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다시 만난, 20세기 소녀&소년

전혜진 2022. 10.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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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YS WE LOVED. 우리가 사랑한 시절,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진짜 사랑을 기다리는 네 사람. <20세기 소녀>의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그리고 노윤서의 이야기.

김유정의 성장

Q : 1999년생으로서 1999년에 사는 인물을 연기하는 건 어떤 느낌이었나요

A : 좋았어요. 원래 취향이 레트로해요.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80~90년대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인데, 〈20세기 소녀〉에 박기영의 ‘시작’이 상징적으로 등장해요. 정말 좋아하는 노래라 더 신나게 찍었어요.

Q : 19년 차 배우와 인터뷰하는 기분이 제대로 납니다(웃음)

A : 새로운 건 잘 몰라요(웃음). SNS에 새로운 기능이 나와도 한참 뒤에 알고, 스마트폰도 문자나 통화 위주로 쓰는 편이죠.

Q : 어린 나이에 데뷔해 시류에 민감할 것 같은데 오히려 반대라니 흥미롭네요

A : 엄마가 늘 말씀하셨어요. “너는 더 천천히 가야 한다”고. 어릴 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알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딸에 대한 염려였다는 걸. 그런 이야길 많이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향에 반영된 것도 있어요.

박정우가 입은 셔츠는 Bottega Veneta. 니트 톱은 Prada. 팬츠는 Acne Studios. 슈즈는 Celine. 벨트는 Dolce & Gabbana. 변우석이 입은 수트와 블라우스, 슈즈는 모두 Dolce & Gabbana. 김유정이 입은 재킷과 터틀넥 니트, 스커트, 슈즈는 모두 Dior. 노윤서가 입은 재킷과 쇼츠, 링은 모두 Givenchy. 부츠는 Ports 1961.

Q : 2010년 드라마 〈동이〉에서 한효주 아역을 연기했는데, 〈20세기 소녀〉에선 한효주가 당신의 역할인 보라의 어른을 연기했어요. 느낌이 남달랐겠네요

A : 효주 언니와는 인연이 깊어요. 〈일지매〉에서도 언니의 아역을 했죠. 이번 영화를 계기로 더 가까워졌는데, 감사하게도 “오래전 유정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유정이 작품에 출연해 보답하고 싶다”고 해주셨어요. 영화를 보고 더 좋았어요. 보라가 성장한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효주 언니 아니면 안 됐을 것 같아요.

Q : 그때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죠

A : 언니 오빠들과 연기하던 시절이었는데, 점점 또래들과 연기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어요. 저는 늘 한발 물러서서 기다리는 쪽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앞장서서 주도하지 않으면 대화 흐름이 막히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처음엔 너무 무서웠고 무거웠어요. 지금은 적응돼서 어느 정도 즐기고 있는데, 그래서 조심하려고 해요. 그런 자리에 있더라도 물러나서 바라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요.

Q : 연기 재미를 알아가는 시기군요. 연기 인생에서 분기점이 된 작품은

A : 〈구르미 그린 달빛〉이요. 열심히 한 작품이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큰 주목을 받다 보니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당시 고등학생이기도 했고 멘탈이 지금처럼 단단하지 못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더 성장할 수 있었죠. 〈20세기 소녀〉도 새로워요. 현장에서 제 역할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연기를 즐기면서 했어요. 영화 속 내 모습이 나조차 생경할 만큼. 앞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데 큰 영향을 줄 것 같아요.

김유정이 입은 재킷과 스커트는 모두 Miu Miu. 로퍼는 Gucci.

Q : 예능 〈청춘MT〉 보니 〈구르미 그린 달빛〉이 잘된 이유를 알겠더군요. 오랜만에 모였는데도 팀워크가 좋아요

A : 오래 이어온 관계라서 그런 것 같아요. 함께 고생해서 좋은 결과를 만든 사람들이잖아요. 시간이 흘러 각자 자리 잡은 상태로 만나니까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 같아요.

