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밥상은 없다 [쿠키청년기자단]

민수미 2022. 9. 1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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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8월 외식물가 상승률은 8.8%로 1992년 10월(8.8%) 이후 약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밥을 해 먹는 청년이 늘어났지만, 기록적인 물가 상승은 이들의 밥상 풍경마저 바꿔버렸다.

일주일에 세네 번 지인들과 만난다는 그는 약속이 있을 때마다 외식을 했다.

절약의 의미가 없어지자 그는 값싸고 쉽게 포만감이 드는 탄수화물을 식탁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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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물가 상승은 청년의 밥상 풍경마저 바꿔버렸다. 저렴하고 건강한 밥상은 없다.   사진=조수근 쿠키청년기자
#서울에 사는 대학생 A씨. 마트에 간 그는 사과 두 개, 상추 한 봉지, 돼지고기 앞다리 살 반 근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재료로 두 끼 식사를 적당히 때울 요량이었다. ‘삑, 삑, 삑’ 바코드 찍는 소리가 끝나자 계산대 스크린에 1만7700원이라는 숫자가 깜빡였다. 눈을 의심했다. 사과 7800원, 상추 3900원, 돼지고기 6000원. 계산 실수가 아니었다. “잠시만요, 죄송해요” A씨는 물건들을 챙겨 매대에 돌려놓은 후, 라면 두 봉지를 들고나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외식물가 상승률은 8.8%로 1992년 10월(8.8%) 이후 약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8월 서울 기준 김밥 평균 가격은 이제 3046원이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밥을 해 먹는 청년이 늘어났지만, 기록적인 물가 상승은 이들의 밥상 풍경마저 바꿔버렸다. 저렴하고 건강한 밥상은 없다. 조금이라도 싸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청년의 밥상에서 푸릇한 생기는 찾아볼 수 없다.

박세형씨의 점심 메뉴는 밥, 참치 통조림 반 캔, 계란프라이 하나, 조미김, 김치다. 몸무게가 80kg인 박씨의 하루 권장 섭취 단백질은 64g, 섬유질은 31g이다. 반면 박씨의 밥상에서 단백질은 24g, 섬유질은 4g에 그쳤다.
청년 밥상 위에 올라온 ‘가성비’

부산에 사는 박세형(23·가명)씨는 올해로 자취 3년 차에 접어든 대학생이다. 일주일에 세네 번 지인들과 만난다는 그는 약속이 있을 때마다 외식을 했다. 그러던 박씨는 언젠가부터 외출이 부담스러워졌다. 지인과 밥을 먹고 카페에 가면 하루치 생활비를 모두 써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만원이었던 그의 식비는 올해 30만원으로 늘었다. 한 달 생활비 50만원에서 10만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위기감을 느낀 박씨는 외식을 줄이고 직접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외식하거나 배달 음식을 시키면 바로 알아요. 가격이 오르지 않은 곳이 없어요. 예전 가격과 비교해보면 최소 1000원 이상 차이가 나요. 집에서 밥을 해 먹으면 식비도 줄일 수 있고, 한번 장을 보면 오래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네요. 특히 채소 값이 너무 올라서, 슈퍼에 장을 보러 가면 장바구니에 담기 겁나요.”

저녁메뉴에서는 참치가 빠졌다. 단백질과 섬유질 섭취 부족은 면역력 저하, 관절 통증, 혈당 및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박씨가 정한 하루 식비는 만원. 끼니당 3000원인 액수로 맛과 건강을 모두 잡을 수는 없었다. “잡곡밥, 김치, 계란, 김, 캔 참치로 점심 식사를 차렸어요. 쌀은 부모님이 보내 주신 것이라 다행히 돈이 들지 않았습니다. 김치는 근처 재래시장에서 1만원을 주고 한 포기를 샀어요. 전에는 60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굉장히 비싸졌어요. 한국인이라 김치를 포기할 수는 없고, 조금씩 아껴 먹고 있습니다. 캔 참치는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요새는 먹을 수 있는 게 집에 있다면 그것부터 먹고 있어요. 따로 돈을 쓰지 않으려고요. 예전에는 연어도 자주 요리해 먹었는데요. 지금은 너무 비싸서 그러지는 못하고, 되도록 저렴한 가성비 반찬을 상에 올리고 있습니다”
김지훈씨의 아침과 점심 메뉴는 라면, 감자조림, 밥이다.
누구도 원치 않는 탄수화물 파티

김지훈(26·가명)씨는 4년째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김씨는 외식할 때도 최소 2인분 이상을 주문하는 대식가다. 심상치 않은 물가상승에 집에서 밥을 해 먹기 시작한 김씨. 하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먹는 양이 있어서 그런지 채소와 고깃값이 만만치 않게 나갔다. 절약의 의미가 없어지자 그는 값싸고 쉽게 포만감이 드는 탄수화물을 식탁에 올렸다.

