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우주라서 내가 소중하다...‘서대문자연사박물관’ 여행

2022. 10. 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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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구청에서 운영하는 국가 수준의 박물관이다. 중앙 정부나 대도시 시청급에서 해도 부족함이 있을 수 있는 일을 구청에서 해내고 있다는 점이 일단 대견하다. 자연사박물관은 우주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박물관이다. 우주의 탄생, 태양계의 형성, 지구의 출몰, 지질의 변화, 자연의 생성, 생명의 명멸 등을 다루고 있다. 자연사박물관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지구의 최고 스타는 역시 ‘나’ 자신이다.

해외 여행 때 들려 본 자연사박물관을 기억해 본다. 대부분 큰 그림 안에 박물관이 있다. 그러니까 고풍스러운 대공원이 있고, 그 중심 부분에 자연사박물관이, 그것도 아주 큰 건물로 지어진 게 보통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자연사박물관의 주인공은 대부분 공룡이다. 그 큰 공룡을 실물 크기로 전시를 해야 하니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그에 비해 아주 편안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 서쪽의 도심 산인 안산 바로 아래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박물관은 그 아파트 아래쪽에 있다. 그냥 산동네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건축물 규모는 만만치 않게 크지만 우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다운 고풍스러움 대신 평범한 빌딩 스타일로 디자인되었다. 유럽의 자연사박물관에 그들만의 특징이 있듯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이곳만의 평범하고 수더분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내로 들어가면 자연사박물관다운 면모를 강하게 뿜어주는 공룡, 식물, 포유류, 해양생물, 곤충, 지질변화에 따른 각종 돌멩이 등의 유물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자연사박물관에 들어서면서 먼저 궁금했던 것은 ‘2022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지구의 자연사 가운데 어느 시기에 해당되는가’였다. 그동안 제일 많이 들은 시기는 쥐라기, 백악기 등 공룡과 관련된 콘텐츠에서 본 단어들이었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지질시대라고 하는데, 지질시대는 지구의 자연사를 정리한 과학 총서이지만, 시대별 생태의 변화를 들여다 보노라면 그 안에는 창작의 모티브가 될 만한 숱한 신비가 담겨 있다. 실제로 사진가, 미술가 가운데에는 지구 과학자 못지 않는 깊은 공부를 통해 수십억 년 전의 지구 현상을 주제로 세상에서 처음 보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44억 년 전 명왕누대 때 생긴 광물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광물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이다. 가장 오래된 암석은 43억 년 전에 생겼다. 명왕누대가 지금까지 연구된 지구 자연사의 출발지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시생누대이다. 초시생대 때 고원핵생물이 출현했고, 고시생대 때에는 광합성을 하는 세균이 나타났다. 인간도 광합성을 하는 존재이니 광합성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고시생대 때의 그 세균이 인간의 시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신시생대 때에는 지구에 대륙 지각이 생겨났다. 오늘날 지구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맨틀이라는 이름의 암석층도 이때 생겼다. 원생누대 때로 넘어가서는 오로시리아기 때 대기권에 산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생누대의 출발점인 캄브리아기는 지구 자연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현재 존재하는 생물의 ‘문’ 가운데 절반 정도가 탄생했고 척추동물도 나타났다.
실루리아기 때에는 삼엽충, 연체동물, 육상동물이 탄생했으며 곤충, 거미, 갑각류 등 절지동물이 대륙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과정 안에서 지각 운동은 지속되었고 데본기에 이르러서는 종자식물, 나무, 곤충, 산호, 바다나리 등이 탄생했다. 석탄기로 넘어가서는 산소량이 더욱 늘어났고 거대한 나무들이 등장하며 숲을 이루기 시작했으며 지구의 산소량도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날개 달린 곤충도 이때 출몰한다. 트라이아스기 때에는 공룡, 익룡, 포유류, 악어가 등장했고 쥐라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많은 공룡이 탄생했다. 그러나 6500만 년 전인 백악기 전세 때 지구의 지각 대분열로 새를 제외한 모든 공룡이 멸종하고 만다. 지금으로부터 2억4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 지구의 포식자로 절대적 문화가 되었던 공룡 시대가 종말을 맞은 것이다. 공룡 멸종 이후 지구에는 더욱 다양한 생명체가 탄생했다. 공룡 멸종 때 살아남음으로써 지구 생명체의 조상이 되어버린 새들은 물론 곰 같은 대형 포유류가 지구 육상을 달리기 시작했다. 꽃이 생겨나고, 나비 같은 예쁜 곤충도 이때 태어났다. 열대기후, 온대기후가 형성된 것 역시 바로 이 시기, 신생대 때의 일이다. 신생대 플라이스토세 때 현생인류가 진화하기 시작했고, 빙하기도 사라졌다. 현대는 빙하기가 없는 ‘홀로세’이다. 인간은 홀로세를 인류 문명 시대라고 규정짓고 있지만, 시각에 따라서 이런 주장은 어림없는 망상일 수도 있다.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된 인간이 지구의 문명을 급속하고 다양하게 발달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지구에 저지른 행동이 결국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홀로세는 빙하기가 끝난 약 1만 년 전부터 오늘까지를 일컫는데, 홀로세의 문명 발달이 홀로세 절멸을 가져오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숱하게 나오고 있다. ‘홀로세 절멸’이란 홀로세를 구성하고 있는 종의 멸종을 뜻한다. 이미 인간은 멸종위기 리스트를 만들어 ‘자연 보호’를 주장하고 있지만 멸종 앞에 선 동식물의 멸종 원인이 주로 인간의 자연 파괴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분이 착잡해진다.

