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평 방송실에서 나오는 음악 "동부시장으로 오세요~"

최미향 2022. 2. 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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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인터뷰] 서산동부시장 으라차차 방송국을 찾아서

[최미향 기자]

 좌로부터 가곡 김종현 전 국장, 사피니아 박성숙 DJ, 비타민 김진희 DJ, 허찬 허용남 (왼쪽부터)
ⓒ 최미향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음악입니다." 

시장 상인들의 다양한 소식과 고객들의 소소한 즐거움을 전해주는 지역의 자랑거리 '서산동부시장 라디오방송국'이 올해로 8살이 됐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다가도, 남편의 지청구에도 오전 11시가 되면 방송실 스튜디오에 앉아 조금은 긴장한 모습으로 멘트를 치고 나가는 닉네임 사피니아 박성숙씨는 "여전히 떨려요. 그렇지만 동부시장의 소소한 삶의 모습을 전해주다 보면 마칠 때쯤에서야 담담해진다니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2013년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문화관광형 전통시장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그해 겨울 초입인 11월 19일 개국한 방송국은 주로 시장동아리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면서 상인들이 서로 소통하며 친분을 쌓고 단합해 나가는 곳이다.

지난 18일 '서산동부시장 라디오방송국'을 이끄는 독특한 닉네임의 허찬 허용남 국장, 가곡 김종현 전 국장, 비타민 김진희 DJ, 사피니아 박성숙 DJ 4인방을 만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바로 방송국 입사"
 
 출입구 옆에 붙어있는 으라차차방송국 그림
ⓒ 최미향
 
- 닉네임이 다들 독특하다. 어떻게 방송국에 입사하게 됐나?
허용남 : 닉네임은 '허찬'으로 '가득차다'는 뜻이다. 2013년도 말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차에 동부시장 사진 전시를 보고 문의를 하면서 "시장 상인은 아니지만, 서산시민으로서라도 참여하고 싶다"고 떼를 쓰며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 이후 시장에서 진행하는 통기타, 마술, 사진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동부시장 방송국 개국을 위한 DJ 교육에도 참여했다. 전문적인 강사와 아나운서를 초빙하여 3~4개월 정도 이론과 제작 교육을 받았고, 상인 6명과 유일한 시민 1명으로 구성된 방송국이 드디어 개국하게 됐다.

김종현 : 닉네임은 '가곡'으로 태어난 동네 이름이 바로 '가곡'이고 음악 장르의 가곡이기도 하다. 내 아내는 시장에서 긴 세월 장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게 동부시장은 고향 같은 곳이다. 직장 생활을 마치고 제2의 삶을 살게 되면서 동부시장에 도움을 줄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 지원하게 됐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바로 방송국 입사다.

김진희 : 생기있고 발랄하고 상큼함이 톡톡 튀는 '비타민'이 내 닉네임이다. 우리 마음과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활동하면서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비타민이라 정했는데 어째 나와 비슷하지 않나(웃음). 전통시장 육성사업 목적으로 시작된 동아리 활동에서 지금의 4인방을 만나게 됐고, 상인들이 서로 소통하며 친분을 쌓고 단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방송국이 좋아 입사하게 됐다.

박성숙 : 닉네임은 바로 꽃 이름에서 따 온 '사피니아'로 꽃말은 당신과 함께라서 행복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으라차차 방송국 DJ는 늘 고객과 상인분이 함께 있어야 행복한 존재다. 방송국 DJ가 된 이유는 소극적인 성향을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에서 DJ 교육을 받게 됐고, 서산동부전통시장을 찾는 고객분들과 상인분들께 행복과 기쁨을 주고 싶어 지원하게 됐다.
 
▲ 방송을 하고 있는 허용남 국장과 박성숙 DJ .
ⓒ 최미향
 
- 방송은 보통 어떻게 진행되며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허용남 : 주 2회 화요일, 금요일에 방송이 진행된다. 각자 일정표에 따라 한 사람이 한 달에 2회 정도 고정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부득이하게 정해진 일정에 방송하지 못하면 다른 DJ 중 가능한 분과 일정을 변경하기도 한다. 방송 진행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기획과 편성이다. 방송국 인원이 소수이다 보니 방송을 위한 대본 작성, 곡 선정, 음향 기기 설정, 방송 송출까지 멀티로 담당하고 있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뭐니 뭐니 해도 선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일상생활 중에서도 그곳이 어디든 음악이 흘러나오면 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듣는 습관이 생겼다. 마음에 와닿는 노래, 신나는 노래가 나올 때면 우리 상인분들, 고객분들에게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메모하게 된다. 이건 정말 아름다운 직업병이다(웃음).

