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귀뚜라미 변신...성공 본업의 재발견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2. 12. 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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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정체.

경영진 입장에서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단어다. 특히 대내외 환경, 소비자 트렌드 변화 등이 겹치면서 그동안 잘해왔던 본업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최근처럼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진다든지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다면 경영진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본업 경쟁력을 색달리 해석,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하는 기업들이 있다.

▶유형 1. 업의 재정의

▷본업 뒤집어봤더니 살길 보이더라

‘업의 본질에 집중하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업)의 기본(본질)에 최선을 다하라’는 경영계의 격언이다. 사업을 진행할 때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성과는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뜻으로 쓰인다. 언뜻 들으면, 과거 지향적인 문장처럼 들린다. 새로운 먹거리보다는 기존의 ‘본업’에 역량을 쏟으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이가 적잖다. 그러나 이 문장에는 숨겨진 뜻이 하나 더 있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해답’을 찾으라는 것.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는 “업의 재정의란 CEO가 사업에 대해 자기만의 정의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자기만의 정의를 내리고, 사업을 분석하면서 일과 사업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철강업계의 1인자 포스코는 회사의 출발점인 ‘철강’ 산업이 성장 정체에 처하자 ‘업의 본질’을 재조명했다. ‘철’도 결국 소재 산업인 만큼, 철강업에서의 노하우를 소재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때마침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동시에 배터리 산업이 급성장하는 시기였다. 리튬과 니켈을 비롯한 각종 금속 소재가 쓰이는 2차전지 소재 산업은 포스코에 ‘딱 맞는’ 신성장 사업이었다. 그길로 제철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원자재 가공부터 최종 소재 생산까지 모두 그룹 계열사가 담당하는 밸류체인을 만들었다. 사업은 순항 중이다. 특히 2차전지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계열사로 한데 모아 재출범시킨 포스코케미칼은 그룹 주력 계열사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 얼티엄셀즈에 전기차 배터리용 인조흑연 음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가 하면 세계 최대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종합 준공하면서 주가도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포스코는 다른 계열사까지 동원, 전사적인 지원으로 2030년까지 양극재 61만t, 음극재 32만t, 리튬 30만t, 니켈 22만t 등 2차전지 소재 사업을 키우기로 했다. 예상 매출액만 41조원에 달한다.

전장 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LG전자 역시 ‘업의 재정의’를 통해 활로를 찾았다. LG전자는 2010년대 후반, 스마트폰 시장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가전 사업은 여전히 잘나갔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미 과포화된 시장이었다.

LG전자는 자동차의 변화에 주목했다. 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기계 부품 대신 전자 부품이 자동차의 필수가 됐다. 전기차 부품 60%는 사실상 LG전자와 자회사들이 만들 수 있는 부품이었다. LG전자는 ‘자동차 = 전자제품’으로 업을 재정의했다. 전자 부품이 절반 넘게 들어가는 제품은 사실상 ‘전자제품’과 다를 바 없다는 선언이었다. 스마트폰과 전자제품을 만든 기술력이 자동차 전장 부품을 만드는 데 투입됐다.

결과는 대성공. LG전자 전장사업부는 2022년 들어 흑자전환하며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 LG전자 전장 사업을 맡는 VS사업부는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 139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이 8870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자회사 실적도 상승 행진이다. LG이노텍 전장 사업은 2022년 3분기 380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48%, 전분기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차량용 통신모듈, 전기차용 파워 등 전 제품군에서 매출이 증가했다. 5분기 연속 매출이 성장했다.

