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깎아준다, 14억도 빌려주겠다"..직거래 몰린 집주인 왜
김모씨는 전세를 준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를 처분하기 위해 3개월 전부터 인근 중개업소에 매물을 내놓았다. 김씨가 일시적 1가구 2주택자에 주어지는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오는 9월까지 이 아파트를 팔아야 한다.
지난해 거래된 같은 면적 최고가보다 가격을 3000만원 낮췄지만, 최근까지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온라인 아파트 직거래 카페에 가입해 매물을 올려놨다. 김씨는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가격을 조금 더 낮춰주더라도 바로 집을 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리 인상 등으로 부동산 매수 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며 거래절벽이 장기화하고 있다. 매물은 쌓여가는데 거래는 가물에 콩 나듯 이뤄지고 있다. 김씨처럼 세금, 이사 등 이유로 보유한 집을 처분해야 하는 매도인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직거래 장터에 매물을 올리고 있다.
팔아야 하는 집주인, 싸게 사려는 매수인
12일 회원 수 13만명에 달하는 유명 포털사이트 아파트 직거래 전문 카페에 접속해보니 하루 동안 수십건의 매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집을 팔려는 매도인과 조금이라도 더 싼 매물을 찾는 매수인이 몰려든 것이다. 실제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매도인과 매수인이 직접 거래하는 직거래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직거래 비중은 20.3%(1790건 중 364건)로 지난해 11월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았다. 7월에도 이날까지 거래 신고된 46건 가운데 13건(28.3%)이 직거래로 나타났다.
집주인들이 직거래 카페에 몰리는 건 매수 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더 다양한 매수희망자에게 매물을 알리기 위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6.8로 나타났다. 5월 둘째 주부터 9주 연속 하락 중이다. 매매수급지수는 부동산원이 회원 중개업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지수화한 것이다.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울수록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서울은 지난해 11월 이후 매매수급지수가 100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9.7을 기록, 2019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매물이 쌓이면서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도 직거래 카페를 선택하는 이유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4013건으로 양도세 중과 일시 배제가 시행한 지난 5월 10일(5만6563건)보다 13.2%(7450건) 늘었다. 그런데도 거래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 기준 6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881건에 불과하다. 아직 집계 기한이 보름 넘게 남았지만, 큰 폭의 회복세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5월 거래량도 1739건에 그치며 4월 1752건 대비 소폭 감소했다. 집계가 끝난 1~5월 기준 올해 거래량은 682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1883건의 31% 수준에 그쳤다. 서울 아파트값은 6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주에는 강남구 아파트값이 0.01% 하락하며 올해 3월 7일(-0.01%) 조사 이후 4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맞교환, 무이자 대출...불황이 낳은 거래 왜곡
이렇게 극심한 거래 절벽 현상이 지속하자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아파트 직거래 카페에는 아파트 맞교환 희망자를 위한 코너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세제 혜택 등을 보기 위해 특정 시점까지 집을 반드시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가치의 아파트를 찾아 교환 거래에 나서는 것이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국 아파트 교환 거래 건수는 20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90건)보다 8.9% 늘었다.
최근에는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으로 현금 동원력을 갖춘 매수자를 찾기 어렵자 매도인이 직접 잔금에 대해 무이자 대출을 해주겠다고 나선 사례도 있었다. 지난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강남구 청담동의 32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글쓴이가 30억원으로 가격을 내리고, 매수자에게는 14억원을 빌려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청담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어서 주택을 취득하면 2년간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하는 데, 매수자가 의무 거주 기간을 채우고서 전세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부족한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와 맞물려 가격 급등에 대한 피로감, 금리 인상 등으로 매수 심리가 얼어붙으며 시장에 거래 왜곡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시장이 정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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