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공약 후퇴' 직격탄..일제히 매물 늘고 집값 뚝

김원 2022. 8. 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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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대통령 선거 전후로 상승세를 탔던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의 아파트값이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 공급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하락 전환됐다. 21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연합뉴스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공약 후퇴' 논란이 커지면서 해당 지역 아파트 매매시장에 냉기가 돈다. 갑자기 매물이 늘고, 아파트값도 약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첫 부동산 대책인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8·16 대책)을 발표하며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위한 마스터플랜(종합계획) 수립 시점을 2024년이라고 밝힌 이후 일어난 변화다.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물 늘고, 가격 내려가고

21일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R114가 진행한 아파트 시세 조사에 따르면 1기 신도시의 아파트값은 지난 12일 기준 보합(0.00%)에서 19일 기준 0.02% 떨어져 일주일 새 하락세로 돌아섰다. 성남시 분당신도시 아파트값 하락 폭이 0.04%로 가장 컸고, 안양시 동안구 평촌신도시(-0.02%)와 군포시 산본신도시(-0.01%)도 하락했다. 분당의 경우 지난주(12일) 조사에서는 보합을 기록했다. 고양시 일산신도시와 부천시 중동신도시는 이번 주 조사에서 보합을 나타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1기 신도시 지역의 아파트 매물도 일제히 증가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8·16 대책' 발표 당일 대비 이날 경기도 군포시와 고양시 일산서구의 아파트 매물은 각각 5.9%(2136→2261건), 5.6%(3376→3565건)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양시 일산동구와 안양시 동안구, 성남시 분당구의 매물도 닷새 만에 각각 3.9%, 2.8%, 2.5% 늘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 공급 대책에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빠지고, 특히 1기 신도시는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도 애초보다 미뤄졌기 때문에 해당 지역 아파트값은 한동안 약세를 유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1기 신도시 재정비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다. 윤 대통령은 용적률 상향 등의 내용을 담은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대선 이후인 4월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중장기 사업으로 검토한다"고 밝히자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말 바꾸기’ 논란과 함께 반발이 터져 나왔다.

반발이 커지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즉시 마스터플랜 작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고, 인수위도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 마스터플랜에 따라 질서 있게 지역마다 재정비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기 신도시 현안 점검을 하면서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재건축과 도시 재정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1기 신도시의 집값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성남시 분당구의 경우 KB부동산 기준 월간 아파트값이 대선 직후인 4월 0.41%, 5월 0.37% 올랐다. 분당구 서현동 시범우성 전용면적 84.6㎡는 지난 3월 14억6500만원(9층)에 거래됐던 것이 5월에는 16억5000만원(8층)으로 2억원가량 뛰었다. 최근 수도권 주택 매매시장이 두드러진 거래절벽 속에 가격 약세를 이어갔지만 1기 신도시만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이런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돌아섰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1기 신도시 재정비의 경우 투기 수요 유입, 가격 상승의 우려, 이주 대책, 지역 형평성 문제 등이 얽혀 있기 때문에 속도를 내기에는 난관이 많고, 포기하기에는 공약 미이행에 따른 비난 등을 감수해야 한다"며 "결국 정부가 '대선 공약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적극 해명에도...주민들 "연대 집회도 불사"

국토부는 사실상 이번 정부 임기 내 1기 신도시 재건축 인허가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8·16 대책에서 제시한 270만 가구 주택 건설 인허가 물량 계산에 1기 신도시 재정비로 인한 물량은 뺏다. 국토부 관계자는 "1기 신도시가 예정대로 2024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더라도 2027년까지 주택 건설 인허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약 파기' 논란으로 번지자 최상목 경제수석비서관은 "신도시같이 도시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은 5년 이상 걸리는 게 통상적"이라며 "1년 6개월 정도 마스터플랜이 소요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장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원희룡 장관과 국토부도 여러 차례 "공약 후퇴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정부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주민들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사는 이모씨는 "재건축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렇게 답보 상태로 가는 걸 보니 답답할 따름"이라며 "아직은 단체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지만 다들 불만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탑동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선거 땐 표를 얻으려고 공약을 내세우다가 당선 뒤엔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냐"며 "2년 뒤에 계획이 나온다면 임기 내에 실행되기 어려워 보이는데 결국 공약 철회 아니냐"라고 말했다. 금곡동에 2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는 김모씨는 "마스터플랜 수립을 2년 뒤로 미룬다는 건 결국 다음 정권으로 넘기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단체행동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채수천 고양시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당초 올해 안에 구체적 계획안이 나올 것이라던 약속보다 2년이 늦은 것인데, 정부가 대선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정부의 추진동력이 약해질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어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마련한다면 계획대로 추진될지 의문이 들고, 자칫 사업이 차기 정부로 넘어가면서 표류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염려된다"고 말했다.

고양시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는 "이번 조치에 대한 정부의 납득할만한 설명과 보완 대책 마련이 미흡할 경우 1기 신도시 전체 주민들과 연대해 서명운동을 비롯해 집회도 불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원 기자, 고양=전익진 기자, 성남=심석용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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