“최근에 친구 한 명과 삼겹살을 먹으러 갔어요. 둘이서 삼겹살 4인분, 소주, 된장찌개를 시키니까 10만원 가까이 나왔어요. 너무 놀랐죠. 그래서 만들어 먹고 식비를 줄이려 했는데 이것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더라고요. 오른 재료 가격을 생각하면 해 먹는 것의 이점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고기나 채소 대신 값싸게 많이 먹을 수 있는 국수, 라면 등을 주로 삽니다. 또 보관이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감자를 자주 사용해요.”

저녁은 케첩과 간장을 넣고 볶은 스파게티다. 김씨는 하루 동안 탄수화물만 450g을 섭취했다. 약 2000kcal에 달한다. 성인 일일 권장 열량 2500kcal의 대부분을 탄수화물로 채운 셈이다.
“사진은 점심으로 먹은 라면, 밥, 감자조림입니다. 감자조림은 감자에 간장과 설탕, 물을 넣고 조렸어요. 한 번에 잔뜩 만들어 놓고 꺼내 먹어요. 예전에는 돼지고기를 넣기도 했는데, 고기 가격이 너무 올라 지금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다른 사진은 저녁 메뉴인데요. 케첩과 간장을 넣어 볶은 스파게티입니다. 마늘을 두 알 정도 빻아서 넣으면 케첩의 시큼한 향이 줄어서 먹을 만해져요. 이렇게 탄수화물 위주로만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요새는 속이 내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에요”
최지영씨는 오전과 오후 각각 두 끼씩, 총 네 끼의 식사를 한다. 최씨의 하루 식비 예산은 1만원. 끼니로 나누면 2500원이다. 오전에는 보통 닭가슴살 소시지와 고구마, 사과 반 개를 먹는다. 
‘복숭아와 떡볶이’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위염으로 고생하던 최지영씨(24·여·가명)에게 건강한 식단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최근 잦은 외식과 음주로 건강 적신호를 감지한 최씨. 그는 빵, 국수 등의 탄수화물을 줄이고 채소와 과일을 먹겠다고 다짐했다. 겸사겸사 다이어트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간 최씨는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식비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 돈으로는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재료가 너무 적었다. 건강하게 먹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파프리카 두 개에 3900원, 닭가슴살은 두 덩이에 6000원이나 해서 놀랐어요. 다이어트를 하면 건강한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하거든요. 단백질과 섬유질 등 영양성분을 맞추려면 하루에 파프리카 세 개, 닭가슴살 네 덩이, 양상추 반 통 정도는 먹어야 해요. 그런데 그렇게 한 달을 먹으려면 식비만 30만원이 넘게 나와요. 결국 ‘예전처럼 대충 먹을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들죠. 돈이 없는데 어떻게 건강을 챙기겠어요”

몸무게 50kg인 최씨의 하루 권장 섭취 단백질은 40g, 식이섬유는 25g이다. 그러나 정해진 예산 내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단백질 32g, 식이섬유 6g 정도다. 다이어트는커녕 신진대사를 유지할 최소한의 영양분도 부족하다.
“사진 속 이날 아침에는 고구마, 사과, 닭가슴살 소시지를 준비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단백질과 탄수화물, 섬유질, 비타민을 채우려고 노력했어요. 고구마는 보관 기간도 길고 조리도 간편해서 자주 이용해요. 단백질은 인터넷으로 냉동 닭가슴살 소시지를 주문해 보충했어요. 물론 슈퍼에서 냉장 닭가슴살이 훨씬 신선하고 맛도 좋아요. 근데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했어요. 가장 지출이 큰 건 생야채나 과일이에요. 보관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그때그때 적은 양을 사서 먹을 수밖에 없는데,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에요. 마트에서 파는 복숭아 한 개가 4000원이에요. 집 앞에서 파는 떡볶이도 4000원이고요. 같은 가격이면 저 같은 대학생들이 어떤 걸 먹겠어요. 당연히 배부른 떡볶이죠”

조수근 쿠키청년기자 sidekickroo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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