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교동에는 저만의 주말 아지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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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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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교동도 봉소리에서 마주하는 선홍빛 저녁놀의 아름다움. |
ⓒ 이정민 |
금요일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일상의 노곤함이 모두 털리는 날이다. 나이가 들수록 불상의 조직에 갇혀 불편한 관계로 산다는 건 참으로 고역이다. 모든 게 힘들고 더 어렵다. 특히 내가 X세대라 그런지 MZ세대의 톡 쏘는, 사이다 당당멘트엔 당할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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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그만 황토방을 무소유의 방으로 정하고 점점 스님의 사찰로 변해가는 모습. |
ⓒ 이정민 |
1년 전 인천시의회 교육위원회에 근무할 때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동 땅을 밟았다. 이곳 평화의 섬에 '인천난정평화교육원'을 세우고자 교육위원을 보좌하며 교육청 공무원과 몇 번을 다녀갔다. 그때마다 참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였다. 당시 회상이다.
"뭘까. 뭐지. 이런 기분은. 왜 태어나서 처음 와 본 곳인데 데자뷰가 느껴지는 건지. 마치 꿈속에서 항상 마주쳤던 그런 풍광들이. 하나도 낯설지 않은 마치 고향같은 푸근함이. 아마도 언젠가 이곳에 둥지를 틀 수도 있겠구나.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 있어 교동은 그만큼 신비롭고 애처롭고 애틋한 시골이었다. 그러나 꿈은 꿈에 지나지 않는 법. 이후 시의회를 떠나 다시는 교동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러나 운명이었던가. 우연히 인터넷으로 강화도 낚시터를 살피던 중에 내가 원하던 뜻밖의 황토방을 만나게 된 것. 그런데 그곳이 바로 그토록 가고 싶었던 평화의 섬 교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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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마을 청정수로의 저녁놀은 넌지시 내게 일러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은 '멈춤'이라고! |
ⓒ 이정민 |
언제나처럼 작고 아담한 산길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감성을 품고 있다. 논두렁 오솔길을 따라 하나둘 발자국을 새기며 빨간 황토의 잔향을 맡는다. 왜 이제야 왔냐고 청개구리들이 나를 둘러싼다. 잠자리들도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건넨다.
매번 고향을 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꽃과 나무로 집 주변을 안아주겠다고. 이번엔 그 첫 야심작으로 산양삼 씨앗과 양귀비 꽃씨를 뿌렸다. 황토하우스를 포근하게 감싼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 낫으로 길을 닦고 삽으로 땅을 일궜다. 돌을 거르고 낙엽을 덮으며 새 생명의 환희를 심었다.
혈관을 따라 몸과 마음에 땀방울이 가득하다. 언제봐도 비릿한 열정의 땀 냄새. 아 얼마만인가. 매일매일 일상을 책상 앞에 저당 잡혀 오도 가도 못한 채 컴퓨터 감옥에 갇혀 사는 인생이라니. 역시 시골을 택하고 고향이 다시 생겼다는 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치의 극치라는 걸.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치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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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한 달만에 오지마을 첫날밤을 보냈다. 그토록 아름다운 별천지를 볼 순 없었지만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설렘을 읽을 수 있었다. |
ⓒ 이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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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공소년 이승복. 하! 교동초등학교 지석분교에서 만난 어릴 적 우리의 우상들 |
ⓒ 이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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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룡시장 청춘부라보 |
ⓒ 이정민 |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산들거리는 바람의 노래를 들으러 발길을 옮긴다. 시골에 오니 그토록 집착하던 텔레비전의 유혹도 어림없다. 산하를 뒤덮는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더 없으리니.
터벅터벅 뚜벅뚜벅 발걸음 하나 또 하나를 되짚는다. 빨간 석양이 바다 위를 날아다닌다. 이내 보랏빛 황혼이 철책 해안선을 따라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떠나간 그 사랑이 농익는다. 보고픈 그리움이 깊게 밴다.
이토록 부드럽고 순박한 농로만큼이나 도심의 거친 생활이 부디 더 느리고 더 부드러워지기를. 매번 부딪치고 다투고 예민한 감정만 가득한 직장생활이 부디 더 가볍고 더 관대해지기를. 더디 가도 오직 사랑! 굽어 가도 오직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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