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정파 스피커 된 공영방송..KBS 수신료 분리 안 무섭나 [KBS 박영환이 고발한다]

박영환 2022. 10. 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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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2017년 KBS 총파업 때 고대영 당시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장면. 오른쪽은 지난 7월 KBS노동조합 등이 김의철 KBS 사장 퇴진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촉구하는 모습. 그래픽=김경진 기자

“우리는 사실 보도보다 '정의로운 보도'에 관심이 있다.” 2017년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민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 성재호 기자(당시 본부장)의 발언이다. 사실을 넘어선 정의가 과연 존재할까?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궤변으로 여길 것이다. 방송법의 세 가지 보도 원칙도 객관·공정·균형이다. 정의는 특정 사실을 뉴스로 접한 시청자가 내리는 판단의 영역이다. 그런데 성 기자는 특정 이념과 세력에 봉사하는 당파적 보도를 정의롭다고 여긴 것 같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기자는 오로지 사실(Fact) 확인을 거쳐 정의에 다가가야 한다고 배웠다. 사실보다 정의를 앞세우는 자는 선동가다. 언론노조 공격으로 부당하게 KBS 이사직에서 해임됐다가 승소한 강규형 명지대 교수도 "언론노조가 말하는 정의는 자기식 정의로, 자신들만 정의롭다는 집단 광기에 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대중 정권 시절 KBS 사장을 지낸 박권상씨는 퇴임사에서 KBS 뉴스가 나아갈 방향으로 '기계적 중립주의'를 제시했다. “KBS는 어느 편이나 특정 당파에 봉사하려고 뉴스 보도에 편파, 왜곡, 과장,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견을 뉴스로 포장하면 안 되고 선전 선동의 목적으로 세상사를 보도하면 안 됩니다.”

기자로 첫걸음을 시작한 노태우 정부 시절에서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KBS 뉴스는 이 기계적 중립주의를 나름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정의로운 보도를 추구하는 당파적 보도는 KBS 구성원에게조차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나라다운 나라’를 앞세운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해 9월 언론노조는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선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고대영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며 총파업을 일으켰다. 북한이 6차 핵실험으로 수소폭탄 개발을 완성했다고 주장한 국면에서 뉴스 취재를 등한시했다.

언론노조는 지난 정부 여당 몫, 그러니까 이젠 야당 측이 된 강규형 이사 등 3명에 대해 그들이 속한 대학과 변호사 사무실로 몰려가 행패를 부렸다. 이사들을 먼저 쫓아내면 KBS 사장을 더 쉽게 해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가 2017년 9월 서울 명지대에서 진행한 강규형 당시 KBS 이사 사퇴 촉구 기자회견. 강 전 이사가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으로 찾아갔다. 강 전 이사는 방통위 의결과 대통령 재가로 KBS 이사직에서 해임됐으나 법정 투쟁 끝에 해임 취소 판결을 받았다. 중앙포토

그 과정에서 공영방송 사장 퇴진을 목표로 담은 ‘언론 적폐 청산’ 문건이 언론에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워크숍에 등장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 문건에는 정치권이 앞장서면 언론 탄압 의혹의 빌미가 되니 방송사 구성원(노조, 협회)과 시민단체, 학계가 먼저 퇴진 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시나리오대로 고대영 사장은 강제로 쫓겨났다. 민주당은 자기들과 무관한 문건이라고 발을 뺐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명분 없는 당시의 방송 파업은 KBS 장악을 위해 문재인 정권과 궤를 맞춘 관제 데모였음이 드러났다. 민주와 정의를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민주주의의 기본인 인권과 법치를 망친 세력이 바로 언론노조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공영방송이 뉴스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파업 와중에 뉴스 현장을 지켰던 기자들은 적폐로 몰렸다. 언론노조 소속 박태서 기자는 70명에 달하는 보도본부 기자의 직책과 이름을 나열한 성명서를 올렸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렇게 외쳤다. “사장이 던져준 보직에 감사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하고 있는 당신들이다. 언제까지 부역할 것인가? 이제 적극적인 공범자를 자처하려고 하는가?” 이 ‘박태서 리스트’는 나중에 고대영 체제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새 경영진이 인사 차별과 배제에 악용했다. 피해 기자들은 노동청에 이를 고발했고, 노동청은 이 문건을 '블랙리스트'로 규정, 현재 수사 중이다.

언론노조는 양승동 PD와 김의철 기자를 차례로 KBS 사장으로 옹립했다. 이렇게 언론노조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사장·부사장·감사·보도본부장·제작본부장·보도국장·취재주간·라디오센터장 등 20여 개 핵심 보직은 언론노조 지도부와 협회장(기자협회, PD협회) 출신들이 전부 차지했다.

