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 "코미디는 나에게 스릴…나이 들어도 놓지 않을 것"

김희윤 2022. 11. 18. 14: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코미디극으로 대학로 돌아온 장진 감독
장진 연출. 사진제공 = 파크컴퍼니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부탁인데요. 돈 열심히 벌어 놓을 테니, 6개월에 한 번 정도씩 훔치러와요. 하하하”

독신자 아파트에 혼자 사는 여교사 유화이는 베란다 넘어 집에 침입한 도둑 장덕배의 출현에도 태연하다. 훔쳐갈 게 없다고 투덜대는 덕배에게 화이는 돈 많이 벌테니 6개월에 한 번씩 다시 오라 천연히 말한다. 영화 ‘아는여자’에서도 불치병에 걸린(줄 아는) 주인공 동치성은 집에 들어온 도둑에게 돈다발을 몇 개 건네며 “행여 계속 도둑질 할 거면 걸리지 말고 잘 해라. 이 동네에서 또 걸려 가지고 도망치면... 우리 집에 와서 숨었다 가라”고 위로를 건넨다. 장진의 도둑은 악하지 않고, 또 그 피해자들은 약하지 않다.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도둑과 피해자의 관계가 기묘하게 전복되며 빚는 유쾌한 상황과 대사는 관객에게 낯설지만 따뜻한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래서일까, 그는 “코미디는 ‘발명가적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평범한 상황 속, 비범하게 직조된 캐릭터가 툭툭 뱉는 말의 맛이 빚어낸 웃음. 세상은 이를 ‘장진식 코미디’라고 명명했지만, 그는 손을 내저으며 “그건 아무것도 모르고 거침없이 시도했던 20대 당시 제 표현들을 좋게 봐주셔서 그런 것”이라며 “파르스(Farce·소극笑劇) 장르는 메시지를 주입하거나 특정 목적이 없어 만들기가 더 어렵다”고 덧붙인다.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가, 신춘문예 희곡부문으로 화려하게 등단 후 한때는 꽤 인정받는 배우로도 활동했던 재담꾼 장진이 10년 만에 자신의 오랜 작품 ‘서툰사람들’로 무대에 돌아왔다.

그가 스물셋, 군 제대 5일을 남겨두고 완성한 이 작품은 1995년 서울연극제 출품작으로 초연 후 2007년, 2012년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한 대학로 최고 흥행작이다. 10년 만의 연출을 위해 대본을 수정하고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는 그를 15일 서울 대학로 아떼오드 연습실에서 만났다.

27년이 지난 사이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바뀌었다. “서툰 사람들이 50대 중반에 연출할 작품은 아니라서 더 늦기 전에 꼭 한번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그는 ”30년 전 작품이라 지금 시대에 통용되지 않는 건 바꿨다“고 한다. 또, 너무 어릴 적에 썼기도 했지만, 그땐 왜 그렇게 해맑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는 그는 ”나는 내 작품에선 악당도 괜찮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90년대 초 ‘바보미학’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한 서툰 사람들 속 인물들은 어딘가 어리숙하고 바보스럽지만, 이들을 보면 놀리고 싶거나 조소가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부러운 순간들이 생겼단다. 그는 팍팍하고 살벌한 세상, 관객들이 저들이 내 친한 친구가 됐으면 좋겠고, 저 친구처럼 잠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 서툰 모습을 보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장진 감독

늘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과 작업을 해온 탓에 이른바 ‘장진 사단’까지 이끌던 그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운 얼굴을 찾기 위해 직접 소극장 공연을 보며 배우를 선발했다고 소개했다. 배우 이지훈을 비롯해 오문강, 임모윤, 김주연, 최하윤, 박지예가 그렇게 작품에 합류했다. 1인 3역을 소화하는 멀티맨은 장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배우 이철민과 안두호가 맡아 극에 활력을 더한다. 장 연출은 “나 역시 연극이 오랜만이기 때문에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있다”며 “제 작품을 통해 ‘아 저런 배우도 있구나’라고 많은 관객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그가 밝힌 소극에 대한 어려움은 코미디를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코미디로 이름을 알린 그지만 여전히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 이 코미디가 먹힐까를 놓고 고민한다. “60이 넘어서도 코미디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또 자신 없지만, 그래도 코미디를 계속 할 것 같다”는 그는 “그래서 코미디는 늘 스릴 있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이 코미디가 유효할지 저 또한 궁금하다”고 고백한다.

못 웃길까 봐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품격 있는 코미디만큼은 놓지 않고 싶다고 역설한 그는 “웃음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영혼 파는 것은 지양하되 내가 50대 중반, 60대가 되면 도전하고 싶은 코미디를 생각하고 놓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공연은 내년 2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3관, 전석 5만50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