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환원의 꿈

2022. 6. 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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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손봐야 하는 금속물
자유의 여신상처럼 자연도 돌봐야
김병민 과학저술가

세계 화폐를 순환시키는 금융을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로 비유해 자본의 심장이라 상징하는 뉴욕 맨해튼에는 또 다른 상징이 있습니다. 뉴욕을 가면 당연히 들러야 하는 관광코스의 하나인 자유의 여신상입니다. 약 15년전 제가 만났던 거대한 금속 구조물은 미국이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녹청색으로 묵직하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금속을 사용한 이유가 굳건함과 영원을 약속한다는 함의가 있었던 걸까요. 하지만 여신상 내부는 늘 보수공사가 이어집니다.

여신상의 외피는 동판이고 내부 골격에는 강철이 사용됐죠. 철골 구조물을 뼈대로 만들고 수백 개에 달하는 동상의 신체 동판 조각들을 그 철골에 얹혀 고정했습니다. 동상의 설계자는 프랑스 토목공학자 알렉산더 구스타브 에펠 (Alexandre Gustave Eiffel)입니다. 이름에서 짐작했겠지만 에펠탑을 설계한 인물이죠. 그는 ‘철의 마법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철을 잘 다뤘습니다. 그런데 화학적으로 여신상은 위험한 설계입니다. 이유는 철과 동판이 직접 닿아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화학을 잘 알고 있던 에펠이 기름 섞인 석면을 두 금속 사이에 끼워 넣은 사실은 그 위험을 인지했었음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여신상이 박물관에 고이 모셔져 있는 환경이 아님을 간과한 걸까요. 바닷가 비바람과 염분, 번개 등 각종 자연 활동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태생적 결함과 풍화를 이기지 못하고 대규모 보수가 필요해진 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녹(rust)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학을 공부했다는 저조차도 가끔 철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을 합니다. 현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만큼 견고한 물질이니까요. 하지만 철로 만들어진 형체는 녹으로 파괴됩니다. 단지 그 속도가 문명의 파괴 속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릴뿐이죠. 이런 이유로 철이 ‘영원’을 함의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를 가나 자연사 박물관은 석기-청동기-철기시대 순으로 문명을 전시합니다. 인류사가 제대로 기록되기 시작한 건 수천 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사건과 인물의 기록이 없는 더 깊은 문명은 당시 사용된 물질과 연계해 설명되죠. 그런데 철기는 청동기보다 훨씬 나중에 등장했음에도 박물관에서 철기 유물을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철이 귀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철은 지각의 산소와 규소에 이어 4번째로 풍부합니다. 심지어 구리는 26번째죠. 그렇다면 철의 흔적은 어떻든 남아 있어야 합니다. 농사와 사냥과 전쟁의 도구나 무기로 사용됐을 테니까요. 사실 순수한 철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녹으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철기 유물은 합금인 탓에 소멸이 지연된 겁니다. 녹은 금속의 화학반응에서 가장 일반적 특징인데, 철은 녹에서만큼은 독보적 존재입니다. 철은 산소와 결합하며 붉은색을 띠며 몸집을 늘립니다. 마치 상처 난 피부가 딱지가 되어 벗겨지듯 부푼 녹은 표면에서 분리되고 새살이 돋은 그 안쪽으로 다시 녹이 파고듭니다. 그렇게 서서히 철의 형체는 파괴되며 사라집니다. 철도 사람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죠.

사진=아시아경제 DB

화학에서 녹은 금속이 가진 전자를 뺏기는 현상입니다. 자신의 몸체를 유지했던 이유가 금속 원자들 사이를 채운 전자였기 때문에 전자를 뺏기면 철은 원자의 배열을 유지하기 어려워 집니다. 화학에서는 물질이 가진 전자의 손실 과정을 ‘산화 반응’으로 정의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자를 뺏어가는 대상인 산소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쉽죠. 그러니까 금속이 산소를 만나 녹이 슬면 ‘산화’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원래 대부분 금속은 이런 금속산화물 상태로 광물에 흩어져 존재했습니다. 인류 지성이 광물에서 순수한 금속만을 꺼낸 것이죠. 하지만 산소와 같은 물질이 이 금속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산소는 녹을 생기게 하는 파괴자중 대표적 존재일 뿐입니다. 가령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금속이 맞닿아 있어도 부식은 발생합니다. 모든 금속은 각각 전자를 뺏기는 정도가 다르고 이런 차이로 서로 다른 금속간에 전자가 이동합니다. 그러니까 전자를 잃은 양극쪽이 서서히 파괴되는 거죠. 이 현상은 16세기 이탈리아의 생리학자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가 목격했습니다. 화학을 몰라도 맞닿은 두 금속 사이에서 전자가 이동하는 이 현상이 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바로 최근 전기차의 화두인 배터리의 근본 원리이죠.

