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남도는 진리다..큰 섬 진도

2022. 5. 27.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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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생활 여행지이다. 다도해 자체가 아름다운 볼거리지만 섬 곳곳에 역사와 삶의 흔적들이 섬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저 바다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야무진 삶을 힐끗힐끗 바라보게 되는 그런 곳이다. 임진왜란 등 승리의 물결이 지금도 이순신 시대와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고,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의 현장 또한 그 바닷가에서 말없이 해풍을 맞고 있다.

▶먼 섬 진도로 들어가는 또 다른 방법

‘비행기 타고 광주에 가서 렌터카 빌리자, 그냥 차 가져 가자, 어차피 진도 한 바퀴 돌려면 차가 있어야 한다. 운전은 돌아가면서 하자. 그게 다 뭔 소리냐. 교대로 해도 6시간 운전은 부담스럽다. 비행기 타려면 공항까지 가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이 만만치 않다.’ 일행들과 이러쿵저러쿵 설왕설래하다 내린 결론은 KTX(SRT)로 광주송정역까지 가서 그곳에서 렌터카를 빌려 목포로 해서 진도로 들어가는 루트였다. 행신역, 서울역, 용산역, 수서역 등에서 출발하는 KTX 호남선의 최종 도착역은 목포역이지만 굳이 광주송정역을 선택한 것은 렌터카 때문이었다. 광주송정역 근처에는 꽤 많은 렌터카 업체가 밀집해 있고, 렌터카 종류, 가격대 등 선택의 폭이 비교적 넓은 반면에 목포의 경우 광주에 비해 차종, 가격 등이 제한적이었다. 광주에서 목포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니 시간 부담도 없었다. 나름 괜찮은 루트라고 생각했지만 비용 부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기차 요금이 왕복 9만 원쯤 하고 렌터카 비용까지 생각하면 남는 장사는 아니다. 그저 안전, 쾌적 비용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행 각자의 형편에 맞춰 우리는 목포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필자는 서울역에서 탔고, 친구 1은 천안아산역에서 승차, 광주송정역에서 내려 렌터카를 받았다. 친구 2는 용산역에서 출발, 목포역에서 내려 우리와 만났다. 예매도 각자 했고, 좌석을 맞추는 일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여행을 같이 가나’ 싶기도 했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이 여전한 시절에 친구들이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떠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기차 안내 방송에서도 ‘긴 대화를 하려면 객차에서 나가 이음 구역에서 얘기하라’고 권하는 판이니, 차라리 그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13 대 133 명량대첩의 기억

판옥선, 진도대교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로 승용차를 이용해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진도대교를 건너는 것뿐이다. 진도대교는 해남군 문내면 화원반도의 우수영국민관광지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를 잇는, 길이 484m의 다리다. 19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로 완공했으니 당시만 해도 큰 화제가 되었던 교각이다. 진도대교도 진도대교이지만, 이곳은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이라는, 세계 최고의 해전사로 기록된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1597년 10월 정유재란 당시 전투 상황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는 없으나,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필사즉생 필생즉사)’, 전선 13척(전투 직전 한 척 보강)으로 일본 전선 133척 격파 등 명량해전의 주요 키워드는 다들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이다. 임진왜란도, 정유재란도, 조선도, 판옥선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곳 울돌목이 흐르는 명량 해협은 여전히 사납고 거칠었다.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해지는 울돌목 해류를 보고 있노라면, 최민식 배우가 이순신 역을 맡았던 영화 ‘명량’에서의 해전 장면이 교차되어 보이면서 마음이 바닷속 전쟁으로 향하게 된다.
울돌목스카이워크
울돌목이 흐르는 진도대교 북쪽 해남군 지역에는 우수영국민관광지가 있는데, 우수영문화마을, 충무사, 명량대첩비,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 강강술래 전수관, 명량해상케이블카, 그리고 울돌목스카이워크 등이 설치되어 있다. 코로나 여파로 운영이 중단된 상태여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 특히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은 꼭 한번 들려볼 만한 전시관이다. 임진왜란의 실체와 그로 인해 급변한 조선, 일본, 중국의 당시 상황, 울돌목의 해류를 이용한 해전 승리의 과학적 원리, 거북선과 판옥선이 일본의 세키부네 즉, 관선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 구조적 장점 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와 해설을 구성해둔 곳이다.

