와인이라는 말에 호감이 갔는데, 웬걸, 내 입에는 설탕물 같았다. 물론 카페들마다 레시피가 다를 것이다. 그 카페가 유난히 달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설탕을 끊은 지 오래되었다. 가끔 조금씩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특히, 본식과 술은 달면 정말 싫다. 어쩐지 본연의 자세를 잃은 듯한 느낌이랄까?
그 생각이 나서 캐나다인 남편에게 뱅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뱅쇼가 뭐냐고 되물었다. 음, 뱅쇼를 모른다고? 술 좋아하는 사람이? 그러나 내가 설명을 하자 바로 알아들었다.
"아, 멀드 와인(mulled wine) 말하는 거구나. 그게 왜 달아?"
안 해 먹은 지 꽤 오래되었지만, 예전엔 크리스마스 때 종종 해 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서 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남편도 단 술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설탕을 넣고 만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나도 먹을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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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신료를 넣어 따끈하게 데워 먹는 와인, 뱅쇼 |
ⓒ 김정아 |
뱅쇼(vin chaud)는 불어로 '따뜻한(chaud) 와인(vin)'이라는 뜻이다. 영어 이름의 멀드(mulled)는 향신료를 넣어 뭉근히 우려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두 언어의 의미를 합치면 이 와인의 뜻이 잘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술을 먹는 것은 사실 동서양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겨울철에는 청주나 막걸리를 데워 먹기도 했고, 일본의 정종은 원래 따뜻한 술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도 꼭 와인뿐만 아니라, 럼주나 애플사이더, 심지어 시원함의 상징인 맥주를 데워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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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뱅쇼에 흔히 사용하는 회향, 카다멈, 생강, 계피, 정향, 후추 |
ⓒ 김정아 |
내가 뱅쇼 레시피를 물으니 남편이 껄껄 웃는다.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는 것이다. 뱅쇼에 들어가는 향신료는 그야말로 엿장수 맘대로다. 자신이 좋아하는 향으로 넣으면 되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하는 레시피라는 것은 없다.
우리가 된장찌개 끓일 때 레시피를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된장찌개에는 된장이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내용물은 집집마다 너무나 다르다. 두부를 넣기도 하고, 고기를 넣기도 하고, 감자나, 호박이나, 버섯 등등, 그 양과 종류는 정말 다양하지 않은가! 걸쭉하게 끓이기도 하고, 좀 멀겋게 끓이기도 하고...
이 뱅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서 우려낸다. 가장 기본인 와인에 몇가지 향신료를 넣고 뭉근하게 데우는 것이다. 향이 강하길 원하면 향신료의 양을 늘리거나 더 많은 종류를 사용해도 좋다. 과일향을 원하면 과일을 더 많이 넣을 수도 있다. 체리나 복숭아 등이 들어가면 달큼한 향이 확 살 것이다. 배나 사과도 쓸 수 있고, 아예 주스를 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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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쇼에 들어가는 재료들 |
ⓒ 김정아 |
과일은 오렌지 반 개만 쓰기로 했다. 오렌지는 깨끗하게 씻은 후 껍질을 아주 얇게 까서 준비했다. 때론 마른 오렌지 필을 쓰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냥 편안하게 오렌지를 그대로 사용했다. 껍질의 흰 부분이 들어가면 쓴 맛이 나기 때문에 최대한 주황색 겉 부분만 사용한다. 오렌지 향이 더 들기를 원하면 오렌지 즙을 짜서 넣어도 좋다.
와인은 완전 고급 와인을 쓸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없는 와인을 쓰면 안 된다. 맛없는 것은 뭘 해도 맛없기 때문이다. 과일맛이 풍부한 멀로(Merlot)나 카버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같은 것을 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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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에 향신료와 오렌지 껍질을 넣고 뭉근히 데운다 |
ⓒ 김정아 |
와인을 우리고 있으면, 온 집안에 향기가 퍼진다. 이제 따끈한 와인을 잔에 붓고, 양손으로 그 온기를 느끼면서 마시면 되는 것이다. 회향 때문에 약간 화한 느낌도 나고, 오렌지의 새콤함과 기타 향신료의 맛들이 다정하게 입에 스며든다.
와인의 맛은 희미해져서 색다른 느낌의 음료가 되었다. 입안의 맛보다 코로 들어오는 향이 더 좋았다. 다른 볼일 보느라 좀 오래 두었더니 이미 알코올은 많이 날아갔지만, 그래도 뱃속이 따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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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철 제맛인 뱅쇼(vin chaud) |
ⓒ 김정아 |
뱅쇼(Vin Chaud) 만들기
재료: 와인 1병. 오렌지 반개, 정향 5개, 말린 생강 2~3 조각, 가는 계피 1개, 팔각회향 2 개, 카다멈 3~4개, 통후추 4~5 개, 그밖에 꿀, 흑설탕, 메이플 시럽 등의 감미료나 사과, 배, 복숭아 같은 과일을 넣어도 좋다.
1) 와인을 냄비에 붓는다.
2) 오렌지는 껍질을 벗겨서 와인에 넣는다. 이때 흰 부분은 사용하지 않는다.
3) 오렌지 향이 더 진하게 나게 하고 싶으면 오렌지 즙을 짜서 넣어도 된다.
4) 나머지 향신료를 다 넣고 뭉근하게 우려 준다. 와인이 따뜻해지면 그때부터 먹을 수 있는데, 향이 더 우러나오게 하려면 뚜껑을 덮고 오래도록 데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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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글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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