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만 평의 제주 돌문화공원..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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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 "세계적 수준" 극찬 받은 가장 제주다운 곳) 덕분에 돌문화공원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제주돌문화공원 고순옥 사무장이 보낸 사진집과 논문집을 통해 백운철 전 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단장의 숭고한 삶에 고개가 숙어졌다.
'제주돌문화공원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부제로 한 이경진의 석사학위 논문 '퍼포먼스로 본 문화공간의 의미화 과정'에는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백운철 총괄기획단장에 대한 내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은 1999년 백운철(당시 탐라목석원 원장)이 보유한 2만986점의 유물을 제주도에 무상 기증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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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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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인 공원이라고 극찬받은 제주돌문화공원 모습 |
| ⓒ 고순옥 |
영화는 나무가 사라져 황량한 사막으로 변모한 베르공 마을에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마을을 떠나지 못한 주민 몇 명과 12채의 가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마을을 방문한 주인공 눈에 한 노인의 이상한 행동이 들어왔다. 그는 양을 키우는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으로 매일 황무지에 너도밤나무 씨앗을 심고 있었다.
노인이 1910년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37년이 지난 후 황폐했던 마을에 향기롭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가 심었던 10만 그루의 나무 중 2만 그루가 살아났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 37년이 지난 후 마을에는 1만 명의 주민이 돌아오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행복한 곳이 되었다. 한 사람의 헌신이 세상을 바꿨다는 것을 그린 영화이다.
지난 3월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는 여러 번 방문했지만 2박 3일의 단기간 방문 중 어디를 가볼까 궁리하다 제주대학교 김경호 교수에게 물었더니 "돌문화공원을 꼭 방문해보시라"는 추천을 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거대한 돌이 양쪽으로 늘어선 '전설의 통로'를 거쳐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상징탑을 거쳐 '하늘연못'에 도착하니 장화를 신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 촬영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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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동자석들로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이 연상됐다 |
| ⓒ 오문수 |
"아니! 누가 이 많은 돌과 작품들을 모아놨을까? 어떻게 세계적인 걸작과 연상되는 작품들을 모아 연출했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글을 썼고 <오마이뉴스> 여행 부문에 상위 랭크 되어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관련 기사 : "세계적 수준" 극찬 받은 가장 제주다운 곳) 덕분에 돌문화공원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제주돌문화공원 고순옥 사무장이 보낸 사진집과 논문집을 통해 백운철 전 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단장의 숭고한 삶에 고개가 숙어졌다.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백운철은 누구?
'제주돌문화공원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부제로 한 이경진의 석사학위 논문 '퍼포먼스로 본 문화공간의 의미화 과정'에는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백운철 총괄기획단장에 대한 내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은 1999년 백운철(당시 탐라목석원 원장)이 보유한 2만986점의 유물을 제주도에 무상 기증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탐라목석원에서 보유한 유물 대부분은 조형미를 갖춘 자연석, 민속품, 항아리류, 조록나무 고사목 뿌리들로 백운철이 40여 년 동안 수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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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제주돌문화공원 총괄기획단장 백운철씨 모습. 40년 동안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모은 20,986점의 유물을 제주도에 기증해 오늘의 제주돌문화공원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
| ⓒ 고순옥 |
1970년대 초 10여 년 동안 모았던 돌과 나무뿌리를 모아 '탐라목물원'을 개원한 후 더 넓은 대지로 옮기면서 '탐라목석원'으로 개칭했다. 1999년, 백운철은 모든 유물을 제주도(당시 북제주군)에 기증하기로 하고 이후부터 제주돌문화공원 민관합동추진기획단의 총괄기획단장을 맡아 공간을 조성했다.
백운철의 수집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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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15일,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열린 설문대할망제에서 9명의 여성제관들에 의해 헌향, 헌다, 헌화, 고축(告祝), 헌시가 있었고 뒤이어 헌무와 여러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
| ⓒ 고순옥 |
"어머니가 무당에게 물어보니까 산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산신제를 지내라는 거야. 그래서 어머니하고 인부들과 함께 간 곳이 어디냐면 한라산 영실이었어. 그때 오백장군영실 안에서 비닐 텐트를 쳐놓고 일주일 동안 산신 기도를 드렸지. 그런데 달밤에 보는 오백장군의 실루엣이 기가 막힌거야. 그러면서 내가 주워온 돌 중에 사람 얼굴과 비슷한 것들을 오백장군바위 위에다 올려놓는 상상을 했어. 그때부터 오백장군의 영혼을 달래주자는 생각을 했어." (이경진 석사논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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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돌이의 일생' 조형물. 백운철의 탐라목석원이 유명세를 타게 된 건 '갑돌이의 일생' 조형물이 방송을 타면서부터다 |
| ⓒ 고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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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국방문단으로 온 재일교포 처녀가 맘에 들자 양가에도 알리지 않고 평상복만 입고 결혼식을 올린 백운철. 존경하는 선생님이 주례를 봐 3명만 참석한 결혼식이다. 허례허식이 유행하던 시절인데 그의 인품을 알 수있는 현장 사진이다. |
| ⓒ 고순옥 |
백운철의 두 번째 조력자는 아내이다. 고국방문단으로 제주도를 방문한 재일교포 처녀가 맘에 들어 결혼을 약속한 둘은 양가의 허락도 받지 않고 평소 존경하는 홍정표 선생님에게 주례를 부탁하고 평상복을 입은 채 셋만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내는 어려운 형편인 백운철의 수집 취미를 이해해주는 지지자였다.
그린벨트 속에 자리 잡았던 그의 목석원이 몇 차례 헐릴 위기에 닥칠 때도 있었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지원과 호응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백운철은 제주에서 탄생한 유물은 제주에 두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가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경진의 논문집에 따르면 1972년 가을 어느 날 이후락 정보부장, 김현옥 내무부장관이 우연히 목물원에 들렀다. 같은 날 박종규 경호실장은 대통령을 모시고 올 테니 '저것' 하나 싸놓으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백운철은 서귀포로 잠적해버렸다. 박종규가 지목한 것은 '포효'라는 작품으로 그가 몹시 아끼던 작품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의 부탁에도 겁도 없이 서귀포로 잠적해 버린 그가 곤욕을 치렀을 건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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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25호 조록형상물 뿌리 20점 중 하나로 작품 명 '포효'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도 탐냈던 작품이다. |
| ⓒ 고순옥 |
탐라목석원이 유명세를 타면서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연간 입장료 수입이 수억 원에서 10억대까지 오른 어느 날, 백운철은 근육 이완으로 오른손이 마비되자 흑백사진과 토우작업을 시작했다.
백운철은 어느 날 자신의 작품과 유물들을 모아 <영실>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했다. 우연히 목석원을 방문한 프랑스 사진작가 레오나드씨가 보게 되었고 레오나드씨의 주선으로 1988년 10월 파리시에서 주관하는 사진의 달 행사에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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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눈(L'OEIL)'에서 6페이지에 걸쳐 탐라목석원을 특집으로 다뤘다.(위 사진 설명). 2001년에는 프랑스 문화재관리국의 ’기념비적인 것(MONUMENTAL)’ 연간지에서 탐라목석원을 세계의 정원 12곳 중 하나로 선정했다. |
| ⓒ 오문수 |
아름다운 제주는 지금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제주돌문화공원에 가면 제주의 옛 모습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 속에서 문화가 경쟁력임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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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의 제주돌문화공원 모습. 한 사람의 노력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공원이 탄생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
| ⓒ 고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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