▶나 자신의 귀중함을 알기 위해 자연사박물관을 찾는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우주와 지구의 자연사를 전시한 박물관이지만 이 공간을 그저 구경거리 정도로만 생각하기보다는 근원적인 생각의 변화의 계기로 삼아 보는 게 어떨까. 46억 년 지구 역사를 생각해볼 때 인간의 수명 100년은 보이지 않는 먼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인간의 삶은 큰 가치 없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찰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측정 불가한 광활한 우주, 은하계, 태양계, 그리고 내가 2022년 오늘을 지구에 살고 있다는 점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각하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일이 아닐까. 46억 년이라는 지구의 자연사 중 100년 남짓 살아가며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은 살아감 그 자체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자연사박물관을 찾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1층으로 입장해 3층으로 올라가 다시 1층으로 차근차근 내려오면서 지구의 자연사를 관찰하는 박물관이다. 그러나 1층으로 들어가 곧장 3층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구 자연사의 영원한 스타 공룡이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다. 1층 중앙홀에는 홀 바닥에 1억5000만 년 전부터 1억500만 년 전까지 생존했던 아크로칸토사우르스 공룡의 골격이 재현되어 있다. 10여 m에 이르는 몸 길이, 머리뼈 길이만 1.4m, 몸무게 최고 4톤 등 이 어마어마한 공룡의 골격을 그냥 지나칠 사람은 없다. 공중에는 인간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향고래, 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날아다니는 파충류 프테라노돈, 2억2800만 년 전부터 6600만 년 전까지 살았던 날아다니는 익룡 투푹수아라의 골격도 중앙홀에서 고개를 들면 볼 수 있는 아주 오래 된 지구의 흔적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지구환경관이 있다. 빅뱅과 함께 시작한 우주의 출발, 별의 탄생, 태양계와 지구의 형성 과정을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우주의 역사를 표현해 놓은 우주역사 연대기도 꼼꼼히 살필 만한 우주 대자연사의 놀라운 비주얼들이다. 은하수를 본 적이 있는가? 은하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를 품고 있는 우주의 일부이다. 그 크기가 지름 10만 광년, 중심 두께 3000광년, 그리고 태양계는 은하계의 변두리라 할 수 있는, 은하계 중심 부위로부터 3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광활한 은하계를 몽골의 평원에서, 아타카마의 사막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양계 하면 저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중 8개의 행성 이름과 모형도 펼쳐져 있다.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고 있는데, 그 속도가 시속 1300㎞에 이른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는가. 시속 1300㎞로 돌고 있는 지구에서 편안히, 조용히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로 그 속도 덕에 일출과 일몰의 모습을 매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화산, 지진, 지각 변동 등 지구는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으며, 결국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다는 진리로 이곳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배울 수 있는 일들이다.