반면 박태서 성명서에 이름이 적혔던 기자의 90% 이상은 맡고 있던 국장·부장·팀장의 보직을 박탈당했다. 사전 협의는커녕 통보조차 없었다. 파업 거부자와 언론노조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뉴스 취재와 보도, 심지어 시사 프로그램에서까지 퇴출당했다. 마이크와 볼펜을 빼앗긴 후 기자 업무와 무관한 곳에 배치되기도 했다. 그들이 물러난 곳에는 정의로운 보도를 앞세워 특정 진영 이익을 대변해 온 언론노조원들이 진격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직원들은 기존 KBS 노조를 이탈해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로 옮겨갔다. 언론노조는 전체 직원의 절반 이상을 확보해 꿈꾸던 교섭대표 노조가 됐다. DNA가 일치하는 언론노조와 경영진은 사실상 한 몸이었다. 언론노조가 경영책임자인 사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경영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노영(勞營)방송은 이렇게 탄생했다.

노사가 한 몸이 된 괴물, 즉 노영방송은 브레이크가 없었다. 감사와 소수 이사의 반대에도 만든 ‘진실과 미래위원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름과 달리 비판 세력의 싹을 자르는 탄압 기구였다. 보도국 국장급 기자 4명과 1라디오 담당 국장에게 ‘직장 질서 문란’을 공통의 징계 사유로 내세워 정직 6개월 등 중징계를 때렸다. 기자협회가 언론노조 하수인 역할을 하면 안 된다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게 무슨 직장의 질서를 문란케 한 잘못이란 말인가? 라디오 국장이 공정한 방송을 위해 의견을 제시한 게 왜 징계 대상이란 말인가? 그런데, 정작 시청자를 볼모로 다섯 달 동안 파업을 벌인 언론노조원은 그 누구도 징계받지 않았다.

KBS 전직 고위 간부에 대한 징계심의서. '직장 질서' 문란이 핵심 이유로 적혀 있다. KBS노동조합 제공

정의로운 보도를 내세운 언론노조가 뉴스와 시사 제작 부서를 장악하자 KBS에서 당파적 보도가 일상화됐다. 첫째, 친문 검사의 일방적 주장을 사실 확인 없이 보도해 문제가 됐던 검언유착 오보 사건. 둘째, 서울시장 보선 당시 명확한 증거도 없이 목격자 주장만 수십 차례 보도해 오세훈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공격한 '생떼탕' 보도. 셋째, 청와대 개입 의혹이 짙은 태양광 사업 비리 관련을 다뤘던 ‘시사기획 창’ 재방 취소. 그 밖에 수백 건의 대선 불공정 보도 등 끝이 없다.

제1 라디오 시사프로는 불공정 보도의 또 다른 본산이었다. 주진우와 최경영 등 친문 진영에서 진행자를 독식했다. 언론시민단체 모니터에 따르면 최경영 기자의 '최강시사'는 출연자의 70%가 민주당과 진보 인사였다. 편파의 극치였다. 원래 KBS 출신인 최 기자는 KBS를 욕하면서 뉴스타파로 갔다가 특채 형식으로 다시 입사했다. 재입사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지키지 않아 현재 채용 관련자들은 부정 채용 의혹으로 수사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만 해도 라디오센터는 견제 장치가 작동했다. 당시 고성국 평론가와 최양호씨 등이 진행자로 거론됐으나 라디오 PD들이 '친박 성향'이라며 반발하자 기용을 취소했다.

노영방송 이전 9시 뉴스의 평균 시청률은 16%였다. 정파적인 보도 탓인지, 5년 만에 시청률은 반 토막 났다. 이 와중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KBS가 편파 보도를 중단하지 않으면 수신료 징수를 자율에 맡기겠다고 경고했다. 만약 한전이 전기료에 끼워 넣기 식으로 징수해온 시청료 위탁징수를 거부한다면 KBS는 존립이 위태롭다.

한전에 접수된 TV 수신료 민원의 대부분은 전기요금에 수신료를 포함해 강제로 징수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영방송 KBS는 국민 전체가 주주다. 특정 정파와 이념에 몸을 실으면 안 되고 지금이라도 균형 잡힌 공론장을 제공해야 한다.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의견이 다른 세력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정의로운 보도를 앞세워 해온 특정 진영 스피커 노릇을 청산해야만 한다. 공적 자본이 들어간 KBS가 이들 진영 이익 극대화의 도구로만 쓰인다면 어찌 국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나?

박영환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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