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기획 보류하는 단지들..진행 더디고 기부채납 부담스럽고

2022. 5. 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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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현장진단]

서울시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에 참여했던 일부 재건축 단지들이 재검토로 돌아서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신통기획은 ‘정비사업 정상화’를 외친 서울시의 야심작이다. 서울시가 정비사업 초기 단계부터 함께 계획안을 제시해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민간 주도 개발에 공공이 나서 정비계획 수립 초기 단계부터 각종 계획과 절차 간소화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서울시 측은 신통기획에 참여하면 통상 5년 이상 걸리는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같은 면적 토지라도 더 많은 가구 수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그 대가로 조합 측은 늘어난 가구 수 일부를 기부채납 형식으로 제공한다. 정부는 이렇게 확보한 주택을 공공 임대 주택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서울시는 신통기획을 위해 ‘정비사업 특별분과위원회’를 신설했고 시의회를 설득해 ‘건축·교통·환경 통합심의’가 가능하도록 관련 조례를 수정했다.

지난해 진행된 1차 재개발 후보지 공모에는 24개 자치구에서 102곳이 신청했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 역시 강남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비롯해 대치동 한보미도맨션 등 강남 주요 입지에 위치한 단지들이 대거 신청했다. 소위 말하는 재건축 대어가 잇따라 참여하면서 신통기획은 흥행을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강남권 일부 단지의 경우 조합 내부에서 신통기획 참여를 둘러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차’는 최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신속통합기획’ 사업 철회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윤관식 기자)
▶조합원 재투표 나선 신반포4차

▷신통기획 참여 놓고 설문조사 진행

정비업계에 따르면 신반포4차 조합은 지난 5월 초부터 조합원들에게 신통기획 철회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신통기획을 통해 얻고자 했던 이익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조합원 의견을 다시 묻기 위해서다.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4월 말 조합 대의원회의에서는 80% 찬성률로 참여 보류를 결정했다.

신반포4차 조합은 지난해 말에도 조합원에게 신통기획 신청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전체 조합원 1380명 중 53%가 찬성하면서 올해 초 신통기획에 참여하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반포4차 측은 신통기획에 참여하기 전부터 서울시, 서초구청 등과 지난 1년 동안 정비계획안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이미 협의를 진행하고 있던 만큼 신통기획 참여로 처음부터 다시 절차를 밟더라도 전체적인 사업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신통기획 사전 검토 결과, 서울시는 정비계획안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대상지 선정 가능성이나 선정 일정이 불투명하고 가이드라인도 용역 발주와 작성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이 되면 6개월 안에 가이드라인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봤던 조합 예상과 다른 결과다.

조합은 또 층수 규제 완화를 요구한 반면 서울시는 연말에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고시가 난 뒤 적정성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조합 내부에서는 신통기획 참여 여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반포4차 조합 측은 “서울시가 사전 검토 회의 이후 신통기획에 대한 주민 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해 조합원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시 측은 “현재까지 접수된 의견이 없으나 주민이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신통기획을 실시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은마아파트 등 상당 기간 절차가 진행된 단지들은 신통기획 신청에서 이미 제외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의견 엇갈리는 신반포2차

▷송파 오금은 이미 참여 철회

신반포4차 외에도 신통기획 참여를 재검토하는 재건축 단지는 여럿이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 역시 신통기획을 두고 조합 집행부와 비대위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소형 평형 등 공급 가구를 늘리라는 서울시 요구를 수용한 조합 집행부에 대해 일부 조합원이 “닭장 아파트는 안 된다”며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반대파 조합원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를 설치하고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7월 현 조합 지도부를 해임하는 총회를 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당초 신반포2차 조합은 기존 가구 수 1572가구 대비 17% 증가한 1840가구로 재건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주택 공급 효과가 미미하다”며 공급 확대를 요구했다. 조합은 서울시 주장을 받아들여 30% 늘린 2051가구로 수정해 제출했다.

조합 측은 “서울시에서는 최대 60%까지 공급을 늘려달라고 했지만 주변 단지 사례를 감안해 30%로 늘려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임대 주택과 일반분양 물량 일부인 479가구를 전용면적 51㎡로 바꿔 가구 수를 더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계획안에는 전용면적 59㎡ 이하 물량이 없었다.

조합 수정안은 중대형 면적, 고급화 단지를 요구하는 주민 반발을 불렀다. 일부 조합원은 “공급 물량을 늘리면 가구당 분담금을 4000만~5000만원 줄일 수 있겠지만 조합원이 받게 될 아파트 면적이 줄어 오히려 재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기존 17% 증가안은 거의 1:1 재건축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주택 공급 강화 같은 공공성 기여 없이 신통기획 트랙을 제공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송파 오금 현대아파트의 경우, 신통기획은 아니지만 지난해 공공 주도 재건축(신통기획의 전신)을 추진했다 주민 반대에 부딪혀 결국 철회했다. 서울시가 예상보다 높은 임대 아파트 비율(20.6%)을 제시하면서 조합원 반발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신통기획 참여를 재검토하고 있는 재건축 단지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 재건축 사업은 주민 제안부터 정비구역 지정까지만 5년이 걸린다. 신통기획은 이를 2년으로 대폭 줄일 수 있다. 심사 시간을 줄여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주요 재건축 단지는 신통기획을 고민해왔다.

하지만 반대 입장도 명확하다. 아파트 가격은 그 아파트가 보유한 토지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 등은 공공 임대 기부채납이나 소형 면적 공급 확대 등을 강하게 요구한다.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가구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가구당 보유 대지지분은 줄어든다. 이로 인해 재건축 후 아파트 가격이 주변 다른 아파트보다 시세가 낮게 형성된다면 굳이 조합 측은 신통기획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신통기획의 사업 목표 중 하나인 공공성 확보와 조합 측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비업계는 앞으로도 신통기획 참여 조합과 서울시 간 엇박자가 나는 곳이 많아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신통기획 참여를 고려했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조합과 서울시 간 상호 이해관계가 잘 맞으면 좋겠지만 서울시가 구체적인 안을 조합에 제시했을 때 임대 비율 등 여러 조건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이 진행될수록 참여를 철회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신통기획 참여에 따른 득실을 잘 살펴본 후 참여를 결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눈길을 끈다. 이태희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신통기획 핵심은 속도인데 이미 사업이 많이 진행된 사업장의 경우 신통기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많지 않다면 차라리 참여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면서 “섣불리 참여했다 취소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구당 대지지분이 많거나 분양가 혹은 주변 시세가 높은 지역은 일반적인 재건축을 진행해도 큰 무리가 없다”며 “신통기획이 인허가 절차를 줄여주는 등 행정적인 부분의 장점이 있지만 공공 기여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장단점을 따져보고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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