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 용이 쉬어가던 곳.. 구름도 마음도 머문다

남호철 2022. 7. 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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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대암산 용늪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대암산 용늪 탐방로 옆에 융단처럼 자란 사초가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여파로 출입이 통제됐던 용늪이 2년 만에 지난달 7일부터 다시 개방됐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대암산(1304m)은 정상의 커다란 바윗덩어리에서 이름을 얻었다. 정상 인근 해발 1280m에 자리 잡은 용늪은 람사르 협약 국내 1호 습지이자 국내 유일 고층 습원(식물 군락이 발달한 산 위 습지)이다.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용늪을 포함한 대암산 전체가 천연기념물 246호로 지정됐고 89년에는 용늪만 따로 생태계보전지역이 됐으며 97년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 여파로 출입이 통제됐던 용늪이 2년 만에 지난달 7일부터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용늪은 큰용늪과 작은용늪, 애기용늪으로 이뤄졌다. 현재 큰용늪만 탐방할 수 있다. 대암산 동쪽 인제군과 서쪽 양구군에서 각각 닿을 수 있다. 인제군에서도 인제읍 가아리 코스와 서화면 서흥리 코스 두 곳으로 나뉜다.

아이와 함께라면 개인 차량으로 용늪 입구까지 이동하는 가아리 코스가 좋다. 1일 1회 운영되고, 14㎞의 포장 구간을 포함하는 비포장 임도를 차로 오른다. 전체 3시간 정도 소요되는 단기코스다.

주말에 한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대암산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대암산 등산로는 비교적 평탄하지만 막바지에 쇠줄을 잡고 올라야 해 주의가 요구된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설악산에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북쪽으로 양구 펀치볼이 눈에 들어온다. 그 왼쪽으로 도솔산·가칠봉이 이어진다. 정상까지 가는 중간쯤 해발 1300m 지점에 ‘백두대간 금강산 전망대’가 최근 들어섰다. 북한의 금강산 비로봉도 시야에 잡힌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1일 3회 운영되는 서흥리 코스도 좋다. 용늪평화생태마을에서 출발해 6시간 정도 소요되는 트레킹 코스다. 주민 안내원이 동행해 정해진 탐방로로 이동한다. 초입에서 1㎞ 정도 올라가면 계곡과 마주한다. 생태보전지역으로 과태료가 부과되는 만큼 조심해야 한다. 우거진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이 대암산 방향이고, 오른쪽이 용늪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용늪으로 올라가서 대암산 쪽으로 내려온다. 원시림을 볼 수 있는 숲길이 있고, 봄·여름·가을에는 야생화가 가득하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어 심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용늪 인근에 활짝 핀 날개하늘나리.


용늪에 도착하면 자연환경해설사의 가이드로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된다. 용늪이란 이름은 ‘승천하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란 전설에서 유래했다. 탐방 데크를 사이에 두고 융단처럼 자란 습지식물이 바람에 따라 출렁인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지에 늪이 생긴 건 4000~5000년 전이다. 단군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고 한반도 최초의 나라를 세울 무렵이다. 대암산 정상부는 1년에 5개월이나 기온이 영하에 머물고 안개가 자주 낀다. 이처럼 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바위로 스며든 습기가 풍화작용을 일으켜 우묵한 지형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빗물이 고여 습지가 생겨난 것이다.

바위 지형에 빗물이 고였다고 곧바로 다양한 생물이 둥지를 트는 건 아니다. 용늪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너무 추워 죽은 식물이 채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면서 생긴 스펀지 같은 이탄층이다. 이탄층은 1년에 1㎜ 정도 쌓인다고 한다. 평균 1m, 최대 1.8m에 이르는 용늪 이탄층은 수천 년에 이르는 식물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한반도의 식생과 기후 변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 같은 곳이다.

설명을 듣고 전망대에 이르면 3만820㎡의 큰용늪이 눈 앞에 펼쳐진다. 짙은 안개가 수시로 휘몰아치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금방이라도 용이 뛰쳐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개가 잠시 물러나면 드넓은 초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는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습지다. 대부분 풀은 사초다. 용늪에는 22종의 사초가 살고 있다고 한다. 융단처럼 자란 사초가 바람에 따라 출렁인다.

금강산 비로봉에서 처음 발견된 비로용담.


자세히 보면 데크길 바로 옆에 남한에서는 한여름 용늪에서만 피는 북방계 고산식물인 비로용담과 벌레를 잡아먹는 끈끈이주걱 등 희귀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비로용담은 금강산 비로봉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을 얻었다. 높이 5~12㎝에 불과한 여러해살이풀로, 7~8월 2~3㎝ 크기의 짙은 벽자색(碧紫色) 꽃을 피운다.

탐방로 옆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


용늪은 1980년대 초 사라질 위기를 겪었다. 인근에 주둔한 군부대가 스케이트장을 만들겠다며 둑을 쌓고 일부 이탄층을 퍼냈다. 이후 군부대를 이전하고 생태 복원사업을 벌인 끝에 다시 건강을 찾았다.

여행메모
자차 가아리… 주민가이드 서흥리
10월 31일까지 탐방… 사전 예약 필수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인제군 가아리나 서흥리로 가려면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나들목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서 31번 국도를 타면 가아리로, 453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서흥리에 닿는다. 가아리 코스의 경우 광치령터널 500m 전 지점에서 우회전해 산길 약 4㎞를 10분가량 올라가면 안내소에 닿는다. 이곳에서 신분증 확인을 거쳐 출입증을 받고 10㎞를 더 가면 용늪 주차장이다. 일반 승용차는 바닥이 닿을 수 있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이용하는 게 좋다. 서흥리 탐방 코스는 20인 기준 주민 안내원 1인 동행 비용 10만원을 분담해야 한다.
큰 바위로 이뤄진 대암산 정상.


대암산과 용늪에 가기 위해선 사전 예약이 필수다. 탐방이 허용되는 기간에도 정해진 인원만큼만 예약을 받는다. 사전 예약을 했더라도 탐방안내소 등에서 예약 확인하고 인솔자를 따라 이동한다. 사전 예약은 인제군 생태관광 홈페이지(sum.inje.go.kr)와 양구생태식물원 홈페이지(yg-eco.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인제군은 탐방 10일 전, 양구군은 20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 하루 탐방 허가 인원은 인제군이 150명, 양구군이 100명이다. 용늪 탐방 기간은 10월 31일까지다. 날씨에 따라 변동 가능하니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대암산(인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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