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전쟁' 금기어, 최대 15년 징역형"

이준목 2022. 4. 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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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이준목 기자]

국제사회와 문명질서가 발전한 21세기에 전면전쟁은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된 줄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합리적인 평화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리며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러시아는 왜 무리한 전쟁을 시작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왜 그토록 처절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전 세계 각 국가들의 동상이몽은 무엇일까. 4월 26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류한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출연하여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전쟁이 발발한 배경을 소개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전쟁의 막이 올랐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하루아침에 끔찍한 생지옥이 펼쳐졌다.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난민으로 전락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남성들은 물론이고 미스 우크라이나 출신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가족과 헤어져 전쟁터로 향했다. 러시아를 비롯하여 전세계에서 평화를 호소하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SNS에 '전쟁' 언급할 경우 최대 15년 징역형"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패널로 출연한 우크라이나 출신 나나는 자신을 제외하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일리야는 "러시아 내에서 '전쟁'이라는 글자가 금기어가 됐다. 최근 새로운 법안이 통과됐는데 방송이나 SNS에 '전쟁'을 언급할 경우 최대 15년 징역형을 살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전쟁 대신 특수군사작전이라고 한다"며 충격적인 러시아의 현실을 전했다.

무기가 정밀하고 정교해진 시대에는 민간인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현대전의 특징이 오히려 민간인 피해가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고립됐다. 미국과 EU는 연대하여 러시아를 국제 금융망에서 퇴출하는 최고 수위의 경제 재재를 단행했다. 러시아의 철군 결의안에는 유엔 회원국의 약 78%에 이르는 141개국이 찬성했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어떤 나라인가. 세계적인 곡창지대를 보유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릴 만큼 강대국들의 표적이 되어왔다. 또한 북쪽과 서쪽으로는 유럽이,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아시아, 남쪽으로는 중동과 만나게 되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리켜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를 '새로운 베를린 장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완충지대로 반드시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포함시켜야 하는 지역으로 꼽혔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러시아 가스관 대부분이 우크라이나를 지나 유럽대륙으로 연결되고 있었기에 우크라이나가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러시아가 받게 될 경제적 타격은 막대했다.

젤렌스키와 푸틴, 두 지도자가 발표한 연설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장차이가 드러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친구이자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은 역사의 이정표와 러시아 제국의 위인을 잊으려고 한다. 적대행위의 모든 책임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지도부는 군대가 다른 나라의 영토를 침략하는 것을 승인했다. 여기는 우리 땅이고 우리 역사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누구와 싸우려고 하는가?"라고 반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특별히 러시아어로 이 연설을 한 것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동서로 갈라진 우크라이나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역사적 뿌리는 모두 키이우 루스에서 시작된다. 동슬라브인이 세운 키이우 루스의 어원은 '노를 젓는 사람, 항해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옥한 토지와 교통의 요지로서의 조건을 갖추며 동로마제국의 선진문물과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유럽에서 손꼽히는 국가로 번영했다.

하지만 키이우 루스는 13세기 몽골제국의 침입으로 멸망했고, 오늘날의 모스크바 지역은 몽골제국의 속령이 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분리되는 시작점이다.

모스크바 공국(1283-1547)은 1480년 우그라강 전투에서 몽골군에 물리치고 240년에 걸친 몽골의 지배에서 독립했다. 이는 훗날 러시아 제국의 기원이 된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14세기 리투아니아-16세기에는 폴란드의 지배를 받으며 고난의 역사를 이어왔다. 남부 우크라이나에서는 농민 전사인 코사크가 중심이 되어 폴란드에 저항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코사크와 모스크바 공국을 이은 루스 라츠국(러시아)은 16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을 맺고 폴란드와 맞서 싸우는 데 합의한다. 러시아는 코사크에 군사원조를 하고 코사크는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맹세를 한 것.

하지만 러시아는 코사크를 배신하고 폴란드와 평화협정을 맺으며 우크라이나 땅을 분배하는 데 합의한다. 페레야슬라프 조약은 이후로도 러시아-우크라이나간의 오랜 역사적 쟁점이 됐다. 러시아 측은 이 당시 우크라이나가 이미 러시아에 합병된 근거라고 주장하고, 우크라이나는 단기적인 군사동맹이자 단순한 보호조약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동서로 갈라진 우크라이나는 이때부터 친서방 성향에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서부, 친러 성향이 강하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동부로 서로 다른 문화권이 형성됐다.

우크라이나에게도 몇 차례 독립의 기회는 있었다. 1917년 10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은 최초의 독립국 우크라이나 국민공화국이 등장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사회주의 정부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연이어 러시아(소련)와 적대관계에 있던 독일 측의 편에 서는 오판을 저지른다. 1차대전 패망 이후 독립이 좌절된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어 다시 7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하게 된다.