보일러로 유명한 귀뚜라미는 2000년대 들어 주력 사업이 정체기를 맞았다. 보일러 설치율이 100%에 육박하는 등 보일러 수요가 감소한 까닭이다. 이때 경영진은 업의 본질을 ‘난방’을 넘어 ‘공조(온도 조절)’ 산업으로 확대, 재정의했다. 그랬더니 신사업이 보였다. 2006년 귀뚜라미범양냉방, 2008년 신성엔지니어링, 2009년 센추리 등 냉동 공조 사업체를 줄줄이 인수, 이제는 보일러 기업에서 종합 냉난방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냉난방 공조 3사(귀뚜라미범양냉방·신성엔지니어링·센추리)의 2021년 매출액은 5333억원으로 귀뚜라미그룹에 인수된 2010년 대비 연평균 3.3%씩 증가했다. 아울러 순이익 역시 같은 기간 139억원에서 174억원으로 2.1%씩 늘었다.

귀뚜라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난방 기술력을 활용해 ‘카본매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귀뚜라미 3세대 카본매트는 카본열선을 사용하는 차세대 온열매트다. 1세대 전기매트(일명 전기장판)와 달리 전자파 걱정이 없다. 물을 사용하는 2세대 온수매트의 걱정거리였던 누수, 세균, 물 제거와 보충 등의 불편함을 완전히 해결했다. 카본매트 매출은 기존의 ‘본업’이었던 보일러 사업의 매출을 넘어섰다. 귀뚜라미보일러 관계자는 “올해 판매를 시작한 프리미엄 신제품의 매출 성장 효과에 힘입어 15만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라젬은 ‘의료기기’에서 ‘홈 헬스케어 가전’으로 포지션을 재정비했다. 또 웰카페를 도입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으로 가게를 ‘리포지셔닝’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세라젬 웰카페 전경. (세라젬 제공)
▶유형 2. 새로운 고객 찾다…리포지셔닝

▷관점 바꾸면 ‘신시장’ 열린다

매일유업과 일동후디스.

이들의 과거 주력 제품 중 하나가 분유다. 이들 회사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시장을 키워왔다. 하지만 인구수 급감과 출산율 저하로 시장은 성숙기를 넘어 점차 파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때 눈을 돌린 시장이 성인용 단백질 시장이다. 한국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구성비가 올해 17.5%, 2070년이면 46.4%에 달할 정도로 계속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포문은 매일유업이 먼저 열었다. 분유, 우유 만들던 실력으로 마시기 좋은 단백질 음료 브랜드 ‘셀렉스’를 시장에 내놨다. 반응은 폭발적. 출시 후 지금까지 누적 매출액 2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 셀렉스사업부는 아예 별도 법인으로 분할, 성인용 건기식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일동후디스 역시 2020년 단백질 보충제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를 내놓은 후 2년 4개월 만에 누적 매출 2000억원을 돌파했다. 분유처럼 분말형부터 스틱형까지 다양하게 구성했고 최근에는 음료형 제품도 내놓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이들 단백질 제품은 매일유업, 일동후디스가 분유 사업을 하면서 늘 다루던 원재료를 ‘재구성’, 성인 대상으로 ‘리포지셔닝’한 사례다. 리포지셔닝이란 소비자 욕구와 경쟁 환경 변화에 따라 기존 제품이 갖고 있던 위상이나 위치를 분석해 새롭게 조정(배치)하는 활동을 말한다.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해 홈 가전 시장에서 바디프랜드를 제치고 1위에 오른 세라젬도 리포지셔닝 성공 사례로 분류된다.

세라젬은 애초 ‘척추 온열의료기’ ‘안마의자’ 등을 개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소비자는 세라젬 제품을 의료기기로 인식했다. 즉 ‘아픈 사람이 찾는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세라젬 경영진은 이를 ‘홈 헬스케어 가전’으로 리포지셔닝했다. 제품 판매처도 종전 의료기기 매장이 아니라 근사한 카페형 체험 공간으로 바꿨다. 일명 ‘세라젬 웰카페’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 매장이라고 고객이 인식하면 구매 권유, 영업에 대한 부담으로 충분히 체험해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그래서 커피 등 음료값을 내고 체험을 받는 형태로 바꿨는데 큰 호응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웰카페 직원들은 체험하는 고객이 먼저 묻지 않는 한 영업 행위를 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소비자의 심리적 부담을 줄였고 이는 높은 만족도로 이어졌다. 웰카페는 2019년 4월 1호점이 개소한 이후 2년여 만에 100호점을 돌파했으며 현재는 125개가 운영되고 있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라젬 매출액도 덩달아 급성장세다. 2020년 매출액 3002억원이었던 것이 지난해는 6671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귀뚜라미는 ‘보일러’라는 업의 본질을 재정의했다. 냉동 공조와 온열매트 사업에 진출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냈다. 사진은 귀뚜라미의 온열 카본매트. (귀뚜라미 제공)
▶유형 3. 시장·고객 세분화

