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씨네] '더 배트맨' 어둠속 배트맨, 조커의 그림자..혼돈의 176분

이이슬 2022. 3.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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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틴슨 주연
맷 리브스 감독 메가폰
화려한 스케일·카체이싱 백미
조커 닮은 2년차 히어로
액션보다 서사에 집중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본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총천연색 조명, 저마다 익살스러운 옷을 입고 시끌벅적 모여든 핼러윈 밤거리. 가면 너머 눈두덩이를 검게 칠한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 분)의 음울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옷을 차려입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거리를 순찰하는 배트맨의 모습으로 영화 '더 배트맨'은 문을 연다.

브루스 웨인은 야간 자경단으로 활동하며 2년째 고담시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응징하고 있다.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 그는 아직 슈퍼히어로가 되지도 못한 어중간한 모습이다. 마치 축제 속 혼돈의 거리에 선 모습이 그의 처지와 똑 닮았다. 이는 영웅 '배트맨'이 아닌 인간 브루스 웨인을 들여다보겠다는 감독의 선포이자 안내서 같은 장면이다.

집사 알프레드(앤디 서키스 분)는 브루스와 함께하며 웨인 가문의 유산을 보호한다. 유일하게 배트맨의 정체를 아는 사람으로, 시민을 지키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그를 보며 노심초사한다. 역시나 든든하고 멋진 알프레드다.

고든(제프리 라이트 분)은 고담시에서 경찰국 경위였을 때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고든과 배트맨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도시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조심스럽게 공조한다. 부패한 도시, 시장 선거를 앞두고 엘리트 집단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자 고든은 배트맨을 사건 현장으로 부른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가면을 쓴 채 현장을 살피던 배트맨이 불편하기만 하다. 곱지 않은 눈초리로 그를 응시하며 혀를 끌끌 찬다.

탐정으로서 웨인은 백발백중이다. 주요 증거를 빠르게 포착하고 놀라운 정보력으로 날카롭게 분석한다. 알프레드와 고든, 배트맨은 요즘 말로 '케미'가 잘 맞는다. 하지만 사건의 범인을 쫓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 날 범인은 현장에 배트맨을 향한 쪽지를 남기고, 웨인은 모든 증거가 퍼즐처럼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깨닫는다.

펭귄, 오즈(콜린 파렐)는 고담의 유흥업소를 운영한다. 겉으로는 사기꾼 갱스터 카마인 팔코네를 위한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속셈을 감춘 채 음흉하게 군다. 캣 우먼과 팔코네를 둘러싼 서사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 이를 둘러싼 갈등이 다소 억지스럽고 해결 과정 역시 아쉽다. 캣우먼에 속절없이 빠져드는 배트맨의 모습도 기존 시리즈 속 캐릭터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영화는 배트맨으로서 활약보다 브루스 웨인이 슈퍼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에 무게를 둔다. 한 인간이 어떻게 영웅으로 성장하는지 비춘다. 가면에 숨긴 쇠약한 얼굴, 왜소하고 근육 한점 없는 신체는 우리가 알던 크고 단단한 히어로가 아니다.

감독은 배트맨도 원래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2년 차 새내기였을 때로 시계를 돌려 그가 어떻게 히어로로 변모했는지 들춘다. 탐정 브루스는 고뇌와 아픔, 분노, 연민, 정의에 차오르며 점점 히어로로 담금질한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정의와 복수 사이에서 끝없는 질문과 마주한다. 이는 '다크나이트'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영화에는 매우 짧은 분량이지만 조커가 등장한다. 영화 '이터널스', '덩케르크'에 출연한 배우 배리 케오간이 조커로 깜짝 등장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 역시 흥미롭다.

'더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유독 조커의 음울한 이미지와 겹치는데, 이는 감독의 의도처럼 보인다. 과거 "우린 다르지 않다"고 외치던 조커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배트맨은 조커처럼 얼굴에 화장하고서 비로소 영웅이 된다.

배트슈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미롭다. 슈트는 기존의 우락부락한 근육 표현을 지양하고, 레트로하면서도 세련된 비주얼이 돋보인다. 고급스러운 소재로 완성된 망토, 장갑, 부츠 등도 보는 재미가 있다.

맹렬하게 질주하는 배트카, 배트모빌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배트모빌과 배트사이클이 질주하는 장면이 길지 않지만, 촘촘하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붉은 화염 사이로 나부끼는 배트맨의 망토는 영화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카체이싱의 비중이 크지 않아 아쉽다. 배트모빌을 좀 더 활용했더라면 장르적 매력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극을 이루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음울하면서 추리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매력적인 음악은 몰입을 돕고,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잘 어루만진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너바나의 '썸씽 인 더 웨이' 등이 삽입돼 장면을 웅장하게 완성한다. 탁월한 영상미도 돋보인다. 하지만 액션 비중이 크지 않아 관객에 따라 무겁게 느낄 수도 있다. 이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다크하지만, 매 장면 힘 있게 빛난다. 처절한 배트맨의 얼굴은 긴 여운을 남긴다. 깨고 부시고 무찌르는 액션 만랩 배트맨은 아니지만,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솟구치고 부서지길 반복한다.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176분. 3월1일 개봉.

덧, '더 배트맨'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은유와 함의를 품은 철학적인 장면이 많다. 개봉 후 영화를 관람한 관객 사이에서 다양한 평이 나올 것으로 본다. DC 코믹스 팬들에게 선물처럼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쿠키영상은 없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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