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속에 박힌 영롱한 꽃.. 무등산, 지금 가야 합니다

임영열 2022. 3. 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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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복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노란 꽃, 복수초

[임영열 기자]

 무등산 중머리재 남사면에 봄의 전령 복수초가 만개했다
ⓒ 임영열
 
완연해진 봄기운 탓일까. 아니면 48.56% vs. 47.83%라는 초박빙으로 끝난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허탈감 때문일까. 지난 3월 9일 선거가 끝나고 첫 주말을 맞은 3월 12일 무등산 버스 종점은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인파들로 붐볐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스무 번째 대통령이 돼보겠다는 사람들의 선거운동으로 왁자지껄했지만 언제 그랬나는 듯 풍경은 다시 일상으로 확 바뀌었다. 아직은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거의 없는 거 같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광주 시민들이 아닐까 싶다.
 
 광주 사람들에게 무등은 '자연'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훌쩍 넘어선다
ⓒ 임영열
 
광주와 무등산. 무등산과 광주. 모태신앙처럼 서로 얽혀 있다. 광주 사람들에게 무등은 '자연'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훌쩍 넘어선다. 광주의 모든 역사·문화·예술과 함께 사랑과 우정, 때로는 위로가 담겨있는 광주의 진산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광주의 어머니' 같은 존재다.

201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더 나아가 지질학적 가치까지 인정받아 2018년에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받은 호남의 명산이다.

일찍이 정상부 입석대와 서석대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규봉암과 광석대는 국가 명승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 외에도 산기슭마다 문화유산들이 즐비하다.
 
 무등산 산속에 자리한 ‘신림교회 오방 수련원’ 광주 최초의 장로이자 독립운동가 최흥종 목사가 설립한 교회다
ⓒ 임영열
 
무등산 숲 속에 자리한 교회

얼마 전 방송 뉴스에서 무등산에 복수초가 피었네, 큰산개구리가 알을 낳았네 하며 봄소식을 전했지만 도심에서는 실감하지 못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무등산으로 봄 마중을 나간다.

무등산에는 발자국 수만큼이나 많은 길들이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있다. 오늘은 무등산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이 걷는 코스를 택했다. 증심사를 시작으로 해서 당산나무 쉼터 ▶ 중머리재 ▶ 서인봉 ▶ 약사사 네거리 ▶ 약사사 ▶ 버스종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그 길가에 '복과 장수'를 부르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가 만개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증심사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계곡이 몸을 풀고 해산을 했지만 겨울 가뭄이 심했던 터라 아기 울음소리가 시원찮다. 졸졸 흐르는 계곡 주변으로는 파릇한 풀포기들이 돋아 나오고 시커멓게 죽어 있는 것 같은 나무들도 거세게 물을 뿜어 올리고 있다.
 
 무등산 복수초 보러 가는 길, 시커멓게 죽어 있는 것 같은 나무들도 거세게 물을 뿜어 올리고 있다
ⓒ 임영열
 
무등산의 대표 사찰 증심사 일주문을 지나 약 20여 분을 오르자 십자가를 단 교회 같은 조그만 건물과 조우한다. 산속에 웬 교회인가 싶어서 자세히 봤더니 '신림교회 오방 수련원'이라 적혀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광주 최초의 장로이며 독립운동가였던 오방 최흥종 목사가 이곳 신림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1950년 4월에 설립한 교회라 한다. 무등산 숲 속에 자리한 교회라니. 다소 생소하고 이색적인 느낌이 든다.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지 않나 싶다.

'복과 장수'를 부르는 봄의 전령, 복수초

교회를 지나고 대숲 사이로 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서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쉬고 있다. 당산나무 쉼터다. 이 나무는 예전 이곳 신림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던 당산나무로 수령이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고목나무다.
   
 당산나무 쉼터. 2007년 5월 19일 故 노무현 대통령도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무등산에 오르면서 산행 중인 시민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며 쉬었던 곳이다
ⓒ 임영열
   
예전에는 나무 주변으로 보리밥집이 있어 이곳을 지나던 길손들이 시장기를 달래며 쉬어가던 곳이다. 2007년 5월 19일 고 노무현 대통령도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무등산에 오르면서 산행 중인 시민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며 쉬었던 곳이다.

나그네들도 한 잔의 막걸리로 원기를 충전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노란 멍석이 깔리고 잘 다듬어진 데크길을 성큼성큼 지난다.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 한 마리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후다닥 꽁무니를 뺀다. 이제 곧 숲 속은 땅으로부터 시작된 봄으로 충만해질 것이고 변태한 곤충들로 약동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2월 중순부터 방송에서는 무등산의 봄꽃 소식을 타전해 왔지만, 경험칙 상 무등산의 대표 봄꽃 복수초는 3월 중순이 되어야 만개하기 때문이다.
 
 나 홀로
ⓒ 임영열
   
 둘이서
ⓒ 임영열
   
 때론 셋이서
ⓒ 임영열
 
이변이 없는 한 아마도 중머리재 남쪽 사면에는 지금쯤 노오란 복수초들이 갈색 낙엽들과 아름다운 보색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가벼운 근심과 설렘으로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어여 가자, 어여 가.
약 30여 분을 더 오르고 민초들의 소박한 소원이 담긴 돌탑을 지나 무등산의 중심 허브 중머리재 아래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변은 없었다. 산허리는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있다. 갈색 낙엽 속에 무수히 박혀있는 영롱한 노란 점들.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군락을 이루며 사는 모습이 우리네 민초들을 닮았다
ⓒ 임영열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의 강변에서 바라봤던 빛나는 별들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엉뚱한 상상이다. 나 홀로, 둘이서, 혹은 셋이서 떼를 이루고 있다. 꿀벌들은 웅웅 거리며 꽃술 사이를 부지런히 헤집고 다닌다.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군락을 이루며 사는 모습이 우리네 민초들을 닮았다.
복수초는 미나리 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 해살이 풀이다. 이른 봄 눈과 얼음 속에서 꽃을 피운다 하여 '얼음새 꽃'이라고도 부른다. 겨우내 언 땅 껍질을 뚫고 나오는 강인한 생명력 지니고 '복과 장수'를 가져다준다 하여 복수초(福壽草)라 불린다. 오전에 꽃을 피우고 오후에 꽃잎을 오므리는 특징이 있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복과 장수를 기원하며
ⓒ 임영열
 
선거에 졌다고 억울해하지 말자. 0.73%p의 패배에 아쉬워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복수초가 있다. 권력은 멀리 있지만 '복과 장수'를 기원해주는 복수초는 가까이 있다.
그래도 우울하다면 무등산으로 가볼 일이다. 이달 하순까지는 무수히 많은 노란 별들이 거기에서 빛나고 있을 테니까.
 
 무등산의 중심 허브 중머리재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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