▷수요 찾아 ‘니치 마켓’ 진입

시장과 고객을 세분화해 ‘위기’를 돌파하기도 한다. 포화된 시장에서 새로운 ‘틈새’를 찾는 경영 전략이다. 대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 스마트워치 시장 개척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이미 스마트워치 시장은 존재했다. 삼성전자 역시 이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들었지만 차별화에 실패, 화웨이에 밀려 3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해법의 실마리를 ‘헬스케어’에서 찾았다. 시장 조사 결과 체성분 분석, 활동량 측정을 위해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는 소비자 수가 많다는 것을 파악했다. 갤럭시워치3 모델부터 헬스케어 기능을 대폭 강화하며 애플워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 헬스케어족에게 집중 선택을 받으며 올해 2분기 세계 시장점유율을 9.2%로 올리며 화웨이를 제치고 전 세계 스마트워치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1위인 애플(29%)과의 격차도 좁히는 데 성공했다. 경쟁자인 애플의 태도도 달라졌다. 갤럭시워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 애플워치에 헬스케어 기능을 대대적으로 보강하며 ‘점유율 사수’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 중에서는 ‘코나아이’의 턴어라운드 사례가 눈길을 끈다. 이 회사는 신용카드, 칩 생산이 주력이었다. 그런데 신용카드 시장이 성장 정체기에 다다랐다. 2019년에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위기를 ‘시장 세분화’로 뚫었다. 전체 신용카드 시장은 포화 상태지만, 혜택이 많은 신용카드를 원하는 수요가 여전히 많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특히 학생증, 보건증 등 신분증을 교통카드·직불카드 등 결제 수단으로 동시에 활용하고 싶어 하는 고객이 상당하다는 점에 집중했다. 카드에 다양한 기능을 더한 ‘스마트카드’, 지역민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지역화폐’, 후불 하이패스 카드 시장 등 신시장도 부지런히 개척했다. 최근에는 자동차 열쇠 대신 소지하기만 해도 도어 오픈, 웰컴 기능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카드키 사업에도 진출했다. 이 덕분에 2018년 1%에 그치던 스마트카드 제품군 매출 비중은 2021년 3분기 기준 47.7%까지 치솟았다. 단순 신용카드 제조업에서, 스마트카드 전문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코나아이 실적도 2020년 흑자로 전환, 최근에는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20%를 웃돈다. 오정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신사업에 진출하는 사업 확장(business expansion) 전략을 잘 구사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사업 전환 성공하려면

▷스피드 경영만으로는 한계

코로나19 장기화 때 많은 진단키트, 마스크 제조유통 업체들이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SD바이오센서 등 일부 기업만이 흑자 기조를 유지할 뿐 대부분 기업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 발발 당시 이들 기업은 성장 정체가 왔던 본업을 시장 상황에 맞게 재빨리 태세 전환하면서 실적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코로나 특수가 사실상 막을 내리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일부 업체는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정도다.

김석집 네모파트너즈POC 대표는 “많은 진단키트 업체가 다양한 진단 사업을 타진하다 코로나19가 터지자 이쪽으로 올인한 것은 칭찬해줄 만하다. 그러나 향후 본업을 기반으로 장기간 성장할 수 있는 신사업, 신시장 발굴에는 힘을 쏟지 못했다는 점이 다른 업계에도 타산지석이 될 사례”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8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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