Q : 〈20세기 소녀〉에는 누군가 사랑한 시절과 그 시절 안에 머물렀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추억이 한가득입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나요

A : 어릴 적 금호동에 살았어요. 안쪽 골목길에 할머니들이 하는 냉면집이 있었고, 동네를 떠난 후에도 그 냉면을 먹으러 갈 정도로 좋아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냉면집이 없어졌어요. 할머니께서 가게 문을 닫을 것 같다는 이야길 듣기는 했는데, 진짜 없어지니까 너무 슬픈 거예요. 그 육수 맛과 골목의 정서, 늘 반갑게 인사해 주던 할머니들.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요.

Q : SNS를 보니 독서를 많이 하더군요

A : 지금은 소설이나 시집같이 편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읽어요. 한때는 철학과 인문학, 과학에 빠졌었어요. 에리히 프롬, 프로이트 책도 즐겨 찾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하면서 읽을 때도 있었어요. 저는 책을 한 번씩 다시 읽거든요. 그럼 더 이해하게 되고, 다른 의미가 보이기도 하죠. 책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게 됐어요.

Q : 최근 마음에 박힌 책 구절이 있다면

A : 이병률의 ‘얼음’이라는 시 마지막 구절인 ‘그 모든 것에 과하게 속하지 않을 수 있다면’. 몇 년간 제가 품었던 화두와 맞닿아 있는 구절이에요. 부족하더라도 과하지 않은 것이 더 좋아요. 부족하면 채워가면 되니까요. 감정이든 생각이든 인간관계든 일이든. 저도 그렇고 세상 모든 것이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변우석의 청춘

변우석이 입은 스웨터와 팬츠, 부츠는 모두 Alexander McQueen. 링은 Chrome Hearts.

Q : 키가 커서 어디서든 눈에 쉽게 띄겠어요

A : 사람 많은 곳을 약속 장소로 잡아도 상대는 저를 금방 찾더라고요. 저는 못 찾아도…(웃음).

Q :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죠? 영화제는 어땠나요

A : 정말 좋았어요. 항상 가고 싶었고 놀러 오라는 지인도 많았지만, 제 작품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가지 않았거든요. 드디어 기회가 왔죠.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Q : 91년생이니까 〈20세기 소녀〉 네 배우 중 그나마 20세기를 가장 많이 겪은 편이에요

A : 맞아요. 뭔가 경험하기엔 저도 어렸지만요(웃음). 다섯 살 터울의 누나가 있는데 그 시대의 노래나 감성을 어깨너머로 봤어요. 그런 기억이 이번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김유정이 입은 재킷과 스커트, 슈즈는 모두 Prada. 변우석이 입은 수트와 셔츠, 타이는 모두 Louis Vuitton.

Q : 1999년의 변우석은 어떤 아이였나요

A : 초등학생이었는데, 축구를 좋아해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했어요. 축구 교실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요.

Q : 당신이 연기한 풍운호는 90년대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더군요. 캐릭터를 받아들이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A : 감정 톤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감독님과 많은 얘길 나눴어요. 보라의 마음이 명확하게 잡히기 전까진 조금 감추고 가보자고 했죠. 감정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안으로 응축해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말이죠.

Q : 풍운호는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고소공포증까지 견디는 남자죠. 당신은 어떤가요

A : 그 부분은 풍운호와 닮았어요. 사랑할 땐 몰입하는 편이에요. 모든 걸 감수할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아무리 힘든 순간도 버티고 돌파하려는 편이죠.

김유정이 입은 재킷과 터틀넥 니트, 스커트는 모두 Dior. 변우석이 입은 수트와 블라우스는 모두 Dolce & Gabbana. 박정우가 입은 셔츠는 Bottega Veneta. 니트 톱은 Prada. 팬츠는 Acne Studios. 벨트는 Dolce & Gabbana. 노윤서가 입은 재킷과 쇼츠, 링은 모두 Givenchy.

Q :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나요

A : 제게 없는 결을 지닌 사람에게 끌려요. 자기 생각이 뚜렷한 사람에게도. 가령 저희 회사 이사님은 목표를 세우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거든요. 힘든 상황이 생기면 포기할 수도 있고 자기합리화로 넘어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아요. 멋있다고 느꼈어요.