김진희 : 방송은 모두와 약속된 시간에 꼭 해야 하는데 장사를 하면서 방송을 하기 때문에 때론 요일과 시간을 바뀌어 방송시간이 변동되기도 한다. 고객님들이 이해해주시면 좋겠다(웃음).

사실 개국 당시에는 2인 1조로 방송하다가 개인방송으로 바뀌었었다. 그러다 지난 1월 바로 옆 건물로 이전하면서 방송 장비도 교체했다. 장비들이 손에 익숙지 않아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지금은 다시 뭉쳐 2인 1조가 하고 있는데 옛생각이 나면서 참 좋다.

박성숙 : 방송 시작 전 그날 재생될 음악목록과 대본 정리를 끝내놓고 방송을 시작한다. 그때마다 중간중간 시장을 찾아주시는 고객들과 상인들의 사연 및 신청곡을 받는 담당도 하고 있다. 여느 라디오처럼 우리도 퀴즈를 내어 상품도 드린다. 우리 방송국 특성상 당일 신선하게 들어온 제철 생선 및 채소 등을 소개해 준다. 이것은 시장 방송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다.
 
▲ 서산동부시장 으라차차방송국 실내 .
ⓒ 최미향
 

- 각자 직업들이 무엇이며 직업이 방송에 도움이 되는지?
허용남 : 나는 현재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방송이 도움이 된다.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소통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방송국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느낀다. 늘 고민한다. 더 쉽게 서로 소통할 방법은 뭘까를.

김종현 : 정년퇴직 후 아파트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사실 방송과 직업과는 별개이지만 내 삶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김진희 : 서산으로 이사와 옷가게를 했다. 아이들이 어려서 장사를 접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사진, 난타, 방송을 했다. 이것이 매개체가 되어 상인들과 친숙해질 수 있었고, 새로운 꿈도 키울 수 있었다. 현재는 웃음코칭, 웃음실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소통적인 부분 외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등 상당히 유기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박성숙 : 남편과 함께 시장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면서 벌써 8년 차 DJ를 하고 있다. 남편은 가게 일보다는 방송국 일에 더 매달리고 있는 나를 보며 "가게도 바쁜데 방송국 일하고 있으면 돈 벌 수 있냐"며 잔소리를 한다. 그래도 너무 보람 있다. 시장에서 DJ로 먼저들 알아봐 주시고 다가오셔서 인사도 건네주신다. 동부시장에서는 이미 유명인사가 됐다(웃음).

- 방송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허용남 : 아무래도 실수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혼자 진행하다 보니 음악과 멘트가 동시에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도 음악만 나가고 마이크가 꺼져있는 줄 모르고 혼자 신나게 멘트를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실수하면서도 많이 성장했다.

김종현 : 방송국 생기면서부터 국장직을 맡아 일을 하게 됐다. 좋은 일도 있었고 욕먹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는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고, 협조도 부탁드리면서 방송국이 성장했다. 특히 충남방송(LG 헬로비전)과 연결되어 TV에 나올 때와 KBS 대전 방송국 아침마당에 나간 일 등 여러 매체의 출연 신청으로 우리 방송국이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생각이다.

박성숙 : 혼자 방송을 하다 보면 실수가 잦다. 열심히 연습하고 방송에 임했는데 내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고 할 때. 방송 장비를 확인해보니 방송 ON 버튼을 누르지 않고 말을 했더라. 또 때로는 미리 선곡해놓은 음악이 아니라 다른 음악이 갑자기 재생되어 당황한 적도 많다. DJ 8년 차지만 여전히 실수가 잦다.

"'방송 잘 듣는다'는 말에 힘 나" 
 
 이들에게 마이크란 바로 ‘소통’이다
ⓒ 최미향
 
- 방송을 하다 보면 가장 기쁘고 보람될 때는 언제인가?
허용남 : 방송 잘 듣고 있다고 말씀해 주실 때다.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는 '방송을 들으시는 분이 계실까?' 했는데 막상 "잘 듣고 있다"며 신난다고 즉석에서 다음 방송 신청곡을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때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임에도 우리 방송국이 시장 상인, 고객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기쁨을 드린 것 같아 기분 좋다.