제주도 등 지질학적 명소 전시장은 박물관 여행을 현장 기행으로 이어준다. 2층 생명진화관은 앞에서 언급한 ‘지질시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다. 바다와 대기만 존재했던 40억 년 전 지구의 환경, 고생대, 30억 년 전 초기 생명체의 탄생과 멸종을 이야기해주는 ‘고생대, 생명 진화의 출발’, 육지의 거대한 공룡, 바다의 최강자 수장룡, 하늘의 익룡이 번성했던 ‘중생대 공룡의 세계’, 공룡의 멸종 뒤 급속하게 진화한 포유류와 어류, 식물의 확장, 영장류 인류의 탄생 등 오늘날 지구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 ‘신생대, 포유류의 전성기’도 확인 가능하다.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생명체, 육지에서 바다로 들어간 생명체 등 개체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최적의 세계로 들어간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해양 포유류’, 엄청난 분화와 진화를 거듭한 끝에 종의 다양성을 실현한 ‘육상생물과 해양생물의 다양성’ 등도 큰 관심거리이다. 한국의 상어 전시관도 발걸음을 붙잡는 흥미진진한 공간이다.

1층 ‘인간과 자연관’에서는 인간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를 설명하고 있다. 생태계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활동한다는 사실, 식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피다 보면, 인간과 동물, 식물의 스스로 살아가고 종족 번성을 위한 행위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 정도이다. 결국엔 진화라는 측면에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는 질적, 양적 차이가 없음도 알게 된다. 그 다음 이어진 멸종위기종 전시장은 인간이 지구와 우주의 일원으로서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곳이다. 그런데, 멸종위기종 전시장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도 된다. 숲은 점점 번성하고 있고, 해양 생물은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육지의 생명체와, 그리고, 그리고 인간이야말로 이제 멸종위기종에 넣어야 할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어른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새로운 전시 콘텐츠

요즘 각종 전시관에 가 보면 IT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전시 방법을 공개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세 가지 새로운 전시 콘텐츠가 있다. 첫째, 증강현실 즉, AI이다. 공룡과 동물 11가지가 등장하는데, ‘아티바이브’라는 이름의 앱을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깔고, 앱을 가동하여 관심있는 동물을 겨냥하면 해당 동물이나 공룡이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들의 행동은 절대 조악하거나 유치하지 않다. 공룡이나 동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관객들의 흥미를 높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월 Interactive Media Wall’을 경험해 보자. 개방된 공간에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있고, 관람객의 동선과 움직임에 따라 센서가 반응을 하는 시스템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월은 각 지질 세대별 변화와 특징을 보여준다. 셋째, MR 체험존이다. 이곳은 한마디로 색칠공부존이다. 디스플레이에 자연 생태계 그림이 있고, 거기에 자신의 느낌에 따라 적당한 색칠을 해주는 것이다. 색칠공부는 미술공부, 자연관찰의 기본이다. 하늘은 밝은 색이고. 마을은 숲을 닮았고, 뒷산 앞산은 초록이 정석이다. 물론 발상을 전환해서 완벽한 신세계를 만드는 아찔한 즐거움을 즐길 수도 있다.

▶제대로, 꼼꼼히 봐야 하는 이유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이 넓고 가늠할 수 없이 먼 곳이다. 박물관을 빠르게 훑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형이나 그림 구경으로 끝내는 것과, 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식 습득 이야기가 아니다. 박물관을 본다는 것은 지구 또는 우주가 우리 인간과 다른 존재가 아닌, 그 자체 생명으로서 진화하고 변화하고 생존하기 위해 꿈틀대고 폭발하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바다를 고산으로 변화시키고, 바닷물을 짜게 만들어 스스로 썩지 않게 하며, 히말라야에 올라가도 소금이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인 것이다. 지구 환경이 크게 달라질 때마다 지구 생명의 일원인 식물, 해양생태, 새, 공룡, 침팬치, 고릴라, 인간, 코끼리, 호랑이, 사자, 악어 등 살아가는 생명체의 모습도 달라지곤 한다. 그 변화의 순간과 이유, 그 이후의 생태를 바로 자연사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지각 변동이 주로 일어나는 수억 년 전에 벌어진 일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수도 있다. 세월이 또다시 한참을 지나고 그때도 인류가 살아 있고, 자연과학자들이 존재한다면, 또는 인간을 대신한 제3의 인류가 지구를 나름 정리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자.
2022년을 살아가는 오늘의 세계를 ‘그때는 그 시기를 신생대라 분류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오아틀란티스기’로 지상은 숲이 지배하고 모든 생체는 해양으로 들어와 자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시대다’라고 정리될지도 모르겠다. 자연사박물관을 꼼꼼히 살핀다는 것은 지구의 역사는 물론 먼 미래에 대한 판타스틱한 상상의 영감까지 선사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글과 사진 이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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