Q : 반대로 나의 장점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건

A : 아무리 힘든 순간도 빨리 잊고 현재에 집중하는 점. 그 힘듦이 결코 가볍지 않더라도요. 주위에서 “그때 너 진짜 힘들었어!” 그러는데 “내가 힘들었어?”라고 반문할 정도죠(웃음).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Q : 〈20세기 소녀〉에는 이정재 주연의 〈정사〉 비디오테이프가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합니다.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정재는 20세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 배우로 활동하는구나. 만약 당신이 지금 찍은 영화가 20년 후에 추억되고, 그때의 당신이 여전히 큰 기대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A : 와…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한데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연기자로서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거죠. 사실 늘 의문이거든요. 과연 20년 후에도 내가 연기를 하고 있을지.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재밌으면 열심히 하는 타입인데, 그때도 연기를 하고 있다면 분명 더 사랑하며 즐기고 있을 거예요.

박정우가 입은 코트는 Recto. 슬리브리스 톱은 Bottega Veneta. 팬츠는 Celine. 네크리스는 Dolce & Gabbana.

Q : 그때 변우석 앞에 수식어가 붙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 ‘믿고 보는 배우’와 같은 말들(웃음). 다음 작품에선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늘 궁금해지는 배우가 돼 있으면 좋겠어요.

Q : 작품 영향 때문일까요. 당신을 생각하면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릅니다

A : 영화제 갔을 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이라는, 기분 좋은 말을 들었어요. 청춘이 그렇잖아요. 고정되지 않은 이미지가 있죠. 그래서 청춘물이 운 좋게 들어오지 않았나 싶어요.

Q : 인간은 언제까지가 청춘일까요

A : 꿈꾸는 순간까지요. 마흔이 됐든 쉰이 됐든 물리적인 나이는 부차적인 것 같아요. 하고자 하는 일에 몰두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한다면 그 순간이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노윤서가 입은 니트, 드레스는 모두 Bottega Veneta.

Q : 당신은 지금 완전 청춘 같군요

A : 네, 완전 청춘(웃음).

Q : 사랑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뭔가요

A :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Q : 지금 당신에게 연기는 좋아하는 일인가요

A : 그건 확실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고,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연기하는 순간이 즐겁고요. 친구들에게 말하니까 다들 그래요. “어,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얼마 뒤면 너 또 엄청 힘들어할 거야. 그러니 지금 즐겨!’(웃음).

박정우의 온도

변우석이 입은 스웨터는 Alexander McQueen.

Q : 이름의 뜻이 뭔가요

A : ‘정’은 나무바를 정. 바를 ‘정’ 자 안에 나무 ‘목’ 자가 있어요. ‘우’는 도울 우. 돌 ‘석’ 자 옆에 사람 ‘인’ 자가 들어가 있죠. 돌처럼 단단하고, 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키면서 바르게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Q : ‘우’ 자가 비 우인가 했어요

A : 하, 그럼 너무 슬프잖아요(웃음). 그런데 비를 엄청 좋아해요. 완전 ‘아날로그’형 인간이거든요. LP 모으고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죠. 조용한 곳에 오두막집 하나 지어서 그 공간의 모든 걸 아날로그 감성으로 꾸미는 게 제 로망이에요.

Q : 〈20세기 소녀〉에서 사건은 오해로 인해 발생하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선 누나 장겨울(신현빈)의 남자친구로 오해받았잖아요. 살다 보면 오해받는 일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대처하나요

A : 이전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해나 틀어짐이 생기면 상대가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오해를 빨리 풀어내는 게 상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최선은 아니더라고요.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도 주고, 이야기할 준비가 됐을 때 다가가는 게 배려라는 걸 깨달았어요.

김유정이 입은 재킷과 스커트는 모두 Miu Miu.

Q : 반대로 누군가를 오해할 때도 있죠

A : 그럴 땐 솔직함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인정하고 사과하기.