여기에 1930년대 우크라이나를 강타한 홀로도모르(우크라이나 대기근)는 반러감정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스탈린의 산업화 정책과 집단농장 체제에 희생된 우크라이나는 추락한 농업 생산성에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엄청난 대기근에 직면했다. UN보고서에 따르면 홀로도모르 당시 희생된 우크라이나인의 숫자를 무려 약 700만에서 1000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푸틴의 '명분'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또한 우크라이나 독립세력 중에도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추구하던 이들은 1940년대 2차대전과 독소전쟁이 시작되면서 나치 독일의 편에 선다. 푸틴도 거론한 스테판 반데라라는 인물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은 나치의 부역자가 되어 독립이라는 명분하에 유대인과 소수민족 학살에 앞장서는 흑역사를 저지른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건 첫 번째 명분도 탈나치화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증)와 네오나치즘의 형태를 가졌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치즘에 800만 명의 생명이 뿌리뽑힌 우리가 어떻게 나치라고 불리겠는가"라고 일축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두 번째 이유는 크름반도와 돈바스 문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은 소련에서 나왔고,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니키타 흐루쇼프 등 구소련의 지도자 3인이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늘려줬고 그대로 오늘날 독립을 만들어줬다며 선대의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당시에는 우크라이나가 같은 소련 체제하의 영토였기 때문에 행정편의상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1991년 소련의 몰락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갈등의 씨앗이 된다.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는 초반에는 영토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크름반도의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2014년 러시아는 군사주둔협정을 파기하고 크름반도를 한 달 만에 병합한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푸틴과 러시아는 크름반도가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온 귀환이라고 주장했다. 푸틴은 2022년 3월 열린 크름반도 병합 8주년 기념행사에서 "고통과 대량학살로부터 사람들을 구했다"며 침략을 정당화했다. 크름반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극우민족주의자들의 테러로부터 러시아인을 구한 전쟁이라는 것.

돈바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접경 지대이며 우크라이나의 최대 광공업 지역이다. 2014년부터 돈바스에서 친러 독립세력이 등장하며 양국의 최대 분쟁지역이 됐다. 레닌 정권은 우크라이나의 자치와 토착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그 뒤를 이은 스탈린은 우크라이나를 소련 산업의 핵심지역으로 육성하려 했기에 자율성을 축소했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약 200만에 가까운 러시아인을 이주시켰다.

자연히 돈바스는 친러성향이 강한 지역이 되었지만,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쇠락의 길로 빠졌고 러시아계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돈바스의 독립세력은 러시아의 지원 아래 돈바스 내전을 일으켰다. 2014년에는 돈바스 상공을 지나던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친러 반군에게 격추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는 2022년 돈바스 지역에 수립된 두 개의 자치 정부(도네스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에게 독립을 승인했다. 각 자치 정부와 러시아 간 우호조약 체결로 사실상 병합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기가 침묵하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때 승리한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마지막 이유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유럽연합(EU)과의 대립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EU에 가입하는 것을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나토는 냉전시대 미국 중심의 서방진영이 소련의 위협에 맞서 서유럽 국가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동맹으로 출발했다. 나토 헌장 5조에 따르면 한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다른 회원국 전체가 공동방어에 나선다는 규정이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90년 소련은 미국과의 조약에서 나토의 동진 금지를 약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토는 베를린 장벽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 전 국가를 상대로 한 동진금지는 러시아의 해석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이후로도 동진을 계속했다. 완충지대인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한다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나토와 국경을 맞게되어 수도 모스크바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

푸틴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와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이다, 전쟁이 나면 나토 동맹국들이 대응할 시간도 없을 것"이라며 위험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한때 세계 5위의 군사력에 핵무기까지 보유한 강대국이었다. 심지어 소련의 핵무기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 경제난과 부정부패에 허덕이던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체결하고 통하여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핵무기를 제거하는 조건으로 미-영-러부터 독립과 주권-국경선을 존중하고 핵무기를 비롯한 무력사용을 자제하는 데 합의한다.

우크라이나는 이 각서로 핵무기 폐기 비용 전액을 보상받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인 나나는 "당시에도 이 각서 체결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핵무기를 넘기면 군사력이 약해지니까. 핵무기가 아직 있었으면 우크라이나가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으로 조약은 휴지조각이 됐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서두르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 페레야슬라프 조약의 후유증으로 동부와 서부는 친러와 친서방 세력으로 양분되어 정치적 갈등에 휩싸인다.

우크라이나는 친러와 친서방 성향의 정권이 번갈아가며 집권했다. 2013년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EU 가입을 보류하면서 천서방 성향의 국민들이 반발하는 '유로마이단'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게 되고 야누코비치는 퇴진한다.

긴 갈등에 지친 우크라이나는 분쟁 종식을 약속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6대 대통령으로 선택한다. 배우이자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보유한 젤렌스키는 본인이 대통령 역으로 출연하여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제목을 본딴 '국민의 종'을 창단하고 3년 뒤에 대선에 출마하여 압도적인 지지로 실제 대통령까지 당선되는 영화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젤렌스키는 취임 연설에서 "저는 평생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저의 사명이었다. 이제 저의 사명은 모든 국민들이 눈물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약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반대하던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추진했고, 2021년에는 나토와 합동 군사훈련까지 감행하며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됐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주권 국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3월 1일 유럽연합 특별회의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화상으로 등장하여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증명해달라, 그러면 삶은 죽음을 이기고 빛은 어둠을 이길 것"이라는 명연설을 남겼다. 현장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한편 같은날 UN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는 러시아 장관의 연설에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이 집단으로 퇴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는 극명한 온도차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국제 사회는 전쟁을 주시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휴전 회담을 진행중이지만, 러시아의 무리한 요구조건에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전 세계는 이 전쟁의 끝은 어떻게 될지, 이 전쟁으로 세계의 질서는 앞으로 어떻게 바뀌게될지 신중하게 구시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전쟁을 계속 주시하고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아직은 끝은 알 수 없는 전쟁이지만, 국경없이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무기가 침묵하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때 승리한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격언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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