울돌목 바로 위에는 울돌목스카이워크가 설치되어 있다. 구불구불한 모습이, 마치 휘돌아가는 해류의 모습을 닮은 이 투명 다리는 거친 신음 소리와 함께 명량 해협을 굽이치는 울돌목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바로 옆 마당에 설치해 놓은 판옥선은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 관람객이 직접 승선해 판옥선의 구조와 장점을 관찰할 수 있다. 하늘에는 진도와 해남 우수영관광지를 왕복하는 해상케이블카가 운행 중이다. 케이블카에 오르면 수직 아래로 보이는 울돌목은 물론 저 멀리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섬들의 모습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진도의 오아시스, 뜨거운 태양의 해변

기차와 렌터카를 번갈아 타며 이동하고 진도대교 아래에서 명량해전을 상상하며 걷고 읽고 웃고 떠들어대자 갑자기 고단함이 밀려왔다.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다. 일단 숙소로 가서 잠시나마 쾌적함을 맛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목적지는 진도 쏠비치. 노란색 대리석 건물과 바로 앞 절벽, 그리고 바다로 펼쳐지는 풍경이 딱 지중해 연안의 프로방스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진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곳을 숙소로 잡은 것은 생긴 지 2년 남짓한 새로운 시설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리조트 안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이 기가 막혀, 그 맛을 보기 위함도 크게 작용했다. 진도 몇몇 곳을 훑어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2박3일 동안 이곳에 콕 머물며 자고 먹고 놀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 웰컴센터 지하2층에서 바닷가로 연결되는 곳에 있는 인피니티풀은 지중해 연안 절벽 도시의 호텔 수영장을 방불케 한다. 수영복을 꼭 챙길 것을 권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풀을 즐기곤 하는데, 개방 시간인 오전 10시에 잽싸게 들어가 넓게 펼쳐진 바다와 아기자기한 섬의 모습을 보거나, 문 닫는 밤 10시 직전에 들어가 조명으로 빛나는 리조트 야간 풍경을 즐기며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뷔페, 한식당, 해산물식당 등 종류별 먹거리들도 많아 이곳을 찾은 사람들 중 다수가 리조트 밖으로 나가려 하질 않았다. 특히 썰물 때 바닷길이 열리는 소삼도 트레킹은 한때 신비의 바닷길, 모세의 기적이라는 마케팅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았던 진도 기적의 바다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물론 신비의 바닷길은 지금도 많은 여행자를 부르는 진도 여행 콘텐츠로 회동리 전망대에서 모도까지 이어지는 2.8㎞의 바닷길을 매일 열고 있다.

위치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 산287

▶남종화의 본향 운림산방

진도 여행의 이유가 되기에 충분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운림산방은 우리나라 남종화의 대가로 꼽히는 소치 허련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되어 누대로 이어지고 있는 화맥을 보며 놀라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생소한 단어 두 개가 등장했다. ‘남종화’와 ‘화맥’이 그것이다. 남종화란 조선시대 때 전문 화가(화원)가 아닌 사대부 문인들이 만들어 간 화풍을 말한다. 화맥은 화풍의 전승을 말하는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에서 시작된 그림 가문이 오늘날 5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그림과 글쓰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다듬었던 곳이다. 그게 1856년의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소허암 또는 운림각으로 불리기도 했다. 진도 쌍정리에서 1808년에 태어난 허련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해남으로 건너가 대흥사 초의선사로부터 학문을 배우는 한편 스스로 인격 수양에 힘썼다고 한다. 또한 윤선도, 윤두서 등 조선시대 명문 사대부였던 해남 윤씨의 녹우당에서 화첩을 보며 그림과 화풍을 익혔고 초의선사의 추천을 받아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인 서화 공부를 하게 되었다. 소치라는 아호 역시 추사가 내려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소치 허련은 김정희에게 사사한 후 조선 24대 왕 헌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헌종이 소치의 그림과 학문, 그리고 인간 됨됨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자신을 위한 그림 작업을 하겠다는 소치에게 자신의 벼루에 먹을 갈아 그리라 허락했고, 소치는 감히 임금의 벼루에 먹을 직접 갈아 ‘화중지왕’이라는 작품명의 ‘모란꽃’을 바쳤다고 한다. 꽃 중의 꽃, 꽃의 대왕으로 불리던 모란을 그린 것은 임금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의 발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사랑을 듬뿍 받던 소치 허련은 그림뿐 아니라 왕실의 고서화를 해설하고 평가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 화가로 인정받았다. 소치 허련은 선면산수도, 김정희 초상화, 묵모란, 파초 등의 대표작 외에도 인물, 노송, 노매, 모란, 괴석 등을 그린 작품들도 많이 남겼다. 그는 갈필 즉, 마른 붓질로 산수화를 즐겨 그렸는데, 그의 스승 김정희의 작품에서는 세한도를 제외하고는 갈필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을 빗대어 생각해 보면, 갈필은 소치 허련의 독자적 화풍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남종화는 몰라도 남농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농은 허련의 3대손으로 이름은 ‘건’이다. 남농은 1908년에 태어나 1987년에 죽었는데, 그는 조선의 남종화를 현대에 이어준 대가로 인정받음은 물론 오늘의 운림산방을 복원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소치 허련은 남농뿐 아니라, 2대손인 선미산 허은, 미산 허형, 3대손인 남동 허건과 임인 허림, 4대손인 임전 허문, 5대손인 동원 허은, 소정 허청규, 허진, 허재, 허준 등 대를 잇는 그림 가문의 화맥을 이루고 있다. 운림산방에는 소치 허련과 후손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세대의 흐름이 엿보이는 작풍을 엿볼 수 있었다.