Q : 오해를 받았음에도 웃고 상황을 이해하는 백현진은 참 건강한 인물이더군요

A : 현진을 연기하면서 저도 한 수 배웠어요. 자존감 강한 친구라고 생각했죠. 이전의 저는 소심한 사람이었어요. 즐거운 일이 있으면 기뻐하면 되고 슬픈 일이 생기면 울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즐거운 일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슬프더라도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연기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피력하는 순간이 꼭 필요하구나 느꼈죠. 그게 내가 존재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았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어요.

Q :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편이군요

A : 최근에 그렇게 됐어요. 늘 상대의 감정이나 관점에서 생각하다 보니 저를 놓치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제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Q : 〈연애플레이리스트〉의 연하남, 〈번외수사〉의 막내 형사, 〈20세기 소녀〉의 청춘. 이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어떤 걸 남겼나요

A : 〈연애플레이리스트〉의 강윤은 작가님이 저를 보고 만들어주신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그냥 저로서 촬영에 임했던 것 같아요. 차분하고 서정적인 캐릭터로. 그와 달리 〈번외수사〉의 막내 형사 민대진과 〈20세기 소녀〉의 현진은 밝고 왁자지껄하다 보니 캐릭터를 잡아가는 게 힘들었어요. 제가 가장 발랄했던 순간이 언제인가를 끄집어내며 두 인물을 표현하려 했죠.

노윤서가 입은 니트와 드레스는 모두 Bottega Veneta.

Q : 소심한 성격이라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1학년 때는 과대표를 했어요

A : 제 틀을 깨고 싶어서였죠. 신입생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는 자리였는데, 마지막에 선배가 “과대표 할 사람” 했을 때 바로 손들었죠. 다들 가만히 있는데. ‘그때 왜 그랬지?’ ‘그 시선을 어떻게 견뎠지?’ 싶긴 한데 발전하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Q : 사그라져서 아쉬운 것들, 그러나 추억하면 미소 짓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 어릴 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춤을 알게 됐고, 춤을 통해 연기를 접하게 됐는데,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한다는 게 행복했어요. 엄청난 열정을 쏟았죠. 분당 집이랑 신사역 연기학원을 오갔는데, 새벽 5시에 나와서 제일 먼저 학원 문을 열고 운동하다가 수업 듣고 밥 먹고 또 연습하고…. 그러다 집에 들어가면 새벽 2시, 잠만 자고 나와서 또 하루를 반복하는 거죠.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서 삼시 세끼를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때웠는데, 그 열정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열정이 저를 이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요.

Q : 정말 열심히 살았군요. 간절했고요

A : 사라져버린 면도 있어요. 사람에게는 시기마다 담을 수 있는 정량의 에너지가 있다고 믿는데 가득 차 있던 그 ‘진액’ 같은 에너지를 1~2년 동안 대부분 쏟아내버린 것 같아요. 30대까지 유용하게 나눠 쓸 수 있었는데 말이죠. 사그라져서 아쉽지만, 그 안에 담긴 제 마음을 알기에 그게 또 추억이 되네요.

Q : 당신, 굉장히 뜨거운 사람 같아요

A :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웃음).

노윤서의 설렘

박정우가 입은 코트는 Recto. 슬리브리스 톱은 Bottega Veneta. 팬츠는 Celine. 네크리스와 벨트는 Dolce & Gabbana.

Q : 2000년 1월생이죠? 21세기의 시작이 ‘2000년 1월 1일’인지 ‘2001년 1월 1일’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전자라면 당신은 ‘20세기의 마지막 아이’였고, 후자라면 ‘21세기의 첫 아이’인 셈인데,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요

A : 둘 다 마음에 드는데요? 마지막과 시작, 고르기 어려워요. 음, 올해는 많은 걸 경험한 해예요. 첫 드라마, 첫 영화, 첫 영화제…. 그래서 시작이라는 키워드에 조금 더 마음이 가요.

Q : 그렇다면 〈20세기 소녀〉의 네 배우 중 유일하게 20세기를 경험하지 않은 막내네요(웃음). 연두라는 인물로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인물을 연기한 느낌은

A : 직접 경험하진 못했지만, 영화나 노래 등을 통해 익숙하게 접했기에 멀게 느껴지진 않아요. 의상이나 소품들이 자연스럽게 그 시대 감성이 묻어나게 해줬어요. 덕분에 저는 보라와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었죠.

