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디그라운드(93)] 아시안보이즈크라잉, '듣기 좋은' 그 이상의 음악

박정선 2022. 3. 2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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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 'Embraces 23' 3월 17일 발매

박준태(보컬·작곡), 권오윤(기타), 김익순(기타), 박도윤(드러머)으로 구성된 아시안보이즈크라잉(Asian Boys, Crying)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함께 유학 생활을 하던 박준태와 권오윤, 김익순이 처음 결성한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들은 ‘진실성과 목적을 담은 음악’을 쫓는 밴드다.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코멘터리를 담은 음반을 만드는 것이 다음의 목표이기도 하다. “전인권 선생님께 피처링을 받는 게 목표”라며 롤모델로 들국화를 꼽은 것 역시 이런 자신들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들국화의 음악이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초월한 그 시대 청년들의 고민, 문화, 애환이 녹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시안보이즈크라잉 제공

-밴드 멤버 구성을 어떻게 한 건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일단 아시안보이즈크라잉(이하 ‘아보크’)의 모체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결성 되었어요. 저(준태)와 유온이, 익숙이는 온이저(준태)랑 오윤이랑 익순이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함께 유학 생활을 했었어요. 그 학교를 생각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 같은 이미지가 크시겠지만, 저희는 학업과 꽤 거리가 있던, 그리고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던, 이상한 친구들 취급받던 세 명이였죠. 하하. 그래서 서로 친했어요. 아, 그래도 익순이는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웃음).


어쨌든 세 명이서 매일 오윤이 방에 모여서 술 먹고, 기타치고, 음악 듣고, 곡 쓰는 게 일이었죠. 그러다가 옥스포드 지역에서 하는 밴드 ‘gig night’이라는 경연대회 비슷한 것이 있어서 충동적으로 참여를 결심했어요. 연습도 못했고, 저희보다 경력도 연주력도 훨씬 좋은 밴드들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작곡으로 승부하고자 세트 리스트를 자작곡으로 짰어요. 그때는 지금 발매한 곡들 보다 훨씬 시끄럽고 실험적인 노이즈락/슈게이즈 풍의 음악을 했었어요. 저희만의 감성 덕분이었는지 공연과 우리의 곡들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조금 더 진지하게 같이 밴드를 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후 한국에 귀국한 뒤 익순이와 오윤이와 고등학교 동창인 세호가 베이스로, 그리고 세호가 자기랑 같이 중학교 밴드부를 하던 드럼 잘 치는 도윤이를 소개시켜줘서 현재 라인업이 되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멤버 변화도 있었죠. 이세호 씨가 팀에서 탈퇴했다고 나오던데요.


군 입대 때문에 활동하는 멤버가 달라졌어요. 작년에 기타리스트 오윤이가 입대를 했고 오윤이가 전역할 때쯤 다른 멤버가 입대를 하는 바람에 활동을 못해서 멤버 변화가 있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류상 5인조가 유지 되고 있어요. 다만 프로필 사진을 4인 활동하는 이미지로 해 놓아서 규정상 네이버 인물사전에서는 세호가 탈퇴멤버로 처리되더라고요. 아직은 정식 탈퇴라기보다는 휴직에 가깝습니다.


-팀명 ‘아시안 보이즈 크라잉’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가 처음 결성된 게 영국에서 다보니까, 농담 삼아 동양인 3명이서 우울한 음악을 하니까 ‘우울한 아시안 보이즈’라고 밴드를 소개한데서 시작했어요. 영국 밴드들 사이에 ‘우울한 동양인 사내들’이란 이름도, 이미지도 눈에 띄잖아요. 실제로 3명 다 그 당시 우울하기도 했었고요(웃음). 처음에는 진지하게 유지할 이름보다는 농담 느낌이 짙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밀고나가다 보니까 점점 애정이 생겼어요. 지금 와서는 만족해요. 저희를 알맞게 묘사하잖아요. 동양인이고, 남자들이고, 우울하죠.


