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말고 견습생에 가업 물려준 佛여성...대담한 450명 만들었다

박소영 2022. 12. 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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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포함해 모든 여성이 대담하게 해냈습니다. 야망과 확신을 가지세요.”

프랑스의 유명 샴페인 기업 뵈브 클리코에서 주최하는 '볼드 우먼 어워드' 50주년 행사가 지난 1일 파리 올랭피아 극장에서 장 마크 갈로 뵈브 클리코 회장(왼쪽) 등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1972년 초대 수상자인 91세 지젤 피코(오른쪽)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 뵈브 클리코

지난 1일 프랑스 파리 올랭피아 극장에서 열린 프랑스 럭셔리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가 개최하는 ‘볼드 우먼 어워드 바이 뵈브 클리코(이하 BWA)’ 50주년 행사에서 백발이 성성한 91세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지난 1972년 프랑스에서 처음 열린 BWA 수상자인 지젤 피코다. 1960년대에 보기 드물었던 여성 토목 엔지니어로 건설 사업을 이끌어 성공했다. 남성들이 즐비한 건설 현장에서 그가 발휘했던 대담한 리더십은 프랑스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다.

뵈브 클리코는 창립 200주년이었던 1972년 BWA를 제정해 개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처음 열렸고 점점 참여국이 늘어나면서 올해까지 전 세계 27개국에서 450여명의 혁신적인 여성 기업인 수상자가 배출됐다. 수상자는 뵈브 클리코 커뮤니티에 초대된다. 뵈브 클리코의 심장과도 같은 샴페인 저장 시설을 방문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포도나무를 수여 받는 ‘포도나무 세례식’을 경험한다.

프랑스의 유명 샴페인 기업 뵈브 클리코에서 주최하는 '볼드 우먼 어워드' 50주년 행사가 지난 1일 파리 올랭피아 극장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한국 수상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왼쪽)와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가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뵈브 클리코

한국에선 2018년에 처음 BWA가 실시됐다. 뷰티 브랜드 ‘클리오’의 한현옥 대표가 초대 수상 영예를 안았고, 2019년엔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온 심재명 명필름 대표, 2021년엔 유업계의 최초 여성 전문경영인인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가 선정됐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상식을 열지 못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근 3년 사이 BWA 상을 받은 한국·캐나다·브라질·나이지리아·네덜란드·영국 등 10여 개국에서 60여명이 참석했다. 1970~80년대 주요 수상자 수십명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장 마크 갈로 뵈브 클리코 회장은 “클리코 여사는 젊은 나이에 엄청난 혁명을 일으킨 ‘샴페인의 위대한 여성’이었다”며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 이제는 여성은 물론 많은 사람에게 기업가 정신의 새로운 비전을 세우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프랑스 샴페인 기업 뵈브 클리코를 크게 발전시킨 클리코 여사. 사진 뵈브 클리코 홈페이지 캡처

BWA는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가 창립자인 뵈브 클리코 여사(1777~1866년)의 정신을 계승하며 미래의 또 다른 위대한 여성을 발굴, 지원해온 프로젝트다. 클리코 여사의 원래 이름은 바브 니콜 퐁사르당이다. 샴페인 사업을 하던 프랑수와 클리코와 결혼해 클리코란 성을 얻었고, 남편이 사별해 프랑스어로 ‘뵈브(Veuve·미망인)’란 호칭을 얻었다.

클리코 여사 스토리에선 ‘대담성’ ‘창의성’ ‘혁신’ 등의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805년 고인이 된 남편 대신 27세에 시댁의 가업인 와이너리 경영을 책임지게 됐다. 당시 프랑스는 여성이 일하기는커녕 은행 계좌를 트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대였지만 클리코 여사는 굴하지 않았다.

뵈브 클리코 샴페인 옐로 레이블

그는 샴페인 업계의 대변혁을 주도했다. 샹파뉴(영어로 샴페인) 지역에서 첫 번째로 기록된 빈티지 샴페인을 만들었고,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샴페인을 만드는 ‘리들링 테이블(병을 거꾸로 세워서 찌꺼기를 모을 수 있도록 만든 틀)’을 발명했으며, 랭스 쪽에서 나는 레드와인을 샴페인에 블렌딩하는 방법으로 최초의 ‘블렌딩 로제’ 샴페인을 만들어냈다.

클리코 여사는 유럽은 물론 미국·인도·러시아·브라질·중국·캐나다·호주·일본 등에 샴페인을 수출했다. 그가 사망했던 1866년 당시 샴페인 판매량이 연간 75만 병을 기록했다.

클리코 여사는 시가의 가업을 어마어마하게 성장시켰지만, 자신의 딸에겐 물려주지 않았다. 사업 능력이 못 미더웠기 때문이다. 대신 견습생 중 가장 재능이 있던 에두아르 베를레를 눈여겨보고 자신이 닦은 노하우를 오롯이 전수한 뒤 샴페인 사업을 통째 넘겼다. 21세기 들어 자리 잡은 전문경영인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한 셈이다.

프랑스의 유명 샴페인 기업 뵈브 클리코에서 주최하는 '볼드 우먼 어워드' 50주년 행사가 지난 1일 파리 올랭피아 극장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할리우드 스타 기네스 팰트로(왼쪽)가 이날 연사로 나와 큰 박수를 받았다. 사진 뵈브 클리코


이번 행사에 참석한 김선희 대표는 “19세기에 이렇게 대단한 역사를 쓴 여성은 찾기 힘들 것"이라면서 "클리코 여사의 대담함과 목표지향적인 가치관 등이 사업가에게 큰 영감을 준다”고 했다.

뵈브 클리코의 50주년 행사는 세계 여성 기업인들의 교류 장이기도 했다. 함께 샴페인을 마시면서 서로의 사업을 소개하고 경영 노하우를 공유했다. 또 미래의 여성 기업인을 꿈꾸는 프랑스의 20대 대학생 수십명도 초대해 여성 기업인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도 선사했다.

이날 연사로 참석한 할리우드 스타 귀네스 팰트로는 “여성 사업가들은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서로 돕고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팰트로는 지난 2008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구프(Goop)’를 설립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프랑스 랭스 인근 베흐지에 있는 뵈브 클리코의 포도밭에는 볼드 우먼 어워드 각 수상자 이름표가 달린 포도나무가 모여있다. 한국 수상자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지난 2일 자신의 포도나무 아래 샴페인을 뿌리고 있다. 사진 뵈브 클리코

지난 2일에는 수상자 60여명이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30㎞에 위치한 랭스의 뵈브 클리코 샴페인 하우스를 방문했다. 랭스 인근의 베흐지에선 자신의 이름표가 달린 포도나무 세례식을 진행했다. 한국 BWA 2회 수상자로서 참석한 심재명 대표는 “언제든지 이곳을 방문하면 내 이름이 적힌 포도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며 “클리코 여사의 위대한 삶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에서도 계속해서 또 다른 대담한 여성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리(프랑스)=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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