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따릉이족'도 해냈다..50km 자전거 길, 의암호의 쾌감
가을은 ( )의 계절이다.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로 독서, 수확, 천고마비 같은 낱말이 떠오를 테다. 그러나 가을은 또 자전거의 계절이다. 햇볕 쨍하고 바람 살랑이는 요즘이야말로 두 바퀴 여행을 즐기기에 완벽한 시기다. 어디로 갈까. 이왕이면 도시를 벗어나 산 좋고 물 좋은 자전거길을 달리는 게 좋겠다. 이를테면 강원도 춘천 의암호 같은 곳. 지난 22일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춘천으로 향했다. 호숫길을 질주하고 산길도 힘겹게 올라봤다. 가을이 사무치게 매력적인 이 도시, 춘천(春川)이 아니라 추천(秋川)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용산역에서 1시간, 춘천은 자전거 천국
"서울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여 만에 도착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자전거길과 산악자전거 입문 코스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춘천입니다."
22일 아침, 집 근처 자전거 대여점에서 MTB 기종을 빌렸다. 가게는 평일인데도 손님으로 북적였다.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한다는 이들이 많았다. 역시 자전거의 계절인가 보다. 용산역으로 가서 'ITX-춘천' 열차에 올라탔다. 기차 통로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어서 편했다. 1시간 13분 만에 춘천역에 도착. 역사를 벗어나니 청명한 하늘이 반겨줬다.
장비를 점검하고 출발. 우선 '소양강 스카이워크'를 찾아갔다. 요즘은 전국 어딜 가든 스카이워크가 흔하지만, 2016년 소양강에 스카이워크가 생겼을 때만 해도 신선했다. 바닥이 유리로 된 156m 길이의 다리를 걸으면 강 한가운데서 사방으로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스릴은 제법 느껴진다. 유리 바닥 아래로 강물이 굽이치는 게 무섭다며 비명을 주체 못 하는 사람이 많다. 참고로, 스카이워크 안쪽으로는 자전거를 가져갈 순 없다.
고속도로 못지않은 자전거도로
오른쪽에 호수를 끼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평일이어서인지 단체로 질주하는 자전거 동호인은 거의 없었다. 이따금 느긋하게 페달을 밟는 시민들이 스쳐 갔다. 호수 변 카페에는 나들이객이 많았다. 한눈에 봐도 새로 지은 듯한 카페가 전망 좋은 호숫가 곳곳에 있었다.
춘천아트센터와 수변공원을 지나니, 지난해 운영을 시작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탑승장이 나왔다. 잠시 숨을 골랐다. 머리 위로 휭휭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삼악산 꼭대기까지 비눗방울처럼 둥둥 떠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해마다 전국 각지에 케이블카가 새로 생기는데, 현재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가 3.61㎞ 길이로 최장 거리 기록을 갖고 있다. 케이블카 탑승장을 지나니 카누 타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였다. 허벅지가 슬슬 저려왔다. 카누로 옮겨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누 탑승장 인근에 작은 스카이워크가 또 있었다. 소양강 스카이워크보다 먼저 생긴 다리인데 여기에도 유리 바닥 전망대가 있다. 입장료가 없으니 잠시 쉴 겸 들르면 좋다. 여기서 바라보는 삼악산 산세가 케이블카 탑승장보다 훨씬 웅장했다.
선비도 말에서 내려 걷던 길
강촌역 인근에는 자전거 동호인이 '당림리 임도'라 부르는 MTB 코스가 있다. 강촌역을 출발해 다시 돌아오기까지 약 30㎞ 산길을 오르내린다. 계관산(664m) 상부 능선을 타고 가는 임도가 폐쇄된 덕분(?)에 산길을 짧게 도는 '석파령(350m) 코스'를 선택했다. 석파령은 과거 춘천에서 한양 갈 때 넘나든 고갯길이었다. '워낙 길이 험해서 선비도 말에서 내려 걸었다'는 안내판을 보니 입이 바짝 말랐다. 참고로 임도(林道)란 산림자원 관리를 위해 차가 다니도록 만든 길이다.
벼가 누렇게 익은 들판을 따라 달리다가 당림초등학교를 지나 춘천예현병원에 닿았다. 병원 옆에서 석파령 오르는 임도가 시작했다. 길이 포장되지 않은 본격 MTB 코스다. 이준휘 작가는 "핸들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자전거의 성능을 믿고 쫄지 말라"고 당부했다. 비포장도로이긴 해도 미끄러운 돌이 많지 않고 최근 제초작업도 마친 상태여서 자전거 다루기는 우려만큼 힘들지 않았다. 다만 끝을 알 수 없는 오르막길이 암담했다. 중간중간 쉴지언정 안장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쉬었다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듯했지만 묘한 쾌감이 차올랐다. 산들바람이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다시 안장에 올랐다. 내리막길에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날 하루 의암호 순환로 30㎞와 마을길·임도 20㎞, 합쳐서 50㎞를 달렸다. 쉬는 시간까지 예닐곱 시간 소요. 따릉이족에겐 버거운 코스였지만, 그만큼 벅찬 경험이었다. 코스 막바지 의암호 자전거길로 합류할 즈음, 해가 북변산 뒤로 넘어가면서 온 하늘이 불탄 듯 벌겋게 물들었다. 호숫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망연히 먼 하늘을 바라봤다.
■ 여행정보
「
ITX-청춘 기차요금은 용산~춘천 편도 9800원. 기차 한 대에 자전거 거치대를 쓸 수 있는 좌석은 8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앱으로 미리미리 예약해놔야 한다. 춘천역에도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로드형·MTB 자전거 종일 대여료 1만원. 소양강 스카이워크 입장권(2000원)을 사면 춘천에서 쓸 수 있는 '춘천사랑상품권' 2000원권을 준다.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는 '일반 캐빈' 어른 2만3000원,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 2만8000원. 산악 코스는 GPS를 볼 줄 아는 숙련자와 동행하는 게 안전하다. 자전거길 상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 '두루누비' 사이트 참조.
」
춘천=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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