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 코앞.. TV에선 아직도 단일 민족?

이은호 2022. 5. 20.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송된 KBS1 ‘이웃집 찰스’. 전교생 40% 이상이 외국인·다문화 가정 학생인 하남중앙초등학교를 조명했다. 해당 방송 캡처

광주 월곡동 하남중앙초등학교. 고려인 마을에 있는 이 학교의 전교생 46%는 외국인·다문화 가정 학생이다. 이곳은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 학급을 편성하고, 고기를 못 먹는 학생들에겐 대체 급식을 제공한다. 다른 나라 출신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주저 없이 답한다. “재밌어요.” “딱히 걱정은 없어요.” 지난 3일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영된 KBS1 ‘이웃집 찰스’ 속 장면이다.

다문화 사회 코앞…방송은 어디까지 왔나

20일은 제15회 세계인의 날이다. 다양한 민족·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2007년 제정됐다. 한국은 다문화 사회(외국인·귀화자 등 이주 배경 인구가 총인구 5% 이상인 사회) 진입을 코앞에 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내 이주 배경 주민은 215만명으로 총 인구의 4.15%(2020년 기준)를 차지한다. 2030년엔 264만명으로 증가해 전체 인구의 5.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 배경 주민을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 성숙도는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발표하는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성인의 다문화 수용성 점수는 52.27점으로 낙제 수준이다. 2015년(53.95점)과 2018년(52.81점)보다 낮아졌다. 이런 경향은 대중매체에서도 감지된다. 2010년대 중후반 방송돼 인기를 끌었던 JTBC ‘비정상회담’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BS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 등이 지난 몇 년 사이 차례로 막을 내렸다. 모두 다양한 종교·민족·국적·성·계층 등에 따른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했다고 평가받은 프로그램들이다.

현재 방영되는 TV 방송 가운데 이주 배경 주민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MBN ‘이제 만나러 갑니다’, MBC에브리원 ‘대한외국인’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이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 대부분 이주 배경 주민을 이국적 존재로 묘사하거나 한국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프로그램은 탈북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에피소드를 내보내거나(‘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진을 백인 혼혈에 편중해 구성한다(‘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EBS는 이달 초부터 ‘딩동댕 유치원’에 다문화 캐릭터 마리(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를 등장시키고 있다. EBS

“동화주의 내려놓고 문화 다양성 관점 갖춰야”

전문가들은 “대중매체의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다문화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일상 속 이주민 목격과 대중매체의 이주민 재현이 다문화수용성에 미치는 영향, 신동훈·양경은)고 본다. 실제 여가부가 2018년 진행한 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67.9%가 ‘대중매체를 통해 이주민을 접한 후 외국 이주민과 그 자녀들에 대한 거부감이나 차별적인 생각이 줄었다’고 답했다. 이주민의 풍습과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답한 인원도 61.1%로 나왔다.

이주 배경 주민을 정형화하거나 한국 문화를 주입하는 기존 연출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금상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위원과 이혜영 문화협동조합 모다 대표는 2018년 발간한 방송영상콘텐츠의 다문화 수용성 제고 안내서에서 “문화 다양성의 관점에서 (다문화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인식이 필요하다”며 “다문화 사회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과 공생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사례를 발굴할 시기”라고 짚었다.

EBS는 이달 초 ‘딩동댕 유치원’을 개편하면서 남미 출신 어머니를 둔 캐릭터 마리를 등장시켰다. EBS가 개국 이래 처음 선보이는 다문화 캐릭터로,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 특징이다.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이지현 PD는 “현실적인 공간인 유치원을 배경으로 다양성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웃집 찰스’를 연출하는 오은일 PD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2020년부터 우리 안에 내재된 이주민 차별이 없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며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주 배경 주민들을 둘러싼 편견을 거두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려 한다”면서 “앞으로는 시야를 넓혀 이주민 2세대도 조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