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고 고요한 제시카 한의 집

2022. 9.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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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크츄크네'로 알려진 그녀의 졍형화되지 않은 삼각형, 오각형의 방들과 루버 기둥이 평범하지만은 않은 집.
짙게 코팅된 루버 기둥이 나란히 늘어선 집의 외관. 단아하면서 현대적인 멋을 동시에 풍긴다.

때로 한 사람의 유년 기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 또 다른 결실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이의 태명에서 따온 애칭 ‘츄크츄크네’로 SNS에서 많이 알려진 UX 디자이너 제시카 한의 집을 보면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어릴 때 10년 가까이 주택에서 살았던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취향을 담은 집을 짓고 싶다고 생각했고, 이 집은 오랜 바람의 결과물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정원에서 흙을 밟고 바람을 맞던 시간을 아이의 유년시절에도 선사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행보는 한층 바빠졌다. 집터는 육아를 위해 친정과 가까운 인천 청라지구의 주택 부지로 결정했다. “사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회사까지 출퇴근하려면 편도만 두 시간은 족히 걸려요. 하지만 공간을 통해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 편이라 취향에 맞는 집에서 사는 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마음에 드는 부지를 발견하고 계절마다 변하는 햇빛과 바람의 정도를 관찰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든 지 1년이 지나서야 정식 계약을 했다. 그리고 우연히 바이아키 건축사무소의 이병엽 건축가를 만나면서 그녀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높이 6m에 달하는 창문을 통해 햇빛이 깊숙이 들어오는 거실, LP 음악을 들으며 다도를 즐길 수 있는 간살문 달린 방, 길다란 블랙 싱크대와 바닥과 같은 소재로 제작한 크림색 석재 식탁이 있는 부엌, 천창이 뚫려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워크 룸, 진한 월넛으로 마감한 곡선적인 대청마루가 한데 모인 집이 완성된 것이다.

이천의 미산요에서 구입한 김봉안 명장과 김혜련 작가의 백자. 볼수록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우리 집에는 전형적인 사각형 방이 하나도 없어요. 세 개의 매스를 배치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삼각형 · 오각형 방은 그 자체로 일상의 재미를 선사하죠.” 어둡게 코팅한 스테인리스스틸 루버 기둥을 촘촘히 배치한 외부와 현관의 파사드 또한 이 집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직선을 강조한 루버 기둥은 해의 움직임에 따라 정원과 집 내부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담벼락 앞에 홀로 선 청단풍과 큼직한 두어 개의 돌이 놓인 풍경은 수려한 동양화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이 집을 둘러보면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이 안팎으로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손맛이 느껴지는 도자기,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책, 철거를 앞둔 할머니 댁에서 갖고 온 다기 세트와 다듬이 방망이 등은 새로 구입한 현대적인 아이템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가전이나 조명은 직선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반면, 도자기나 작은 소품은 오래되고 비정형적인 형태를 선호해요.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것, 자연적인 재료와 부드럽게 어우러질 것, 시간이 지난 후 딸에게도 물려줄 수 있을 것 등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그런 물건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월넛 소재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거실과 부엌으로 나뉘는 1층. 6m 길이의 통창으로 한없이 따뜻한 햇빛이 스민다.

주말이 되면 가족은 단풍 · 백일홍나무가 있는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가끔 잔디 위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거나 물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자주 하는 일은 가든 체어에 앉아 멍하니 하늘과 구름을 여유롭게 보는 것이다. “주택에 살아서 좋은 점은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다는 거예요. 단풍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것, 계절에 따라 해의 길이가 달라진다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됐거든요.” 그녀는 이 집에서 지내며 좋아하는 것이 더욱 선명해졌다고 한다. 10대 소녀 시절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언젠가 작은 전시회를 열고 싶은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솟구친 기운을 편안히 잠재울 수 있는 곳, 무언가 좋아했던 예전 기분을 되살릴 수 있는 곳. 이 가족에게 집이란 그런 공간인 것이다.

계절과 기분에 따라 좋아하는 물건들을 놓아두는 거실의 오픈 수납장. 손맛이 느껴지는 오래된 나무 의자가 무심한 듯 놓여 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짙은 색의 나무 계단.
메자닌 구조의 2층에서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풍경. 하늘하늘한 꽃송이 같은 느낌의 실크와 마직 소재 조명은 김민수 작가의 ‘화양연화’로, 챕터원에서 구입했다.
블랙과 스틸로 마감한 부엌. 식탁을 바닥과 같은 자재로 제작해 공간에 통일감을 주었다.
외부의 루버 기둥 그림자가 만들어낸 그림 같은 풍경.
할머니에게 물려받거나 개인적으로 하나씩 수집한 다도구.
챕터원에서 구입한 조병주 작가의 ‘스틸 라이프 스톤 로우 테이블’ 위에 취향에 맞는 오브제들을 올려 놓았다.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2층의 워크 룸. 얼마 전부터 학창시절 했던 페인팅을 다시 시작했다.
정원의 나무가 보이는 자리에 마련한 취미 방. 다도를 즐기거나 빔 프로젝터로 영화 감상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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