여기서 아마도 바뀔 수 있는 부분은 마지막 항목 밖에는 없죠. 그래서 점차 ‘우울함’보다는 ‘울부짖음’이라는 의미로 나아갈 것 같아요. 나중에 내면적 성장을 거듭하면 ‘Asian Boys, Moderately Satisfied with things as they are’(아시안 보이즈, 적당히 모든 사물에 만족감을 느끼는)로 이름을 바꿔야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 상태까지 가게 되면 음악적으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해체 하지 않을까요? 하하.


-지난 2월, 밴드로서 첫 곡이 나왔어요. 이 첫 곡은 멤버들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박준태: 시티팝이란 음악 자체가 저희가 원래 하던 음악과는 괴리가 컸기 때문에 만들면서 음악적으로도, 프로듀싱 쪽으로도 많은 배움이 컸던 것 같아요. 처음 녹음할 때는 참 막막했는데 곡을 만들면서 여려가지 원하는 사운드들을 담으려고 실험을 하면서 프로듀싱 기법들을 많이 배운 거 같아요. 그 후 ‘embraces23’ 녹음할 때도 그때 쌓은 노하우가 도움이 많이 됐고요.


ⓒ아시안보이즈크라잉 제공

-신보 ‘Embraces 23’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박준태: 음, 어릴 때 쓴 곡이에요. 정확한 시점이 기억나지는 않은데 아마 만 19살 정도 였던 것 같아요. ‘사랑 노래를 쓰는 과정’을 노래 한 곡이죠. 제가 락 음악이랑 펑크 좋아하던 시절 처음으로 ‘사랑노래’를 써보면서 동시에 느낀 어려움을 담았었던 것 같아요. 숫자 23은 제가 ‘23살에 다시 부르는 Embraces라는 곡’이라는 의미고요.


-어릴 때 썼던 노래라면, 시간이 흐름에 따른 감정 변화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 곡을 다시 꺼내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많이 달라졌죠. 하고자하는 음악도, 전하고자 하는 감성도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쓸 수 없는 그런 어리석은, 순진한 시절 가사들이 가득해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느끼는 감정들과는 거리가 좀 있게 되어버려서 지금 발매하는 게 맞나라고 잠깐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지금 전하고 싶은 감정과는 논외로,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발매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래서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지금 녹음해서 내버렸던 거 같아요. 앞으로 시간은 더 흐를 거잖아요. 그럼 이 노래를 부르던 감성과는 더 멀어지지 않을까요? 아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흐르기 전에 얼른 녹음해서 기록해 놓고 싶었어요.


-‘사랑’에 대한 노래라고 하셨는데. 지금의 아시안 보이즈 크라잉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도 궁금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직 저희가 20대 중반이라, 사랑이라는 것에 확고한 ‘정의’를 내리기에는 어려운거 같아요.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미 10대 후반의 ‘Embraces’에서 노래한 ‘사랑’과 지금 생각하는 사랑은 약간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지금 와서 보면 ‘Embraces’에 노래한 사랑은 느낀 ‘첫눈에 반해서 확 오는 이끌림과 설렘’이라는 감정을 노래한 거 같아요.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낭만화 할 수 있었던 사랑이죠. 그래서 제대로 된 사랑이 무언지 모르는 시절에 그 순진무구함이 담겨있죠. 그 당시에는 그게 ‘진실된 사랑’의 정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순수함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지금에서야 보면 그때 감정이 ‘진실된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화학적인 작용으로써의 끌림 이상의 영적인(spritutal) 한 애정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식을 위해 인생을 바치신 어머니,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회운동가 또는 군인, 수십 년간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가정,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 말하던 윤동주 시인. 진정한 사랑은 이런 인류애적 사랑과 아까 말한 동물적인 이끌림, 설렘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중점을 둘지는 개인의 판단과 시행착오죠.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사랑이 어디에 위치할지는 계속 찾아 나가야 할 부분인 거 같아요.


