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직원 "파견간다" 허위·무단결근에도 의심 못한 우리은행(종합)

송승섭 2022. 7. 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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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우리은행 횡령사고' 결과발표
횡령한 회삿돈은 총 697억3000만원
2012년 회사 보유 주식 43만주 횡령
수법은 문서위조·허위보고·OTP 도용
"부실한 내부통제로 사고 예방 못 해"
우리은행에서 6년 동안 614억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직원 A씨가 지난 5월 6일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우리은행에서 벌어진 700억원대 횡령사고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부실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자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횡령을 저지른 직원은 부서장에 구두로 파견을 간다고 거짓말을 한 뒤 1년 2개월간 무단결근한 사실도 파악됐다. 개인의 일탈이 주된 원인이라도 우리은행이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의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거란 지적이 제기된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26일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우리은행 본점 기업개선부 소속 직원 전모씨가 횡령한 회삿돈이 총 697억3000만원이라고 발표했다. 횡령은 2012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8년간 8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주식 빼돌리기 위해 팀장의 금고열쇠 훔쳐

첫 범행은 우리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A사의 출자전환주식 42만9493주 무단인출이다. 당시 전씨는 출자전환주식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예탁결제원 예탁관리시스템에서 A사 주식을 출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훔친 주식은 시가로 23억5000만원에 달하는 돈이다.

이 과정에서 전씨는 담당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OTP(일회용비밀번호)를 도용해 무단결재했다. OTP는 중요한 보관도구로 평소 금고에 보관한다. 열쇠 두 개를 동시에 꼽아야 열리는 시스템이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부는 팀장과 전씨가 각각 열쇠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팀장 몫의 열쇠를 전씨가 훔쳐 OTP를 탈취했다는 뜻이다.

빼돌린 돈은 한국예탁결제원을 직접 방문해 실물로 수령했다. 해당 자금은 전씨의 동생 증권계좌로 입고됐다. 이후 전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11월9일 팔아치운 주식만큼 다시 사들인 뒤 재입고했다.

주식을 다시 살 때는 우리은행에서 추가로 자금을 횡령해 활용했다. 전씨는 2012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우리은행이 채권단을 대표해 관리 중이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계약금 614억5000만원(계약금 578억원+이자 36억5000만원)을 빼돌렸다. 이때도 전씨는 직인을 도용한 뒤 출금을 하거나 공·사문서를 위조해 3차례에 걸쳐 출금결재를 받아냈다.

이 밖에도 대우일렉트로닉스가 인천공장을 매각 추진하는 과정에서 몰취한 계약금이나 각종 환급금도 횡령했다. 자산신탁 회사 등 돈을 예치하고 있는 금융사에 출금을 요청하는 허위공문을 발송해 총 57억7000만원을 편취했다. 해당 자금에는 인천공장 관련 종부세 환급금(9000만원)이나 공장부지 내 국유지 사용료 환급금(8000만원)도 있다. 횡령은 매각한 자금을 주요 채권자에게 배분하고 남은 소액채권자 몫을 동생 명의 회사로 이체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금감원에서는 지난 4월 27일 우리은행으로부터 횡령사고에 대해 보고받고 즉각 검사에 나서며 전반적인 사건 경위와 추가 횡령사고 가능성 파악에 주력했다. 이후 5건의 추가횡령 사실이 밝혀지면서 43영업일의 강도 높은 현장검사가 이뤄졌고, 사고원인 규명과 은행 내부통제 적정성 등을 따지는 데 집중했다. 전씨에 대해서는 직접검사가 이뤄지지 못했으나 구치소 접견과 임직원 면담 등의 절차를 밟아 보완했다.

금감원은 전씨의 개인 일탈이 횡령사고의 주된 원인이지만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판단했다. 대형 시중은행의 본부부서에서 8년 간 거액이 빠져나간 데다, 해당 사실을 우리은행 측에서 오랫동안 몰랐기 때문이다.

임직원 직인도 허위로 요청해 회삿돈 횡령

대표적인 예가 전씨의 무단결근이다. 전씨는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허위로 파견을 간다고 보고하며 무단 결근했다. 보고는 전씨가 직접 담당 부서장에게 구두로 전달했다. 문서는 남아있지 않았다. 해당 부서장은 전씨의 파견을 의심하지 않았고, 복귀 이후에도 자체적인 검증이 이뤄지지 못했다. 금감원이 사실을 파악하기 전까지도 우리은행에서는 파견을 갔었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인 사용도 마찬가지다. 은행 내부에서 결재를 받으려면 부서장과 임원 등 숱한 이들의 직인이 필요하다. 내부 직원이 필요한 결재와 직인을 요청하면 심사 후 얻을 수 있다. 전씨는 출금공문에 필요한 직인을 얻기 위해서 다른 문서를 요청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우리은행에서는 직인이 돈을 빼돌리는 엉뚱한 문서에 찍혔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금감원은 인사관리시스템도 지적했다. 전씨가 10년간 동일부서에서 같은 업체를 담당했다. 통상 은행에서는 금융사고와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순환근무제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이 기간 전씨는 명령휴가 대상에도 선정되지 않았다.

또 은행이 주고받는 공문을 열어보고 전산 등록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은폐나 위조가 용이했고(공문관리), 통장과 직인 관리자가 분리돼 있지 않아 전씨가 정식 결재 없이도 예금을 횡령할 수 있었다.(통장·직인관리)

이외에도 문서관리(수기결재, 사후점검 부재), 출자전환주식 관리(출고신청자와 결재 OTP관리자 분리 실패), 자점감사(통장잔액 변동상황 및 실재 여부 감사 부재), 이상거래 모니터링(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조기적발 실패)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금감원은 검사에서 확인된 사실관계 등을 기초로 엄밀한 법률검토를 거쳐 사고자 및 관련 임직원 등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서 필요한 조처를 할 예정이다. 또 금융위와 함께 거액 금융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개선방안 마련을 추진한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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