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의 지방시대] “도시청년 유입” 정면 돌파, 살아나는 농촌 꿈꾼다

오영환 2022. 11. 1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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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위험 최상위권 의성군의 도전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지난 1일 오후 1시 30분쯤 경북 의성군 청사 앞.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군청길, 중앙길이 텅 비다시피 했다. 가끔 보행보조기에 의지하거나 전동 스쿠터를 모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길과 면한 염매시장도 휑했다. 군청 옆 프렌차이즈 커피숍은 대도시보다 넓었지만, 손님은 기자뿐이었다. 의성역 증축 공사와 북카페 조성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한적한 읍내를 달랬다.

“그래도 주중은 낫습니다. 주말이 되면 외지 출신 공무원들이 빠져나가 의성읍내는 죽은 도시나 다름없지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신모씨(64)는 “과거와 달리 토박이 공무원은 극소수”라며 “주말엔 식당 문을 여는 곳이 드물다”고 했다.

「 서부 안계면 청년 시범마을 주목
일자리·주거·의료·돌봄체계 정비

줄어들던 청년인구 증가세 반전
40여개 사업 지속가능성이 관건

경북도, 영천·영덕으로 모델 확대
“관 주도 한계, 민간영역 넓혀가야”

군청서 도보로 5분인 역전오거리 쪽 의료 시설은 3년 전보다 더 늘어난 듯했다. 병원과 요양병원, 의원과 치과, 약국이 빼곡했다. 당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곧잘 마주쳤던 외국인 근로자는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19 여파가 크지만, 오더라도 일당이 더 좋은 곳으로 떠나기 일쑤라고 한다.

출생아 200명, 사망자 800명 고착

경상북도 한가운데 땅콩 모양의 의성군. 18개 읍·면에 서울 두 배 면적의 거대 농촌 도시는 여전히 소멸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 인구는 4만 명대로 내려앉을 판이다. 10월 기준 5만172명이다. 1992년 9만6598명이던 인구가 30년 만에 반감했다. 출생아 수가 200명대로, 사망자 수가 800~900명대로 고착하면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표는 악화하고 있다.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전체 인구로 나눈 지방소멸 위험지수를 보자. 올 10월 주민등록인구 기준 의성군 지수는 0.108로 젊은 여성 한 명에 고령자 열 명꼴이다. 지수는 낮을수록 소멸 위험이 크고, 0.2 미만은 소멸 고위험 지역에 속한다. 의성군은 최근 10년 새 지수가 곤두박질쳐왔고, 위험 지수는 늘 전국 최상위권이었다. 올 10월 현재 전국 1위인 인접 군위군(0.107)과 차이가 없다. 한계상황에 직면한 마을이 그만큼 늘어났다.

의성군의 평균 연령과 고령화율은 소멸 위험 지수와 동전의 양면이다. 지난해 평균 연령이 58.3세로 전국 1위다. 2016년 55.3세에서 5년 만에 3세나 올라갔다. 70대가 농업 종사자의 막내뻘이라고 군 관계자는 전한다. 의성군 평균 연령은 경북(46.3세)보다 12세, 나라 전체(43.5세)보다 14.8세나 높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고령화율)도 지난 9월 현재 44.0%로 전국 1위다. 인구의 절반가량이 법정 노인인 셈이다. 나라 전체의 고령화율은 17.8%다. 의성군의 고령화율은 2002년 22.3%로, 2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엄청난 속도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의성군의 초등학교는 폐교 수가 더 많다. 1983년 이래 초등학교 53곳(분교 35곳), 중학교 7곳(분교 3곳), 고등학교 3곳 등 63개교가 문을 닫았다. 현재는 초등 16곳(분교 1곳), 중학 10곳, 고등 6곳이다. 전체 초중고 학생 수는 2297명으로, 1970년대 군 단위 공립중학교 한 곳의 전체 학생 수와 비슷하다. 지방소멸을 이만큼 상징하는 지표는 없다.

의성군의 노력은 눈물겹다. 서부지역 거점인 안계면에 4년째 조성 중인 ‘이웃사촌 청년 시범마을’은 회생을 위한 대도전이다. 일자리와 주거, 복지·의료 체계를 구축해 사라지는 농촌에서 살아나는 농촌으로 바꾸려는 경북도와 의성군의 1200여억원 규모 합동 프로젝트다. 안계면 원도심에 일터·주거·의료·상업시설을 한데 모아 압축도시를 꾀한 점도 주목거리다.

지난 2일 점심 시간대에 들른 원도심 일대는 차량과 사람의 왕래가 적잖았다. 서부권 거점병원인 영남제일병원 옆에 2019년 문을 연 2층짜리 출산통합지원센터는 잘 정비돼 있었다. 미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베이비 오감놀이 등 6개 프로그램과 요리 교실을 운영 중이다. 센터 관계자는 “놀이방은 코로나19로 운영하지 않고, 장난감만 대여하고 있다”며 “회원(보호자) 가입자가 465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인근 하나국공립어린이집은 새로 확충했고, 안계초등학교는 AI 교실을 열었다.