다만 본능적인, 자극적인 사랑이 뭐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대 시장에서도, 현 사회에서도 약간의 레드오션이라고 느껴요. 적어도 저희들의 제한된 시점에서는요. 힙합이나, 케이팝, 훅업컬쳐, 데이팅앱 등등 현재 저희 주변에서 유행하는 문화를 봤을 때, 조금 더 가벼운 사랑이 현재는 주류 문화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이 느껴져요. 그와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랑은 살짝 진부해지는 거 같아요. 저희는 조금 더 영적인 사랑 쪽을 노래하고 싶은 거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계속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예술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도요.


-어릴 때 쓴 노래를 다시 작업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부분에 가장 집중하셨나요?


어렸을 때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 집중했다면, 이번에 녹음하면서는 메타 코멘테리적인 부분에 대해 좀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녹음했으면 가사 하나 하나가 더 공감이 됐겠죠. 사실 지금 와서는 그다지 공감 가는 가사는 아니에요. 그런데 그 감정을 다시 표현한 다기 보다는, 한발 떨어져서 거기에 대한 ‘코멘터리’로 해석하려 했던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는 사운드에 집중을 많이 했어요. 너무 고음역대의 기타보다는 저희가 평소 좋아하던 퍼지(fuzzy)한 중저음역대의 기타사운드를 발랄한 팝비트에 녹이는 부분에 대해서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만족스러운 기타 톤을 녹음해낸 거 같아요.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연주력 부분이죠. 저희가 연주력이 전공자들이나 전문 세션만큼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에 있는 느낌을 손가락으로 표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좋은 스튜디오 가서 녹음하면, 전문 연주인들은 한 프로에 4~5곡씩 하시는데 저희는 한 프로당 한 악기 녹음하기도 벅차죠.


그리고 원하는 사운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요새 한국 대중음악 특유의 고음역대가 돋보이는 믹스를 제가 개인적으로 안 좋아해서, 거기에 대한 차별성을 두려고 많이 녹음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러려면 실험을 계속 해야 하니까 또 돈이 많이 들죠. 그래서 그 부분이 어려웠던 거 같아요. 음악적인 바탕이 있으면 좀 더 수월했겠죠. 저희는 그런 게 아니라, 막무가내로 페달과 장비의 버튼들을 막 눌러가면서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냐 실험해가는 방식이었어요. 그래도 현재 시행착오가 앞으로는 조금 더 연주력과, 프로듀싱 노하우의 밑거름이 되어서 미래에는 조금 더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시안보이즈크라잉 제공

-멤버들과 곡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도 궁금합니다. 하나의 곡이 탄생하기까지 멤버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요.


박준태: 일단 지금까지는 발매된 곡들은 제가 곡의 멜로디와 코드진행 등 틀을 쓰고 가져가면, 거기 위에다 멤버들이 각자의 인풋을 넣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 앨범은 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곡을 다 쓰고 편곡까지 한 곡들이 많아서, 멤버들의 매력이 전면에 나오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 저희 5명이 엄청 다른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다음 앨범에서는 그 부분을 좀 더 보여드리고 싶어요.


-팀명, 영어 가사 등 국내를 넘어서 해외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자 하는 의도일까요?


딱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웃음). 저는 곡 쓸 때 순간의 영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바이링구얼(이중언어)이다 보니까 어떨 때는 한글로 가사가 떠오르고 어떨 때는 영어로 가사가 떠올라요. 어떤 곡들은 버스에서 영어가 나왔다가 갑자기 후렴구에서 한국말이 되었다가 그래요. 곡에 따라, 그리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에 따라 떠오르는 표현들이 다르듯 그 표현들이 떠오르는 언어도 다른 것 같아요. 일단 그리고 그 가사가 떠오르면 굳이 번역하는 작업을 지양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피아노 연주곡이 떠오를 수도 있잖아요. 피아노로 곡을 쓴 뒤, 곡을 전체를 다시 기타든, 실로폰이든, 색소폰이든 그 어떤 다른 악기로 편곡을 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피아노로 악상이 떠올랐다면, 최종 노래도 피아노 중심의 곡이 될 확률이 크다 생각해요. 처음 떠오른 청각적 이미지가 피아노 소리로 그린 소리라면, 그것을 굳이 다른 악기로 번역해야할 이유가 보통은 없죠.


