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왕자' 조명우와 '당구요정' 용현지 "사랑의 3쿠션"
“제 큐는 ‘띠오리 명우’에요. (조)명우 오빠 이름을 따 제작된 큐(가격 330만원)인데, 오빠가 자기가 쓰던 걸 물려줬어요.”
용현지(21·TS샴푸)와 조명우(24·실크로드시앤티)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사랑스러운 당구선수 커플을 5일 서울 길동의 DS빌리어즈클럽에서 만났다.
조명우는 10살 때 예능 스타킹에 출연한 ‘당구 신동’으로 유명하다. 시니어 3년 차였던 2019년 국내 3쿠션 9개 전국대회 중 5개 우승을 차지해 역대 최연소 국내 랭킹 1위(21세8개월)에 올랐다. 여자프로당구(LPBA) 선수 용현지는 지난해 9월 TS샴푸 LPBA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해 ‘당구 요정’이라 불린다.
둘 다 큐를 잡으면 눈빛이 매섭지만, 큐를 내려놓으면 20대 풋풋한 커플이다. 조명우는 “둘이 같이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둘은 언제부터 사귄걸까. 용현지가 “오빠 오늘이 며칠째야?”라고 묻자, 조명우는 당당하게 “1022일. 확인해 봐”라고 했다. 2019년 6월19일 조명우가 어릴적부터 알고 지낸 용현지에게 마음을 표시했고 용현지가 수락했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카페를 가지만 당구선수 커플답게 3쿠션 데이트도 한다. 용현지는 30점, 조명우는 50점을 놓는다. 용현지가 “최근 3판 중 제가 2번 이겼다”고 하자, 조명우는 “그 전에 60판 정도는 제가 이겼다”고 했다.
서로 애칭으로 조명우는 ‘공주, 이쁜이’ 용현지는 ‘꿀꿀이, 댕댕이’라고 부른다. 용현지는 “울 오빠 매력이 진짜 많다. 제 이상형이 곰돌이처럼 귀엽고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조명우는 “전 그냥 현지 자체가 다 좋아요”라며 웃었다.
용현지는 외향적이고, 조명우는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 시청하는걸 좋아한다. 용현지는 “요즘 짬뽕이 돼 서로 성향이 반대가 됐다. 1000일 넘게 만나다 보니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거의 안 다툰다”고 했다.
용현지는 조명우의 당구 실력에도 반했다. 용현지는 “오빠는 내게 우상 같은 존재다. 근데 당구를 가르쳐 줄 때 따끔하게 말한다.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조명우는 “평소에는 ‘현지야 이거 할래?’라고 묻지만, 당구에서만큼은 ‘그런 습관을 가지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얘기해준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쓴소리도 안 한다. 현지가 2년 전과 비교해 멘탈적인 부분, 시합에 임하는 자세 등이 진짜 많이 늘었다”고 했다.
국내 랭킹 1위였던 조명우는 2020년 8월 영장을 받고 육군 11사단에 입대했다. ‘곰신(고무신의 줄인말)’ 용현지가 군대 간 남친을 기다려줬다. 조명우는 “요즘 훈련소에서는 인터넷 편지를 쓰면 인쇄해 훈련병들에게 준다. 현지가 많이 써줘서 내가 제일 많이 받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자대 면회가 불가능했다. 막판에 풀려 면회 신청을 했는데 현지가 코로나에 걸려 못 왔다”고 했다.
작년 9월 추석 연휴 때 용현지가 TS샴푸 LPBA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했다. 용현지는 “오빠가 내무반을 돌며 소리 지르며 응원했다더라”며 웃었다. 조명우는 “TMI(너무 과한 정보) 아니니. 운 좋게 명절이라서 밤 12시까지 연등하는 날이었다. 전우들에게 여자친구를 자랑하며 이기면 PX(부대 마트)에서 냉동식품을 쏘겠다고 했다. 너무 많이 이겨서 돈을 많이 썼지만 그래도 기분 좋았다”고 했다.
용현지 경기 전에 TV에서 조명우가 2019년 우승을 차지한 LG U+컵 하이라이트가 나왔다. 당시 조명우는 토브욘 브롬달(스웨덴) 등 ‘당구의 신’들을 도장깨기하며 우승했다. 부대원들 사이에서 ‘알고 보니 대단한 당구 선수였구나’라고 소문 났다고 한다.
당구 특기병은 없기에 조명우는 일반 보병으로 복무했다. 부대에 탁구대만 있었고 당구대는 없었다. 당구처럼 조준해야 하는 사격에서는 만발을 쐈다.
조명우는 “코로나 여파로 외출과 외박이 잘 안됐다. 입대 전에는 하루에 15시간씩 당구를 쳤는데, 복무 기간인 1년6개월 동안 당구를 아예 못쳤다”고 했다. 용현지는 “선수에게 1년6개월 공백은 엄청 크다. 그런데 걱정 안해요. 조명우여서. 오빠가 얼마나 피땀 흘려가며 연습 했는지 알고 있다. 물론 제대하자마자 잠시 감이 떨어질 순 있어도, 예전의 조명우는 안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조명우는 “더더더. 칭찬 좀 더 해봐”라며 웃었다.
지난 2월 제대한 조명우는 터키 앙카라 월드컵 32강에서 탈락했고, 이달 미국 라스베이거스 월드컵 16강에서 다니엘 산체스(스페인)와 37대37로 맞서다가 아깝게 졌다. 용현지는 “시차가 16시간 나서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오빠 경기를 챙겨봤다. 오빠 마음이 얼마나 속상할지 알아서 수고했다고만 말해줬다”고 했다. 조명우는 “당구선수끼리 만나니 우승했을 때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잘 이해해 주는 게 좋다”고 했다.
지난 시즌 프로로 전향한 용현지는 룰이 다른데도 빠르게 적응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재능을 인정 받아 팀리그 드래프트에서 TS샴푸에 지명됐다. 뱅크샷을 잘치는 용현지에게 팬들은 ‘뱅신(뱅크의 신)’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커플답게 당구 스타일도 비슷하다. 용현지는 “오빠 당구는 시원시원하게 속이 뻥 뚫린다. ‘야 이게 당구지’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우명(어차피 우승은 명우)’”라고 했다. 조명우도 “현지도 나처럼 닥공(닥치고 공격) 스타일이다. 시원시원하게 공격하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대신 언젠가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당구황제’ 브롬달은 “당구왕자 조명우는 머지 않아 세계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인간줄자’ 딕 야스퍼스(네덜란드)는 “20대 초반에 이런 기술과 재능을 가진 친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용현지도 “주변에서 ‘명우 오빠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래요”라고 했다.
조명우는 세계주니어선수권을 3차례 제패했지만, 성인 월드컵에서 우승 없이 3위만 4차례 했다. 조명우는 “예전에는 목표를 세계랭킹 1위로 잡았는데, 매 순간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로 바꿨다. 물론 항상 월드컵 우승은 꿈꾼다”고 했다. 용현지도 “나도 5월말쯤 새 시즌을 시작한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하겠다”고 했다.
조명우와 용현지는 “먼 미래 서로 그리는 그림과 꿈이 같다. 이 마음이 그대로 간다면 먼훗날 마지막 종착지를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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