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파도를 타고 가자! 여름 속으로

김남중 2022. 7. 2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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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여름휴가 추천도서 10권
게티이미지


여름 휴가철을 맞아 휴가지에 들고 갈만한 책들을 추천받았다. 올 상반기 안데르센상을 받은 이수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섬진강 폐교에서 작업실을 겸한 책방을 운영하는 김탁환, 기후위기 관련한 중요한 책 ‘식량위기 대한민국’을 출간한 남재작, 서울 성산동에서 ‘조은이책’이라는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조은희, 이렇게 다섯 명이 책을 골라줬다.

김탁환(소설가)

망원경을 샀다. 작업실 마당 건너 플라타너스를 오가는 새들을 살피기 위함이다. 홀로 우뚝 서 있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지만, 나무는 결코 혼자 자라는 법이 없다. 뿌리에서부터 줄기와 가지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다른 나무들과 소통한다.

‘나무의 노래’(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에이도스) 저자는 나무들의 아름다운 연결망을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담아낸다. 이중창과 삼중창과 합창 속에서 나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변화한다. 더 많아지기도 하고 더 적어지기도 하며, 덜 크기도 하고 더 크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길에서 만나는 가로수 한 그루도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소설가 존 버거는 ‘행운아’라는 책에서 마을 사람들의 인생을 속속들이 아는 마을 의사에 대해 썼다. 그러면서 이런 유형의 의사는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존 버거의 어두운 예측은 틀렸다. 경기도 안성에는 마을 주민들의 주치의로 32년째 살아가는 마을 의사가 있다. 그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마을과 함께했을까. 긴 세월을 지나오며 무엇을 보고 듣고 잃고 얻었을까. ‘마을의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권성실, 그물코)는 괴짜 의사에 관한 이야기인가 하고 읽으면 마을 이야기고 마을 이야긴가 하고 읽으면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환자와 의사라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서는 의료생활협동조합의 든든함과 매력까지 느낄 수 있다.

이수지(그림책 작가)

‘여름이 온다’ 그림책을 낸 후론 악보가 있는 책 표지만 보인다. ‘미공개 실내악’(김목인, 픽션들)의 1악장은 ‘모르는 이웃들을 위한 모음곡’이다. 낭독하면서 피아노 반주를 곁들이라고 쓰여 있는데, 휴가지에 피아노가 없다면 큐알코드를 재생하면 된다.

반주에 맞춰 낭독을 시작하면, 무심한데 다정하고 어딘가 조금씩 웃기기도 한, 잘 모르지만 실은 잘 모를 것도 없는 동네 이웃들이 무대 위에 하나씩 등장한다. 스물네 편의 멜로디를 읽다 보면 쿡쿡 웃음이 난다. 책을 내려놓고 나면, 핸드폰을 씹어먹을 듯 통화하는 옆자리 휴가객에게도 배경음악 하나쯤 깔아주곤 그냥 용서해 주고 싶어질 거다.


휴가지에는 시집을 들고 가야 한다. ‘바람의 사춘기’(박혜선, 사계절) 같은 동시집이면 더 좋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춘기. 사과나무 가지 위에 누워만 있고 싶은 마음. 차곡차곡 쌓였지만 내보내지 못한 마음. 말하면 작아지는 어린이의 마음. 여느 동시집 그림과 달리 서늘한 사춘기 같은 백두리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도 딱 좋다. 휴가가 느긋한 것이라면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아이의 마음으로 들어가 세상을 봐도 좋겠다. 기묘하고 따뜻하고 알 수 없지만 여전히 궁금한 이 세상 풍경을. 살구 꽃비 내려 허름한 고물상이 봄 언덕으로 변하는 놀라운 장면을.

정보라(소설가)

여름, 하면 역시 귀신 얘기다. 귀신, 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에서 피를 흘리는 처녀귀신을 생각할 것이다. ‘한국의 괴기담’(박용구·서문문고)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짧은 괴기담을 주제별로 모았다. 글에 한문 번역체 특유의 고풍스러운 맛이 있다. 괴기담에 나오는 신물들은 거대 지네, 용, 뱀, 호랑이부터 산신령, 도깨비, 처녀귀신까지 다양하다.


그러면 어쩌다가 한국 귀신의 대표주자가 처녀귀신이 되었을까. ‘여성, 귀신이 되다’(전혜진·현암사)는 이 질문에 초점을 맞춰 조선시대 여성 수난사와 민담에 반영된 사회상의 변화를 설명한다. 예시로 나오는 귀신 얘기들이나 전통적인 무속적 세계관 등 원하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재미있다.

이 두 권은 함께 읽으면 서로 보완하는 책들이다. 우리 본래의 한국적 상상력, 그리고 시대 변화와 세계관의 변화를 이 두 책에 실린 여러 귀신 이야기 속에서 읽어낼 수 있다.

조은희(조은이책 대표)

“책방보다 더 재밌는 여행지는 없다.” 조은이책의 책꽂이 한쪽에 붙어 있는 글귀다. 책방을 소재로 한 책 두 권을 추천한다.

‘환상의 책방 골목’(책담)은 김설아 이진 임지형 정명섭 조영주, 필력을 자랑하는 다섯 명의 작가가 환상적인 이색 책방들을 그려낸 소설 모음집이다. 상상 그 이상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차원 책방, 선택받지 못한 책들이 모인 무덤 책방, 인생의 의미를 찾게 돕는 심야 책방, 책들 속에 갇힌 저주를 풀어야 하는 유령 책방, 숨은 용기를 끌어내 주는 덕후 책방. 어느 책방의 문을 열든지 놀라운 모험과 따스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에르브 광장의 작은 책방’(에릭 드 케르멜·뜨인돌)은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에 있는 책방을 무대로 한 소설이다. 주인장이 책방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책을 권한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작가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을 각각의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휴가지가 어디든 그 지역에 있는 책방에 들러 찬찬히 둘러보고 마음에 다가오는 책 한 권 사보기를 권한다. 그 책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고 그 책방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가 내 평생의 참된 친구가 될 수 있다.

남재작(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집을 나설 때 한두 권의 책을 여장에 챙겨가면 어떨까. 저자들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게 중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다를수록 더 좋다.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힐 기회이기 때문이다. 휴가철 여유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올해 나의 여장에 동반할 책 두 권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먹거리와 에너지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현직 기자인 윤지로 작가의 ‘탄소로운 식탁’(세종서적)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유려한 문체 속에 녹여냈다. 기자답게 현장을 취재해서 만들어낸 살아있는 지식이 가득하다. 이 책은 우리가 선택하는 한 끼가 가지는 다른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브루스 어셔의 ‘진격의 재생에너지’(아모르문디)는 기후변화의 원인이자 해결책인 에너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에너지는 너무 중요해서 오히려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토론의 영역에서 정치적인 논쟁으로 비화하면서 사실이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재생에너지는 화석에너지보다 값이 싸지기 시작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에너지 산업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함께 투자 기회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남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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