제 입장에서는 언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영어로 떠오른 기사들을 굳이 한글로 고칠 이유가 없었어요. 그 반대로 한글로 쓴 가사는 굳이 영어로 고치지도 않고요. 번역을 하면 미세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원래의 감정 뉘앙스를 잃는 느낌이 있어요. 전 그게 싫어요. 쓴 순간의 영감을 웬만해서는 보존하고 싶거든요.


이번 앨범은 제가 영국에 유학생활 할 때 기숙사 방에서 쓴 곡 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영어로 된 가사가 많게 된 것 같아요. 다음 앨범은 한글 가사의 곡들이 아마 조금 더 많아질 거예요! 하지만 논외로 영어 가사와 이름 덕분에 해외 활동의 기회가 커진다면, 저희 입장에서 싫을 것은 없죠(웃음).


-이번 앨범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도도 궁금해요.


박준태: 솔직히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이번 앨범을 우리의 최고 걸작(magnum opus)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희 자신도 포함해서요. 현재 준비하고 있는 곡들조차 이번에 발매한 곡들이랑은 음악적 스타일도, 전하고 싶은 주제의식도 크게 달라졌죠. 솔직하게 평가하자면 이번 앨범은 좀 거칠고, 모가 나있죠. 다만 역설적이게도 미숙한 첫 앨범이란 부분을 담았다는 게 저 나름대로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연주도, 프로듀싱도, 뮤비도 조금 더 숙련된 모습이겠죠. 하지만 지금 이 어리고 요동치는 느낌을 담을 수는 없을 거예요. 미숙함과 처음이라는 것 에서 오는 특유의 에너지, 그리고 미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미숙하고 요동치는 시기의 저희들을 잘 담아낸 것 같아요.


예술이란 것이 참 재미있는 게, 수직적 계급이 없다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더 잘한다고’ 더 좋은 음악이 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앞으로 우리의 목소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겠지만, 그 대가로 이런 습작 느낌의 곡들은 앞으로 다시는 못 만들 것 같거든요.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 미숙한 부분을 기록해 놓았다는 게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워요. 그리고 그래도 듣기 싫은 미숙함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매력적인 미숙함(또는 그 줄타기)을 담는데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절히 만족스럽습니다.


권오윤: 뒤돌아 볼 시간에 앞으로 나가야죠! 만족도는 죽기 직전에 평가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레트로함과 구성에서의 세련됨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레트로함, 빈티지함에 대한 동경심은 우리 세대에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90년대에는 전자음악, 디지털, 기술발전에 동경심과 기대감이 CG기술을 도입한 뮤비들이 많았잖아요. 우리 그룹은 디지털 시대에 나고 자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기술발전, 컴퓨터, 인터넷 다 익숙하죠. 그래서 오히려 필름, LP, 아날로그 악기가 주는 따듯함. 경험 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동경심이 있는 거 같아요. 아마 그 시절 불편함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낭만화하기 쉬운 거겠죠.


‘embraces 23’같은 노래 자체가 클리셰와 사랑에 대한 낭만화, 이런 주제를 가진 노래잖아요. 그래서 90년대/00년대 초반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느낌을 오마주하고 싶었어요. ‘500일의 썸머’ ‘스파이더맨’ 등 이미 대중문화에 깊게 스며들어 클리셰가 돼버린 영화들이요. 이런 영화들이 주는 특유의 따뜻하고, 심플하고, 노스탈직한 느낌이 있어요. 그런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새로움이라거나 현대성, 일부러 카세트테이프, LP, 4:3 화면비, 거친 필름 텍스쳐 등을 차용했죠. 과거를 오마주한다고해도, ‘2022년 서울시’라는 배경에서 만들어지다 되니까, 자연스러운 현대적인 재해석이 발생할거라 판단했어요. 여기서 말씀하신 ‘세련됨’이라는 요소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재해석에 따라오는 부가적 효과인거죠.


