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부캐] 옷 만드는 사람의 미니멀한 옷장, 이렇게 가능합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말>
[최혜선 기자]
우리집에는 짐이 적은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 육아용품을 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아이들 장난감에, 거실벽 한 면을 책장으로 짜서 채운 책 등. 물건이 우리집에 들어온 후 어디에 둘지는 생각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면 있는 힘껏 물건을 사들였다.
그러다 제주 한달살기를 하게 됐다. 꼭 필요한 물건만 들고 가 텅텅 빈 숙소에서 생활하고 나니 깨닫는 게 있었다. 여행이니까 짐을 줄여야 한다며 고르고 골라 들고 온 몇 안 되는 물건들만 갖고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서울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곳곳에 빼곡히 자리잡은 물건에 숨이 턱 막혔다. 그 뒤로 내가 가진 물건을 다 기억할 정도의 양으로,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제자리가 있도록 물건의 수를 줄여갔다.
▲ 원단 |
ⓒ 언스플래쉬 |
옷을 만들어서 돈을 아껴보겠다고 생각한 사람의 다음 단계는 원단을 싸게 사려는 궁리로 이어진다. 나처럼 평일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유일한 휴일이자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인 주말에 천을 사러 나갈 여유가 없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에서 원단 파는 곳을 하나 둘 발견하여 천을 사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원단을 파는 곳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천과 부자재를 파는 곳과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각에 그 주에 구한 원단을 올려서 파는 인터넷 카페의 형태를 한 곳. 당연히 후자가 싸다.
그러다보니 습관처럼 매주 업데이트 시각에 맞춰 경쟁적으로 천을 사야했다. 마음에 드는 천을 언제나 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댓글을 선착순으로 달고 원단을 찜해서 판매 수량 안에 들어야 원단을 살 수 있었다. 댓글을 늦게 달아 마음에 드는 원단을 못 사게 되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고, 재빨리 수량을 선점해 살 수 있게 되면 내 돈 주고 사는데 뭔가 대단한 것을 성취한 양 뿌듯했다.
▲ 방을 가득 채운 원단보관 상자들 |
ⓒ 최혜선 |
그렇게 내가 산 원단들에 치여 살았다. 집채만한 파도가 뒤에서 몰려오는 와중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뛰는 듯한 모양새로 맹렬히 재단하고 만들어댔다.
어렵게 이룬 원단의 균형 있는 순환
성별이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방 두 개짜리 집 안방에 모두 모여서 자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방이 한 칸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도 각자 방이 필요한 시기가 되어 더 이상 내가 방을 하나 차지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새로 이사 갈 집에 이전 집의 짐을 이리저리 배치해 보았다. 정작 방 하나를 가득 채웠던 원단이 갈 곳이 없었다. 작은 장롱 한 짝만 한 수납장에 재봉틀과 기계를 수납해두고 작업을 하는 날만 그 장을 거실로 끌고 나와 펼치면 작업실이 되는 뭔가를 주문·제작해볼까 하고 이리저리 검색도 했다. 또 베란다를 작업실로 만들 수 있을까 싶어 견적을 내보기도 했다.
같은 단지 옆동으로의 이사였기 때문에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후에 옷과, 부엌세간 같은 잔짐은 내가 옮기는 걸로 하고 인터넷에서 값이 싼 용달업체를 계약했다. 짐을 옮기려고 원단을 꺼내자 그간 어디에 원단이 다 들어있었는지 모르게 끝없이 나왔다.
아이가 어릴 때 옷을 만들어주려고 샀지만 시기를 놓쳐 아이들이 입기엔 어색해진 캐릭터 원단들, 이걸 왜 샀지? 싶은 인터넷 쇼핑의 실패 사례들, 예뻐 보여서 샀는데 한 번 만들어보니 바느질이 까다롭고 제대로 재단하기도 어려워 '몰라서 용감했지, 다시는 이 걸로 옷 안 만들어' 결론 내린 원단들, 그리고 기타 원단들. 많이 버리고 나눔한 후 추리고 추려서 밤마다 조금씩 원단을 새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맨날 돈 없다면서 다 만들지도 못할 원단을 사들여 쌓았으니 이는 내 약점이기도 했다. 남편에게 같이 옮겨달라고 하기 싫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한 번에 들 수 있는 최대치로 눌러담은 원단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옆 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새 집에 원단을 풀어놓고 돌아오기를 며칠 간 반복했다. 그렇게 이사를 한 후 50만 원을 아꼈지만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끝없이 나오는 원단을 양 어깨에 메고 걷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새롭게 결심했다. '원단 쉽게 사지 말아야지, 외워라, 원단은 사기는 쉬워도 팔기는 어렵다. 사기는 쉬워도 옷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원단은 옷이 아니다.'
그때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베란다 창고에 넣은 약 10개의 공간박스 안에 원단을 넣고 그 위에 작은 책장을 올려 패턴을 보관하고 있다. 조금 더 줄이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원단을 구매한 만큼 만든다는 원칙에 따라 들고 나는 원단의 순환은 균형있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원단이 증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있다.
야금야금 늘어나는 원단과 패턴 위한 몇 가지 팁
원단과 패턴을 보관하는 공간을 정해놓고 그 범위를 넘지 않도록 한다. 원단을 한 번 사면 산 원단들을 다 쓰기 전까지 원단 판매 사이트 발길을 끊는다. 이제 더 이상 가지 않기로 한 기생집으로 데려간 말의 목을 벤 김유신을 생각하면 좋다. 그렇다고 내 손가락과 손목을 어찌할 순 없지만 말이다.
비슷한 원단은 항상 나온다는 걸 기억한다. 이번에 사지 않으면 영영 못 살 것 같다는 조급한 마음은 넣어둬도 좋다. 14년 간의 바느질 인생 경험으로 보면 좋은 물건, 잘 팔리는 물건은 제조업체에서 더 팔려고 다시 만들게 되어 있다. 물건이 품절될까 두려우면 쇼핑중독이라고 하긴 하던데… 아, 아닙니다.
새로운 패턴을 계속 사고싶을 때도 브레이크를 거는 편이 좋다. 신상 블라우스 패턴이 나오면 '님 저번에 산 블라우스 패턴도 아직 못 만들지 않으셨어요?'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신상 블라우스를 사고 싶어서 기존에 사둔 블라우스를 완성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니 손해볼 건 없다.
얼리어답터(남들보다 신제품을 빨리 사려는 소비자)가 되지 않는다. 패턴을 판매하는 분들은 원단 고르는 안목도 옷을 만드는 솜씨도 좋아서 새로 나온 패턴과 그 패턴으로 만든 옷을 보면 '어멋, 저건 만들어 입어야 해!' 싶지만 다른 고수들이 사서 만들어 입은 후기를 보고 사도 늦지 않다. 이 원칙만으로도 패턴 과소비를 꽤 줄일 수 있다.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한 것이 천을 적게 사면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도 비례해서 줄어든다. 적게 먹으면 나오는 것도 적은 것과 같은 이치인 듯하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도 예전 같지 않아서 허덕이며 옷을 대지 않아도 된다. 하나가 안 맞게 되거나 못 입게 되면 새로 하나를 만들어 넣는 방식으로 옷장도 원단장도 들고남이 일정해졌다.
이제는 하나를 만들어도 공을 들여 천천히 만들어가도 된다. 적게 만들고 가진 것을 잘 활용해서, 미니멀하되 그것으로 충분한 옷장을 꾸려가고 싶다. 이제는 많이 만들고 많이 쓰는 시대가 아니다. 나는 천을 사고 옷을 만드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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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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