김진희 : 방송 DJ 활동이 밑거름되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례로 행사 진행과 다른 시장으로 DJ 교육을 나가기도 한다. 내가 DJ가 아니었다면 폭넓게 활동할 수 있었을까.

박성숙 : 시장을 찾아주신 고객분들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좋다고 말씀해 주실 때, 그때가 제일 기쁜 것 같다.

- 방송을 하다 보면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김종현 : 처음에는 방송을 오전 11시에 하다 보니 점심시간과 겹쳐 "시끄러운데 소리 줄여라"며 방송실로 찾아와 항의하는 바람에 맘고생이 심했다. 지금은 방송 스피커 위치와 시장 환경에 따라 음악 소리가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또 전체적으로 음향을 맞추기가 어려워 방송을 할 때마다 확인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시장 곳곳에 스피커도 부족하여 듣고 싶은 분들이 못 듣는 아쉬움도 있다.

- 개인마다 방송하면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점이 있다면.
허용남 :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역시 편성이다. 전체적인 방송 진행 내용을 보자면, 방송 시작 전 잔잔한 음악으로 방송을 한다는 일종의 신호 음악을 틀어주고 시그널로 오늘의 날씨, 요일, 방송 진행자가 누구인지 소개한다. 다음 차례는 각 DJ가 선택한 배경음악과 함께 파이팅 내용의 멘트까지가 오프닝이다. 이게 끝나면 한 시간 동안 진행될 음악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열차 기적 소리를 틀면서 바로 선곡하고 준비한 멘트들을 진행한다.

우리 방송국은 생일을 맞이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께 축하 배경음악과 멘트를 하고 추억에 팝 한 곡을 선물로 틀어드리며, 마지막, 배경음악 "또 만나요"를 내보내면서 남은 시간도 행복하시고 "파이팅" 하시라고 힘을 불어 넣어주면서 방송을 끝마친다사실 별다른 것은 없어도 동부시장에서 함께 숨 고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행하니 좀 더 와닿는 것 같단 생각도 해본다.

김종현 : DJ분들에게 방송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회의 때마다 이야기해준 것은 정치, 종교, 가능하면 상인분들이 운영하는 상호 말하지 않기, 추상적인 이야기 하지 않기, 비방하는 말 하지 않기 등이다. 지금까지 신경 쓰면서 지켜나가고 있다.

김진희 : 노래선택이다. 방송을 듣는 분들 연령대가 다양하고 당일 날씨와 기분에 따라 어울리는 노래를 선택한다. 방송을 듣고 그날 하루의 감정이 즐거움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신나고 활기찬 음악을 주로 선곡하기 위해 신경 쓰며 고민한다.

박성숙 : 시장을 찾아주신 고객분들에게 동부시장은 지금 어떤 물건이 제철이고, 요리는 어떻게 해서 드시는 게 더 좋은지에 관한 정보들을 알려드리려고 노력한다.

- 꿈과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허용남 : 꿈이 두 가지다. 첫 번째 꿈은 각 가정에서도 마을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고 말할 수 있는 유튜브나 카카오톡, SNS 등을 이용하여 주민들과 각 행정복지센터가 서로 소통하는 그런 공간을 개설하고 싶다. 예를 들어 동네 주민분들이 하고 싶은 말이나 영상, 사진 등도 공유해가면서 지역 네트워크를 조금 더 활성화하고 싶다.두 번째 꿈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각 나라 그 동네의 특색을 찾아 경험해 보고 장점들은 우리 방송국과 마을에 접목했으면 하는 게 꿈이다.

김종현 : 나이는 들고 언젠가는 그만두어야겠지만 할 수 있는데 까지는 방송을 해보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부시장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김진희 : 개국부터 우리가 계획한 아프리카 TV로 방송을 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 이제 방송국도 이전하여 분위기도 새롭게 바뀌었고, 문턱도 낮아져 고객과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초대하여 고객과 상인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하고 동부시장을 알리는 유튜브 방송을 하고 싶다

박성숙 : 1일 체험 DJ로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 우리 방송국을 소개하는가 하면 음향기계도 알려드리는 일을 함께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고객과 상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으라차차 방송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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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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