운림산방의 결정적 매력은 고목이 되어버린 배롱나무, 팽나무 등 거목들과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소치가 살았다는 초가, 화실, 소치의 영정을 모신 운림사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도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시장은 소치1관과 2관 두 곳이 있는데 소치와 후손들의 작품, 가문의 이야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운림산방과 연결되어 있는 남도전통미술관, 쌍계사, 쌍계사 상록수숲, 첨찰산 등산로 등 하루 종일로도 부족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인 곳이 바로 운림산방이다.

위치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진도항과 팽목항

진도항 산타모니카호
모두에게 팽목항으로 기억되는 이곳의 본명은 진도항이다. 팽목항에서 진도항으로 개명된 시점은 세월호 비극이 벌어지기 일년 전인 2013년의 일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곳을 여전히 진도항이 아닌 팽목항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세월호 비극이 해소될 때부터는 기꺼이 진도항으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팽목항에는 여전히 노란색 리본과 리본 모양의 스티커, 메시지, 그리고 기억관, 가족식당, 성당 등 컨테이너 건물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금 이동하면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 페러가 이끌고 우리나라 국민 3000여 명이 참여해 만든 기억의 숲이 자라고 있다. 수종별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무궁화동산, 노란 잎이 빛나는 은행나무숲, 기억의 벽, 고 김관홍 잠수사 동상 등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팽목항에서 1km 떨어진 곳에는 ‘국민해양안전관’이라는 이름의 세월호 추모 시설이 2022년 9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완공이 되면 팽목항에 있는 세월호 관련 시설들은 물론 기억의 숲까지 이곳으로 이전해 모인다고 한다. 이 공간이 안전과 진실의 거점이 되기를 빌어 보았다.

제주, 추자행 쾌속선이 개통된 것은 새로운 소식이다. 진도항에서 제주까지 90분, 추자도까지 45분이면 도달하는 쾌속카페리 산타모니카가 그 주인공이다. 진도항에서 산타모니카를 이용하면 추자도는 당일 여행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산타모니카호는 3500톤 여객선으로 자동차로 싣고 갈 수 있는 차도선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7시(목적지 항구 상황에 따라 8시로 변경될 수 있음), 오후 3시(오후 2시30분),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전 7시(8시), 오후 1시30분(2시30분)에 출항한다. 첫째, 셋째 목요일은 정기 휴항일이다. 좌석은 이코노미, 스탠다드, 오션뷰, 비지니스, 패밀리 등으로 나뉜다. 목포역 출발 셔틀버스는 오전 6시10분, 오후 12시40분에 운행된다. 요금은 1만 원이며 반드시 예약을 해야 이용 가능하다.

위치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 1493(진도항여객터미널)

▶진짜 옛날에 와 있는 듯한 거친 성곽 ‘진도 남도진성’

남도진성
아주 오래된 성이다. 문화재청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 성이 구축된 것은 고려 원종 때였다. 당시 몽골에 저항하던 삼별초가 진도까지 밀려와 이곳에 성을 쌓고 몽골과 싸웠다. 그러나 또 다시 상황이 나빠지자 이곳에서 배를 띄워 제주도로 이동했다고 한다. 또한 고려 충정왕 때인 1350년 무렵에는 왜구들의 침탈이 극에 달해 관청과 백성들이 진도를 떠나 육지로 이전하기도 했었는데, 조선 세종 20년 쯤 이곳에 해안지역 군사시설인 만호부를 설치, 다시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지금 볼 수 있는 성과 건축물들은 당시 새로 지은 것들을 기본으로 복원한 것들이다. 남도진성은 넓고 거칠었다. 부분적으로 공사하는 곳도 있지만, 문화재라는 게 늘상 수리하고 고치고 복원하는 게 일 아니던가. 성곽 안쪽은 그 옛날 마을이나 관청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그저 황량한 들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래 전 남도진성 사람들의 고단했을 삶과 애환을 생각하며 사색하기에 괜찮은 곳이었다. 삼별초, 왜구, 왜란 등을 생각해 보면, 전쟁도, 침략도 없는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글과 사진 이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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