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상제 풀릴 날만 기다리는 정비단지.. 서울 5월 분양물량 '0' [분양가상한제에 뒤틀린 시장]
부동산 정책 대수술 필요
둔촌주공 파행 발단은 분상제
힐스테이트문정도 분양 미뤄
원가 반영 못한 분양가가 원인
주변 시세 맞춰 올라 부작용만
■분상제 눈치보기에…서울 공급 절벽
11일 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가 출범한 5월 서울의 주요 정비사업 단지들의 분양 물량은 0으로 집계됐다. 1만2000여가구를 공급하는 최대 재건축사업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와 문정동 힐스테이트e편한세상 문정 등 주요 단지들의 분양 계획이 미뤄지면서다.
이들 단지의 분양 계획이 연기된 배경에는 분상제가 있다. 우선 둔촌주공의 경우 지난달 공사중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현재 가시화된 논란은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공사비 증액 문제지만, 발단은 분양가 산정에 대한 이견으로 일반 분양을 제때 못한 게 꼽힌다. 정부의 고분양가 규제에 따라 원하는 분양가를 받지 못한 조합원들이 당시 조합 집행부를 해임하며 민간택지 분상제 도입 이후로 분양 시기를 미뤘고, 자금 회수가 늦어지며 조합과 시공단과의 갈등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힐스테이트e편한세상 문정도 분상제를 이유로 분양 시기를 미루고 있다. 이 단지는 윤석열 대통령이 분상제 운영의 합리화를 공약하면서 기대감에 택지비 평가를 연기한 상태다. 잠실진주아파트는 조합이 원하는 분양가를 책정받지 못할 경우 후분양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분상제는 아파트 분양가를 기본형 건축비와 택지비에 가산비를 더해 산정, 일정 수준 이하로 책정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분양가를 주변 시세 대비 낮추는 데만 중점을 두고 모호한 산정 방식과 불투명한 심사 방식 등으로 논란을 부추겼다.
이 같은 갈등은 서울 공급 가뭄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집값이 급등한 강남권에서는 분상제로 인한 눈치보기로 분양일정을 미루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지난해 재건축 단지들의 분양 연기로 서울은 역대 최소 수준의 아파트 공급이 현실화됐다. 서울의 올해 공급 예정 물량은 4만7272가구로 예상됐지만, 둔촌주공 등 대규모 단지의 분양일정이 기약없이 미뤄지며 올해도 공급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로또 청약, 고분양가 풍선효과
전문가들은 분상제 산정 기준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로또 청약'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분양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는 서울에서 분상제 첫 적용 단지로 3.3㎡당 5272만9000원의 고분양가가 책정됐지만 전용 46㎡의 경우 2가구 모집에 3747명이 몰려 1873.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아크로리버파크 등 인근 아파트 시세가 3.3㎡당 1억원을 웃돌면서 당첨 시 1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반면, 분상제를 피한 지역들은 시세보다 높은 고분양가에 청약수요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분양한 강북구 '북서울자이폴라리스' 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10억원으로 정당계약 후 18가구의 미계약 물량이 발생했다. 지난 3월 공급된 '한화 포레나 미아'도 전용 84㎡ 기준 주변 시세보다 높은 11억5000만원의 분양가를 책정해 7대 1의 저조한 청약 경쟁률로 미계약이 우려되고 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분상제가 분양가 산정 과정에서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고, 이것이 공급 축소로 이어져 제도의 취지와 완전 어긋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현재 분상제 기준이 유지되면 민간택지에서의 분양 물량 감소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는 "도입 당시엔 인근 시세를 분상제 기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주변 시세로 단기 차액을 확보할 수 있는 로또 분양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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