-뮤직비디오 촬영 중 재미있는 일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박준태: 차들이랑 인파가 많은 한남동 거리에서 춤씬을 찍었어요. 제가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는 장면이이였는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거기다 워낙 번화한 지역이다 보니까 차와 인파들이 순간순간 튀어나와서 쓸 만한 테이크를 따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차 없을 때 춤추고 커트하고 차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죠. 원래는 우사단길 위에서 로케이션을 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서 로케 이동을 못했죠. 그래서 즉흥적으로 그냥 한남동 주변에서 모든 로케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예쁘고 통일성 있는 이미지들을 많이 딴 거 같아요. 전화위복이죠(웃음)


박도윤: 저녁에 드럼을 치는 라이브 씬도 어려웠어요. 촬영 장소가 주거지역이다 보니까, 드럼 소리가 너무 커서 경찰들이 나타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신발 고무 밑창을 뜯어서 드럼스틱 밑에 테이프로 붙였어요. 그래서 뮤비에 드럼 치는 샷들을 자세히 보시면 드럼스틱 밑에 고무패드를 보실 수 있어요. 그래도 촬영팀분들이 고생해주셔서 결국은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 같아서 자랑스럽습니다. 뮤직비디오 연출과 현장 노하우도 많이 쌓은 거 같고요.


ⓒ아시안보이즈크라잉 제공

-아시안 보이즈 크라잉의 음악적 방향성도 궁금해요.


박준태: 음악적으로는 멤버들 색깔이 정말 달라요. 이 매력을 유기적으로 담고 싶어요. 익순이가 지향하는 재즈적인 화성과 너저분한 기타톤, 오윤이의 영적인 블루즈, 세호의 멜로디컬한 전자 음악, 도윤이의 깔끔하지만 파워풀한 드럼, 그리고 제 서정적 스토리텔링과 팝 음악에 대한 관심 모두 녹여 내고 싶어요.


내용적으로는 진실성과 목적을 담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다만 다음 앨범은 박준태 개인적인 서사보다는 시점을 조금 넓혀서, 저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코멘테리를 담은 음반을 하고 싶어요. 들국화 음반을 보면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초월한 그 시대 청년들의 고민, 문화, 애환이 녹아 있잖아요. 물론 원한다고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 만요. 그래도 노력해 보려고요!


-현재 아시안 보이즈 크라잉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요?


박준태: 저희의 메시지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큰 거 같아요. 저는 존재 가치가 그저 ‘듣기 좋은’ 음악보다는 무언가를 선언하는 바가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외부적인 억압도, 경제적인 어려움도 비교적 덜 느낀 중산층 자제들이 어떻게 설득력 있는 선언을 하느냐…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커요.


-밴드로서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박준태: 자본주의…그리고 시간에 대한 시적 부정? 하하. 거창하죠? 다음 앨범의 주제의식이에요. 장황한 설명은 다음 앨범 성공적으로 발매하게 되면 그때 하겠습니다. 하하. 너무 허황되게 설명했다가 못 만들면 부끄럽잖아요(웃음).


-아시안 보이즈 크라잉의 롤모델도 있나요?


윤동주 시인, 밥딜런, 그리고 들국화요. 아 그리고 브루스 스프링스틴… 설득력 있게 자기 시대의 한 면을 담은 아티스트들을 좋아해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있나요?


박준태: 일단 다음 앨범을 만족할 정도로 만들어서 내년 상반기전까지 발매 하고 싶어요. 전 개인적으로 정말 만족할 만한 앨범을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포장까지 정말 마음에 들게 만들고 싶습니다. 뮤직비디오도 2~3편정도 더 연출하고 싶고요. 그러려면 일도 해서 돈도 좀 벌어놔야 하고, 가사도 열심히 완성 지어야겠죠. 이미 몇 곡들은 녹음을 하고 있어요.


-밴드의 최종 목표가 있나요?


최종 목표는 다음 앨범 완성이에요. 저희가 가진 이야기와 이번에 쓴 곡들에 대해 자신이 있거든요. 이제 녹음과 프로듀싱만 잘하면 돼요. 곡이 가지고있는 잠재력이 전부 표현될수있도록 잘 만들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앨범 녹음할 때 전인권 선생님에게 한 곡 피처링을 받는 게 목표입니다(웃음) 전인권 형님! 혹시나 읽으시면 피처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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