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키트 강자 에스디바이오센서..체질 개선·M&A 박차
이효근 에스디바이오센서 대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일일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개인용 자가검사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방역당국이 60대 고령자 등 우선검사 대상자를 제외하고는 자가검사키트를 활용해 신속항원검사를 우선 실시하는 새 검사 체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진단키트 관련 전문가 검사용으로 허가를 받은 기업은 70여곳이 넘지만, 자가검사용으로 허가받은 신속항원검사 제품을 보유한 기업은 에스디바이오센서를 비롯해 3곳뿐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급부상하기는 했지만 에스디바이오센서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비롯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등의 진단키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체외진단업계 히든 챔피언이다.
코로나19는 에스디바이오센서가 퀀텀점프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에스디바이오센서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37억원, 9억원이었으나 2020년에는 1조6862억원과 7383억원으로 급증했다. 2021년에는 매출이 3조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은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전후로 불과 2년 만에 매출은 약 40배, 영업이익은 1500배 넘게 뛴 셈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하면서 진단키트 수요가 줄어 실적 악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에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다시 한 번 실적 성장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실제로 방역당국의 코로나19 검사 체계 전환 이후 자가진단키트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는 등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오미크론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는 해외에서의 구매도 잇따르고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지난해 말 미국에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의 FDA(식품의약국) 긴급사용승인(EUA)을 획득하고 약 200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캐나다, 싱가포르에 이어 최근에는 일본 정부와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원재희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델타 변이와 비교해 전파력이 2배 이상이다. 단기간에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치명률은 델타 변이 대비 5분의 1 수준인 만큼 방역 효율을 높이고 의료 체계의 부담을 덜기 위해 신속항원키트를 통한 검사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효과가 입증된 에스디바이오센서 자가진단키트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10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효근 대표(59)가 큰 역할을 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의 전신인 에스디는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감염성 질환 진단키트와 함께 혈당측정기, 콜레스테롤 분석기 등 체외진단기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 2008년 미국의 의료기기업체인 엘리어로부터 적대적 M&A를 당하며 위기를 맞았다. 2010년 엘리어는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에스디의 혈당시험지 사업부 매각을 결정했다. 에스디에서 바이오센서 R&D(연구개발)를 총괄했던 이효근 대표는 바이오센서 사업부를 인적분할해 에스디바이오센서를 설립했다.
글로벌 유통망 구축에도 앞장서
엘리어로부터 독립해 새 출발한 이후에도 이 대표는 진단기기 R&D를 진두지휘하며 신제품을 꾸준히 선보였다. 에볼라와 메르스 진단키트, 잠복 결핵 진단시약 등이 대표적이다. 진단기기 분야에서 쌓아온 기술력과 제품화 능력을 바탕으로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진단기기 시장의 강소기업으로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세계 최초로 WHO(세계보건기구) 인증을 받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벌 유통 시스템 덕분이다. 이효근 대표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진단시약의 사용 승인과 임상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기 위해 해외 유통망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 결과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전 세계 126개국에 독점 대리점을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몇 단계 도약에 성공한 에스디바이오센서지만, 고민은 더욱 깊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면 성장동력이 끊기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 때문이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이 대표는 다앙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우선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대비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다.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은 것은 현장분자진단기기다. 최근 글로벌 진단 시장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분야다. 2018년 7억3000만달러 규모였던 현장분자진단기기 시장은 연평균 15% 가까이 성장해 2023년에는 15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미국 분자진단업체 세페이드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진단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에스디바이오센서의 현장분자진단기기 ‘스탠더드 M10(STANDARD M10)’은 지난해 8월 해외 시장에 먼저 출시해 이탈리아, 덴마크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PCR(유전자 증폭)과 LAMP(등온 증폭 방식) 모두 가능한 현장분자진단 제품으로 국내 첫 허가다. 빠르게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는 신속항원진단기기와 99% 이상의 정확도를 내는 유전자 증폭의 장점을 합친 것이 특징이다. 현장에서 30~60분이면 진단 결과를 알 수 있다. 국내 허가를 받자마자 전국 병원에서 1000대 이상 주문이 몰렸다.
M10은 진단키트를 비롯해 관련된 다양한 제품을 연동해 팔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전 세계에 M10 공급이 확대된다면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말라리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등 다른 질환의 진단카트리지 매출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벌어들인 대규모 자금으로 적극적인 M&A에도 나선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에스디바이오센서의 현금 보유액은 약 7000억원에 달한다. 단기금융상품과 금융자산 등을 포함하면 1조8000억원을 유동성으로 확보하고 있다. 총 자산의 약 70%가 현금성 자산이다. 이를 바탕으로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지난해 11월 남미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브라질의 2위 진단 기업 에코디아그노스티카(Eco Diagnostica)를 인수했다. 남미 시장 공략 거점으로 활용하는 한편 현지 생산으로 자국 생산 쿼터 배정 물량도 받을 수 있어 유용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9월에는 백금 기반 무효소 방식 연속 혈당측정기를 개발하고 있는 유엑스엔에 약 400억원을 투자했다. 유엑스엔의 원천 기술력과 에스디바이오센서 플랫폼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구상이다. 유통 시스템과 관련해서는 유럽 등 주요 국가에 직판(직접 판매)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류지민 기자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6호 (2022.02.16~2022.02.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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