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어린 소통' 리더의 격이 달라진다

2022. 6. 1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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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교수의 '뉴노멀 시대, 직장인 리더십 키우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1973년 가을,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지방에서 돌아온 왕훙원과 덩샤오핑에게 던진 질문이다. 2년 전 후계자였던 린뱌오의 반란을 경험한 절대 권력자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38세의 왕훙원은 “주석의 혁명 노선이 변함없이 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답한다. 젊은 자신을 일약 권력 3인자로 올려준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으로 가득한 대답이었다. 반면 69세 덩샤오핑은 군벌들이 일어나 중국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 답한다. 당신이 있기에 중국이 유지된다는 거였다. 마오쩌둥은 어떤 답변에 만족해했을까.

“여러분 앞에 누군가 불쑥 나타나 1억원을 준다면 그걸로 무얼 하겠습니까.”

저마다 등록금에 보태겠다, 월세를 내겠다, 주식을 사겠다고 답한다. 한 학생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웃으며 하는 대답.

“전 교수님 다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고민해봤자 시간만 낭비일 뿐, 말 한마디로 점수나 따겠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상사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코로나19로 뜸했던 회식이 하나둘 다시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석에서 회사 일을 얘기할 기회가 늘었다. 자칫 커다란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눈 밖에 나거나 설화를 입을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 무심코 던진 말에 인생이 달라질 수 있고 미리 준비된 멘트를 한답시고 이미지를 구길 수도 있다. 입 밖에 내놓는 말이 자신의 격을 결정한다.

한마디 잘못 내뱉었다고 그 말을 만회하려다 더 큰 화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 한마디 잘못 내뱉은 걸 주워 담는 데는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 몇 년이 걸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그만큼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할 필요가 있다.

수없이 들었던 훈시나 조회 시간 말씀이 몇 마디나 생각나는지 떠올려보자.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고 기억에 오래 남을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진주만 폭격을 받은 바로 다음 날, 의회 연설에 나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원고에서 ‘인류 역사’라는 단어를 ‘치욕’으로 바꾼다. “인류 역사에 남게 될 것”이라는 표현을 “치욕 속에 기억될 것”으로 바꾼 것이다. 누구나 ‘인류 역사’라는 고상한 단어를 택했겠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치욕’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오늘날 ‘치욕의 날 연설’로 불리는 이 연설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 중 하나로 기억된다.

진주만 폭격 2주 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에서 3주간 머문다. 2층 장미 스위트룸(Rose Suite)에 여장을 풀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부부와 가족처럼 지냈다. 처칠 수상이 백악관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미국인의 관심을 끌었다.

“영국 총리는 미국 대통령에게 아무것도 감출 게 없답니다(Nothing to Hide).”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산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아침 식전에는 백포도주, 점심 때는 스카치위스키, 만찬 때는 프랑스산 샴페인을 마시는 처칠 수상을 백악관 직원들은 극진히 대접했다. 두 정상이 새벽까지 시가를 피우고 브랜디를 마시며 막역히 지내다 보니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칠 수상의 방에 예고도 없이 휠체어를 밀고 들어간 적도 있다. 마침 처칠 수상은 목욕을 막 마치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서 있었다고. 처칠은 귀국 후 조지 6세 국왕에게 “국가원수를 옷 하나 안 입고 맞은 건 이 세상에서 저 하나뿐일 겁니다”라고 익살을 떨었다고 한다. 처칠이 런던으로 떠난 뒤 루스벨트는 그를 그리워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 3주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가 바뀌는 순간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말은 사람에게도 또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글날을 기념한 한 방송사 실험에서 흰쌀밥을 두 통에 나눠 담고 한 통에는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을 붙인 뒤 좋은 말만 들려주고, 다른 한 통에는 ‘짜증 나’라는 이름을 붙인 뒤 부정적인 말을 들려줬다고 한다. 한 달 뒤 ‘고맙습니다’라는 통 속 밥은 하얗고 뽀얀 누룩곰팡이가 앉아 있었고 ‘짜증 나’라는 통의 밥은 썩어버렸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에모토 마사루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쌀밥과 물도 아닌 사람에게는 어떠할까. ‘너를 믿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지금 그대로만 하면 돼’ 심지어 ‘어허 이 친구, 싸가지 있네’라든지 ‘넌 사람이 됐다’는 말을 듣는 직원과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니’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니’ ‘너 지금 몇 년 찬데 아직도 헤매’ 심지어 ‘또 너야?’라는 말을 듣는 직원의 업무 성과는 어떨까. 과연 이들만의 부족함일까. 시인 롱펠로의 말처럼 상대방의 가슴속에 아주 오랫동안 머무를 못을 박은 상사 때문은 아닐까.

마크 왈드맨(Mark Waldman)과 앤드류 뉴버그(Andrew Newberg)는 ‘말은 당신의 뇌를 바꿀 수 있다(Words Can Change Your Brain, 2014년)’는 책에서 ‘연민 어린 소통(Compassionate Communication)’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말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아니오’로 시작되는 말을 들을 때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지만 ‘예’로 시작되는 말을 들으면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연민 어린 소통’이 상사나 고용주와 협상을 하거나 부부싸움을 할 때, 또 자녀들을 타일러야 할 순간에도 어려운 대화를 윈-윈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대화를 하기 전 상대방 긴장을 풀어준다’ ‘30초 동안 계속해서 얘기하면 상대방 집중력이 흐려진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라’는 조언들은 마음속에 담아 둬야 할 것들이다. 상대방 말에 항상 호응하면서 말을 끊지 말라는 것도 중요한 팁이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말을 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그 한마디에 자신의 평가 기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 ‘좋아요’를 누른 것만으로도 자신도 모르는 성향과 선호도가 나타나는 시대다. 한 마디, 두 마디 쌓인 말이 자신의 평판을 이룬다.

“저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세워두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인이 있었다. 행인들은 무표정으로 지나가기만 한다.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여인이 지나치다 말고 펜을 꺼내 종이 뒷면에 무언가 적어 세워놓고 자리를 떴다. 놀랍게도 지나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주고 가기 시작한다. 그 여인이 다시 적은 문장은 “오늘 날씨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전 이것을 보질 못합니다”였다. 굳이 도와달라는 말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지나는 사람들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말이면 충분히 도움의 손길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는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공감의 도구로 대인 관계의 폭을 넓혀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은 소셜미디어 시대인 오늘날 더욱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소통의 수단인 말이 행동보다 중요해졌을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주고받는 수많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를 정의해주기 때문이다.

‘연민 어린 소통’이란 상대방을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덩샤오핑은 린뱌오의 반란으로 심란했던 마오쩌둥이 내심 듣고 싶었던 정곡을 찌른 것이다. 날씨가 좋은데 보지 못한다는 말 속에는 도와달라는 말보다 훨씬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고 어쩌다 생긴 돈 다 드리겠다는 대답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대한 질문을 만족시켰다.

“직장은 어른들의 놀이터다.” 철없이 천방지축 날뛰는 신입사원을 어여삐 봐준 내 첫 직장 상사의 말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항상 상대방을 생각한 말 한마디가 당신을 리더로 만든다.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3호 (2022.06.15~2022.06.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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