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라임라이트]"젊은 세대를 통해 어른들에게 경종 울리고 싶었다"

이종길 2022. 8. 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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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실종' 가타야마 신조 감독 인터뷰
실제 벌어진 사건에서 영감..日사회 폐부, 스릴러 장르로 관통
봉준호 감독 '마더' 조감독으로 참여 "'장르리스' 연출에 영향 받아"

가타야마 신조 감독은 일본 영화계를 이끌 차세대 주자다. 영화 ‘실종’으로 증명했다. 스릴러 묘미를 온전히 전하며 일본 사회 폐부를 관통했다. 루게릭병으로 고생하던 아내를 잃고 넋이 나간 사토시(사토 지로). 딸 카에데(이토 아오이)는 그런 아빠를 살뜰히 보살핀다. 사토시는 어느 날 연쇄살인범을 목격했다고 말하고 자취를 감춘다. 카에데는 행방을 수소문하다 아빠 근무지에서 수상한 동명이인을 만난다. 현상범 전단의 연쇄살인범 야마우치 테루미(시미즈 히로야)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필사의 추적을 시작한다.

가타야마 감독은 중반부터 이전 내용을 재구성한다. 이야기 이면을 부각해 위치를 재설정하는 식이다. 장르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는데 반전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경제 위기, 자살, 안락사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환기한다. 아내를 안락사하고 괴로워하는 사토시에게 야마우치가 또 다른 범죄를 함께 하자고 간청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이건 살인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자비로운 죽음이에요." "헛소리 집어치워." "웹으로 사람만 찾아주세요." "듣기 싫어." "공짜는 아니에요." "이건 내가 준 돈이잖아." "최소한 이 정도는 필요하잖아요. 돈 말이에요. 탁구장을 다시 여세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물의 이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숨어 있다"라고 썼다. ‘실종’에 펼쳐진 세계가 바로 그렇다. 야밤에도 네온사인이 물결치고 시끌벅적한 번화가. 막다른 골목에는 일본에서 가장 슬프고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갖가지 이유로 얼음장 같은 현실을 등졌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 당도할 절망과 불안의 얼굴일 수 있다. 갈수록 믿음은 허망해지고 진실은 초라해진다. 서면으로 아시아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한 가타야마 감독은 "젊은 세대를 통해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가타야마 감독과의 일문일답.

-‘실종’에 등장하는 인물 대다수는 정신적으로 병들었다. 연쇄살인범, 자살 기도자, 변태 성욕자…. 하다못해 길거리에도 노숙자가 그득하다.

▲일본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살 기도자를 대상으로 한 살인도 그중 하나였다.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었다. 50대인 사토시는 거품경제 때 사회에 진출해 돈에 집착한다. 종교적 의미를 부여할 정도라서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20대인 야마우치는 인생의 대부분을 인터넷 환경에서 보냈다. 경제적으로 내리막을 걷던 시기라서 자기중심적 경향이 강하다. 10대인 카에데는 다가올 시대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어른에게 경종을 울릴 세대를 대변한다.

-사토시의 세 가족이 함께 있는 장면이 전무한데.

▲‘불쌍한 가족’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일 수 있어 각각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관객이 ‘저들도 행복할 때가 있었구나’라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상상력을 유도해야 그 모습이 확장될 듯했다. 가족을 다루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돈에 대한 욕망은 흔하다. 그래서 ‘실종’은 누구나 잠재적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로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맞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순간 선택지가 없어질 수 있으니까. 최소한의 생계비를 걱정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때 적잖은 사람들은 충동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나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무언가에 연연하면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깊은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든 이루려고 엄청난 희생을 치를 수 있다.

-아버지를 찾으려는 카에데에게 많은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경찰의 태도는 사무적이고, 남학생은 흑심을 품으며, 담임 선생님은 마음이 콩밭에 있다.

▲위선자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카에데를 도우려고 했으니까. 다만 약자를 향한 도움이나 교류는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일본은 마땅한 복지제도가 있지만 불행한 일이 생기면 가족이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제도가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어떤 이들은 자존심이 세서 남에게 손을 내밀기보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길에서 생활한다. 그들을 위해 복지제도를 다시 검토하지 않는다면 끔찍한 사건이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야마우치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고, 사토시는 야마우치에게 믿음을 주려고 약지를 깨문다. 단순한 등치는 아닌 듯한데.

▲두 사람 모두 악질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야마우치는 일반적인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부류다. 대부분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토시는 불행을 겪으며 변질한 경우다. 일반적인 사람이 살인까지 저지르니 관객이 느끼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이 더 악질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살인은 살인일 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2009)’에 조감독으로 참여했던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슬픈 장면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장르리스’가 그렇다. 그런 연출을 빌리되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로 발전시키고 싶다.

-‘마더’의 비틀린 모성애가 부성애로 바뀐 듯해서 제목을 ‘파더’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지 못한 힘 있고 좋은 제목이다. ‘실종’에 한국과 일본 스타일이 뒤섞여있다는 평이 꽤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까지 의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양한 영화에서 각인된 정수가 가미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토시와 카에데가 탁구공을 주고받는 신은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미자(윤정희)와 종욱(이다윗)이 배드민턴을 치는 신을 연상케 한다.

▲카에데는 사토시가 ‘아버지’로 남기를 바랐다. 네트를 경계에 두고 왔다 갔다 하는 공으로 꾸밈없는 교류를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에 사라지는 공은 상실로 표현하고자 했고.

-자살을 ‘잘 살고 싶다’의 또 다른 표현으로 제시했다.

▲살고 싶어서 자살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뤄지지 않아 스스로 끝내버리려는 것 같다. 원인은 제각각이겠지만 죽음을 목적으로 한 자살은 없다고 본다.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하지만, 최근에는 미래에 희망을 느끼지 못해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참으로 안타깝다.

-총체적으로 ‘실종’은 삶과 죽음, 윤리와 욕망, 구원과 살인 등의 경계에서 선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리는 동시에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아 만들었다. 배역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여러분은 그렇게 되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단순한 허구로 치부해선 안 된다. 비슷한 사건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진다. 경각심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며 영화 속 메시지를 잘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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