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세상](45) '정적을 포용하고, 파벌을 깨라!'

한우덕 2022. 8. 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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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복궁에 교태전(交泰殿)이라는 이름의 궁전이 있다. 왕비가 머물던 곳이다. 사귄다는 뜻의 '交(교)'와 크다는 의미를 가진 '태(泰)'의 조합. 둘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사전적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왜 하필 왕비의 처소를 '교태(交泰)'라고 했을까?

#2. '복지(福祉)'라는 말을 흔히 쓴다. 'Welfare'라는 뜻이다. 그런데 중국은 '福祉'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같은 뜻으로 '福利(복리)'를 쓴다. 근대 일본인들이 'welfare'를 번역하면서 '福祉'라고 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복지라는 말을 만들었을까?

단지 '교태(交泰)'와 '복지(福祉)'의 의미를 묻는 게 아니다. 이 두 단어에 담긴 심오한 뜻을 보고자 함이다. '교태'에는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가, 복지에는 우리가 꿈꾸는 태평성세(太平盛世)의 염원이 담겨있다. 그게 핵심이다.

경복궁 교태전(交泰殿). 왕비의 처소다. '교태'에는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가 담겨있다.

두 질문의 답은 주역의 한 괘에서 나온다. 11번째 '지천태(地天泰)'가 그것이다. 땅을 의미하는 곤(坤, ☷)이 위에 있고, 하늘로 상징되는 건(乾, ☰)이 아래에 있다.

자연의 순리라면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다. '지천태'는 그 거꾸로다. 그래놓고는 '길하여 형통하다(吉亨)'라고 했다. 최고의 괘로 친다. 주역의 학문 세계를 '태학(泰學)'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왜 그랬을까.

하늘의 기운(陽氣)은 위로, 땅의 기운(陰氣)은 아래로 내려간다. 따뜻한 방 공기는 위로 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간다.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어야 기운이 서로 만난다. 만나야 변하고, 변해야 통한다(變則通).

하늘이 위에, 땅이 아래에 있는 '천지비(天地否)'괘는 나쁜 괘에 속한다. '인간의 길이 아니다(匪人)'라고 했다. 서로 교접이 안 되는 까닭이다.

핵심은 소통이다. 남자(─)와 여자(--)가 소통해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임금(─)과 백성(--)이 소통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 선생님(─)과 학생(--)이 소통해야 건강한 교육이 이뤄지고, 담당 공무원(─)과 민원인(--)이 소통해야 행정 불만이 사라진다.

泰, 通也
'태는 소통이다.'

괘의 순서를 얘기하는 '서괘전'은 '지천태' 괘를 이렇게 설명한다. 서괘전은 또 '태(泰)를 이룬 후에야 안정이 온다(泰然後安)'고 했다. 소통이 있어야 泰(태)의 상태에 이르고, 그다음에야 편안함이 온다는 얘기다.

泰, 安也
'태는 안정이다.'

주역 11번째 '지천태(地天泰)' 괘는 땅을 의미하는 곤(坤, ?)이 위에 있고, 하늘로 상징되는 건(乾, ?)이 아래에 있다./바이두

그러기에 '지천태'는 '소통의 괘'이면서 '안정의 괘'이다. 괘의 모습을 설명하는 상사(象辭)는 이렇게 얘기한다.

天地交泰, 后以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하늘과 땅이 교류하는 게 '泰'괘의 모습이다. 군주는 이로써 하늘과 땅이 만드는 도(道)를 체득하여 가늠하고,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에 맞춰 백성들의 생활을 돕는다.'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의 출처가 바로 이 구절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 만물을 생성하듯 임금과 왕비가 만나 왕족을 번성시키라는 의미가 담겼다.

두번째 질문, '福祉(복지)'로 가보자.

태평성세(太平盛世)는 우리 모두의 꿈이다. 나라는 힘있게 발전하고, 국민의 삶은 안정된 그런 시대를 그린다. 국태민안(國泰民安), 정치의 목적이다.

태평성세를 이루기 위한 정치는 어떠해야 할까. '지천태' 괘는 두 번째 효사(爻辭)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包荒, 用馮河, 不遐遺, 朋亡

'더러운 것을 포용하고, 맨몸으로 물을 건너며, 먼 것을 버리지 않고, 파벌을 없애야 한다.'

송(宋)대 주역 전문가 정이천은 '더러운 것(荒)은 정치적 이견을 말한다'고 했다. 무릇 정치지도자는 포용력이 커야 한다는 얘기다. 맞다. 정치적 반대 세력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편 가르기로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없다.