인류는 대부분 금속의 성질과 반응을 잘 알게 됐습니다. 인류는 이런 금속에 의지해 세상의 모든 문명의 뼈대를 이루고 미래의 희망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금속은 수명이 있고 파괴됩니다. 심지어 철과 같이 믿을 수 없는 물질에 의지한 채 인류 문명이 지금까지 지속했다는 것이 신기하죠. 물론 파괴된 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산화된 상태로 광물로 존재했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간 거죠. 산화철은 다시 탄소와 반응하면 산소와 분리되며 전자를 얻고 순수한 철로 탄생합니다. 이 화학반응이 ‘산화’의 짝 반응인 ‘환원’입니다. 이런 명칭이야 근대 과학자들이 붙인 이름이고 이런 일련의 모든 현상을 인류는 꽤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죠. 무려 기원전 30세기까지 올라갑니다.

철을 다루기 시작한 곳에선 환경파괴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과거에 제철 과정은 엄청난 양의 목재를 소모해야했죠. 지금의 제철산업에는 화석연료를 사용합니다. 화석연료로부터 얻은 에너지로 철광석을 녹이고 탄소를 산소와 반응시켜 순수한 철을 얻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를 만듭니다. 사실 제철과 제련산업은 태생부터 기후 위기의 주범이었습니다. 실제로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8퍼센트를 차지하죠. 그런데, 이 방법을 지금까지 사용한 것입니다. 탄소가 들어있는 화석연료의 풍부함과 효율성으로 고민은 물론 다른 대안에 대한 질문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이유가 생겼습니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법은 있는 걸까요.

보통 이럴 때 ‘선택과 집중’이 등장합니다. 인류는 늘 그랬습니다. 위기에 강했고 꿈은 현실이 됐죠. 예를 들면 수소 경제는 이미 들어보셨을 겁니다. 만물의 근원인 가장 작은 원소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재료로 등장한거죠. 최근 수소차를 앞세워 에너지 게임체인저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소는 자동차를 굴리는 것뿐만 아니라 철 문명과 환경을 유지하는데에도 등장합니다. 제철산업에서 환원제로 탄소 대신 수소를 사용하려는 거죠. 철광석(Fe2O3)에서 수소(H2)로 산소를 분리하면 순수한 철(Fe)을 얻고 부산물로 물(H2O)이 생깁니다. 이 내러티브에는 탄소나 온실가스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이를 ‘수소 환원 제철’이라고 합니다. 환원의 꿈중 하나이지요. 금속이 환원되는 데에는 재활용도 중요합니다.

그나마 재활용이 비교적 쉬운 금, 철, 납은 환원율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수명을 다한 금속이 재활용되고 환원되지 않으면 대량으로 폐기되고 손실됩니다. 최근 네이처의 논문을 보면, 현재 문명을 지탱하는 61종의 금속 중 절반 이상이 10년 미만의 경제적 수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연구됐습니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과 코발트나 반도체 재료인 갈륨은 손실률이 매우 높죠. 매년 수십억 톤의 금속이 다시 채굴되고 온실가스를 뿜어 댑니다. 가령 알루미늄을 재활용할 경우에 드는 비용은 광산을 채굴해 순수한 알루미늄을 추출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약 5%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알루미늄의 수요는 계속 증가해 전 세계 전기 소비량의 3%를 알루미늄 생산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환원 기술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재활용 비용과 환원제 생산 비용 등이 환원의 꿈으로 얻는 이득보다 큰 상황인 건 사실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늘 이런 비용과 이익, 경제적 가치, 성장의 지표로 판단하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성장이라는 방정식의 항목들이니까요. 늘 숫자로 우리는 압도 당하고 그래서 지금 그 꿈을 실행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전문가의 대답이 우리 생각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장을 꿈으로 세상을 파괴했다면 이제 환원이라는 꿈으로 성장을 잠시 멈추면 안 될까요.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집단 지성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삶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시도하려는 모든 노력의 근본 목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류 문명의 풍경이 지속되고 성장하길 바라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과 생태계의 지속과 공존’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자유와 평등이 어쩌면 여신상처럼 끝없는 손길이 가야 하는 금속이듯, 또한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도 인류가 끊임없이 돌봐야 하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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