Q : 연기 데뷔작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주도 고등학생이었죠. 비슷한 나이지만 영주와 〈20세기 소녀〉의 연두는 많이 다른데 고등학교 시절 노윤서는 어느 쪽에 가까웠나요

A : 우정을 중요시하는 것도 그렇고, 성격적인 면에서는 연두에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영주의 기질도 있어요. 영주는 똑 부러지잖아요? 자신의 일을 잘해내고 싶은 승부욕이 크다는 점은 영주와 닮았어요. 게으르지만 완벽주의가 있달까요. 이때의 승부욕이라는 건 자신과의 경쟁이에요. 미술도 그렇고 연기도 그렇고, 제가 정해둔 기준에 닿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서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Q : 미술은 언제부터 했나요

A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요. 어쩌다 미술학원에 갔는데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었어요. 재미있으니까 계속하게 됐고, 예고 입시도 보게 됐죠. 모든 게 자연스러웠어요.

Q : 가족 중에 예술적 감각이 있는 분이 있나요

A : 어머니가 예술을 좋아하세요. 어린 저랑 언니에게 발레나 피아노 등을 배우게 했죠. 언니는 지금 발레 강사를 하고 있어요. 저는 적성에 안 맞아서 발레를 빨리 포기했지만요.

Q : 발레는 맞지 않던가요

A : 어린 마음에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딱 달라붙는 옷 입는 것도. 사람들 앞에서 단체로 다리를 찢는 것도. 오롯이 혼자 하는 게 더 끌렸어요.

Q :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 앞에서 연기하고 있어요

A : 제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던 거죠(웃음).

박정우가 입은 재킷과 셔츠, 팬츠, 슈즈는 모두 Gucci. 노윤서가 입은 니트와 베스트, 스커트 모두 Louis Vuitton.

Q : 걷고 있는 길이 뚜렷했기에 연기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했을 것 같아요

A : 처음엔 고민했어요. 연기전공자도 많고 유정이처럼 오랜 시간 연기한 배우들도 있으니까. 많은 걸 경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으니 일단 배워보라는 권유에 학원을 다녔는데, 변화가 조금씩 보이면서 연기라는 게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현장에서 좋은 선배님들과 호흡하며 연기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죠.

Q : 신인 배우가 가장 크게 성장할 때는 베테랑 연기자들과 호흡할 때라고 생각해요. 직접 부딪혀서 깨닫는 것만큼 좋은 가르침은 없죠. 첫 작품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을 만났는데, 가까이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A : 김혜자 선생님, 고두심 선생님과 겹치는 신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살고 계신 인물처럼 보여서 저도 자연스럽게 영주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최영준 선배님도 마찬가지이고요. 〈20세기 소녀〉도 마찬가지인 게, 유정이도 베테랑 배우잖아요? 절친한 친구처럼 잘 끌어줘서 나중엔 서로 눈만 봐도 눈물 나고 그랬어요. 배움의 연속이었죠.

Q : 연두는 “나, 심장을 도둑맞았어”라고 말하죠. 무언가에 첫눈에 반해본 적 있나요

A : 여러 가지가 있는데, 최근 제 심장을 도둑맞은 건 식상하지만 연기예요. 갑자기 찾아온 일이 재밌기 쉽지 않잖아요? 할수록 좋아져요. 잘하고 싶어요. 열정이 생겼거든요.

Q : 〈20세기 소녀〉 배우들을 인물화로 그린다면 어떤 색을 쓰고 싶나요

A : 유정이는 연보라. 캐릭터 이름이 보라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맑고 의리도 있는데 그 느낌이 연보라와 어울리는 것 같아요. 변우석 배우는 하늘색. 키도 크고 시원한 이미지가 있잖아요. 실제로 이야기해 보면 해맑고 순수한 면이 느껴져요. 박정우 배우는 올리브? 발랄한 현진 캐릭터와 달리 실제로 진지한 면이 있어요. 따뜻하기도 해서 올리브가 떠올랐어요. 저는 연두색(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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