'맨몸으로 물을 건넌다'라는 건 역경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습관과 타성을 거부하고, 폐단을 척결하려는 혁신의 의지를 뜻한다. '나라를 바꾸겠노라'라고 다짐한 정치인도 일단 권력을 잡으면 타성에 빠질 수 있다. 오로지 혁신만이 태평성대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정치인이라면 미래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먼 훗날의 일일지라도소홀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지금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과감히 시행해야 한다. 현재는 미래에 복무(服務)해야 한다. '먼 것을 버리지 말라'는 충고는 그래서 나왔다.

'붕(朋)'은 친구다. 파벌이다. 파벌을 땅에 파묻어야 한다(亡). 자기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고 요직에 앉히고, 개인적으로 일했던 사람을 공직에 앉히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팬덤에 의존하는 정치는 분열만 조장할 뿐이다.

정적을 포용하고, 파벌을 깨라.
그리고 미래를 봐라!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기업을 경영하는 CEO도, 부처 장관도, 학교 교장에게도 적용되는 '태평성세의 길'이다. 상대를 끌어들이는 포용력,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용기, 미래를 보는 눈, 그리고 공정한 인사는 조직 리더라면 누구라도 갖춰야 할 덕목이다.

자, 태평성대가 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번째효사는 더 의미심장하다.

無平不陂, 無往不復. 艱貞無咎. 勿恤其孚, 于食有福

평평한 것은 반드시 기울어지고, 나아간 것은 꼭 돌아온다. 어려워도 바름을 지키면 허물이 없다. 사소한 것에 흔들지 않고 굳게 믿으니 먹는 데 복이 있다.

소통과 안정도 오래되면 깨진다. 평평한 것이 기울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안정 속에서도 위기를 생각하고(居安思危), 바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래야 풍족이 유지되고, 행복이 지속한다.

여기에 글자 '福(복)'이 나온다.

갑골문에는 손(手)으로 술(酒)을 들어 보여주는(示) 형상으로 그려졌다. 제사 때 바치는 술이다. 제사 후 남은 술을 나눠 마시면 조상신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었다. 지금도 '음복(飮福)'을 한다. '福'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태평성세(太平盛世)는 우리 모두의 꿈이다. 나라는 힘있게 발전하고, 국민의 삶은 안정된 그런 시대를 그린다. 국태민안(國泰民安), 정치의 목적이다./바이두

다섯 번째 효사에서 글자 '祉(지)'를 만날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帝乙歸妹, 以祉, 元吉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니 이로써 복을 얻고, 크게 길하다.

제을은 상(商)나라 마지막 왕 주(紂)의 아버지다. 그가 누이동생을 시집보낸 곳은 서쪽의 신흥 강국 주(周)나라. 당시 주나라는 상을 위협할 정도로 커 있었고, 관계도 좋지 않았다. 신랑은 주나라 왕자 희창(姬昌). 후에 주나라 건립의 터전을 닦은 주문왕(周文王)이 바로 그다.

일종의 정략결혼이다. 이 결혼을 계기로 상나라와 주나라는 한동안 잘 지내게 됐다.

시간이 흘러 주문왕은 상의 주(紂)왕에 잡혀와 유리(羑里)라는 지역의 한 옥에 갇히게 되고, 7년의 감옥 생활 중에 주역 64괘 괘사(卦辭)를 쓰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주공(周公)이 384개 효사(爻辭)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제을이 누이동생을 시집보내 복을 얻고 크게 길하다'라는 해석은 결국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거론한 것이다. 태평성세의 시대, 어진 군주가 신하에게 친족을 시집보내는 것은 낮은 자세로 국정에 임하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그러니 복이 오고, 크게 길하다고 적었다.

글자 '祉(지)'는 '와서(止) 보여준다(示)'라는 의미가 조합된 말이다. '조상신이 복(福)을 갖고 왔다'는 걸 표현했다. 그래서 '설문(說文)'은 '지(祉)는 복이다(祉, 福也)'라고 했다.

글자 '복지(福祉)'의 완성이다.

'복지'는 태평성세를 맞아 풍족한 민생을 즐기고, 평화를 누리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국민이 그런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지원하는 게 복지 정책이다. '지천태' 괘가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거창하게 뭘 해달라는 게 아니다. 한가위 명절, 가족 모두 모여 조상에게 감사드리고, 음복(飮福)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된다. 함께 송편을 먹는 소소한 행복이면 족하다. 그래서 주역은 이 땅의 모든 리더에게 말한다.

소통으로 안정을 이루고,
안정의 혜택이 모두에게 퍼지도록 하라!

한우덕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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