출판사·식당·출산지원센터 등 들어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영남제일병원의 외래산부인과도 제자리를 찾고 있다. 2년 전 여성 전문의를 영입하면서다. 산전 진찰이 2015년 50회에서 올해(10월 기준) 230회로, 부인과 진료는 2020년 300회에서 올해 1339회로 늘어났다고 한다. 임도형 원무과장은 “보건복지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이번 달부터는 소아청소년과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신복련 의성군 보건소장은 “앞으로 공모사업을 통해 외래산부인과의 분만산부인과 전환과 공공산후조리원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 돌봄 서비스와 출산 환경 조성은 젊은 부부 유지와 유입에 불가결하다.

청년 일자리와 관련해선 24개 팀이 창업했다. 1인당 2년간 최대 6000만원을 지원하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사업과 팀당 최대 1억원을 지원하는 일자리 사업 등 공모를 통해서다. 의성군 조례상 청년은 “19세 이상 45세 이하로 탄력적으로 적용한다”고 돼 있다. 유입 청년을 위한 주거로 스틸하우스 18동과 컨테이너하우스 23동 등이 마련됐다. 내년 말에는 140호 규모의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선다. 청년들 사업은 그림책 출판, 지역산 농산물 가공식품 개발에서 음식점까지 다양하다.

김진우(42·여)씨는 요리 관련 출판사 에디터를 하다 공모에 당선돼 2020년 만두요리전문점(오늘손만두)을 개업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10년 전 고향인 안계면으로 귀촌한 아버지의 영향을 적잖게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도시에서 쫓기다시피 살았지만, 지금은 이웃 주민들과 오손도손 지내면서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대구가 고향인 최성신(29)씨 남매는 올 3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디저트 전문점 및 복합문화공간인 스윗띵을 오픈했다. 2년 전 코로나19로 국제교류재단의 해외봉사 길이 막히면서 의성군 살아보기 사업에 응모했다가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창농 청년도 19명이 배출됐다. 시범사업에 따른 안계면 유입 청년(19~45세)은 올 9월 현재 159명이고, 이 중 84명이 전입을 마쳤다. 사업 덕분에 안계면 청년 인구는 만년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8년 972명에서 지난해 977명으로 5명 늘었다. 같은 기간 의성군 전체 청년 인구는 1776명, 의성읍은 615명 감소했다. (의성군 자료)

인구의 지방 역류, 그것도 청년 인구 유입은 난제 중 난제다. 세종시가 출범하고 153개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10개 지방 혁신도시 조성이 한창이던 2011~16년 수도권 인구의 지방 순유입 규모는 6만 명에 불과했다.

일자리와 인구증가 선순환 기대

의성군 측과 전문가는 시범마을 사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유정규 행복의성지원센터장(경제학 박사)과 정회훈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에 물어보았다.

Q : 사업의 의의와 특징은.
▶유정규 센터장=“시범마을 조성사업은 인구 구성을 개선해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런 만큼 청년층 유입이 중요 정책 목표다. 이를 위해선 일자리는 물론 주거·문화·복지·의료·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 사업이 농촌 지역에 새 희망을 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회훈 박사=“광역단체인 경북도와 기초단체인 의성군이 연계 협력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부분의 시범사업은 사업 구조가 단순하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이 사업은 대규모다. 경북도의 25개 부서가 참여하고 있고, 국비 공모사업과 의성군 자체사업을 포함한 40여 개 사업이 패키지 형태로 결합해 있다.”

Q : 사업의 성과와 과제는.
▶유 센터장=“지역에 새로운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많은 지역에서 이 사업을 주목하고 있고, 경북도는 내년부터 이 사업을 영천과 영덕으로 확대한다. 지역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런 만큼 ‘일자리를 가진 청년’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 디지털 노마드를 지향하며 새 가치를 창출하는 청년 그룹의 유치 방안이 주요 과제다.”

▶정 박사=“사업은 청년 유입 등에서 확실한 성과를 냈다. 이와 별개로 한계점도 드러냈다. 짧은 기간 사업들을 압축적으로 추진하면서 지속 가능성, 지역 사회의 수용 등에서 문제점이 생겼다. 특정 지역 집중 개발로 지역 간 격차에 대한 우려도 커졌고, 행정이 사업 기획단계부터 주도하면서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앞으로 이질적인 사업 계획들이 뒤엉키지 않도록 사전에 사업의 성격, 위상, 역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의성군의 시범마을 사업은 일대 실험이기도 하다. 지자체의 천편일률적 출생률 제고 정책 대신 청년 인구 유입에 착안했다. 지속 가능성은 최대 관건이다. 일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다시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이 거듭나는 선순환을 이룰 것인가. 의성군의 도전을 지켜보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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