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웅의 에너지전쟁] 우크라이나 사태와 에너지 자원의 역학 관계

2022. 2. 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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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스 지나는 통로
에너지 공급 의미 뛰어넘는 정치·외교적 영향력 가져
우크라 안 거치고 러-유럽 연결
대형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 NATO 회원국이 운영 의존
'노르트 스트림2' 개통 땐
러, 강력한 레버리지 얻게 돼
미, '우크라, 나토 가입' 이유
에너지는 무기도 방패도 돼
수급·비축 중요성 생각해야

편집자주 - 아시아경제신문은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자에 대변혁기를 맞은 에너지 산업을 진단하고 그에 얽힌 국제 질서 변화를 짚어보는 '최지웅의 에너지전쟁'을 연재합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가스 MBA 과정을 밟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 입니다.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가 그렇듯, 석유와 가스가 지나는 통로는 에너지 공급의 의미를 뛰어넘는 정치적·외교적 영향력을 갖는다. 지난해 9월 완공된 러시아와 독일 간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Nord Stream2)’도 예외가 아니다. 노르트 스트림2는 러시아의 국영기업 가스프롬(Gazprom)이 주관해 건설했다. 이 가스관이 개통되면 러시아는 기존 노르트 스트림1과 함께 유럽 연간 가스 수요의 절반 정도를 수송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개통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노르트 스트림이 생기기 전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들을 사용했다. 반면 노르트 스트림은 러시아 서부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로 연결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고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형 가스관 개통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먼저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전쟁 억지 수단을 잃는 결과를 낳는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들이 주요 운송 수단일 때, 우크라이나는 그 송유관을 레버리지(지렛대)로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었다.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 군사적 수단을 제외하고 상대를 가장 강하게 타격할 수 있는 것은 석유와 가스 거래를 막는 것이다. 이란 원유 수출 금지, 대북 원유 제재에서 보듯 상대를 통제하는 수단 중 석유와 가스 거래 제한은 군사적 수단을 빼면 가장 강력하다. 공급자는 가장 큰 경제적 이윤을, 수입자는 산업과 일상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자원을 각각 잃기 때문이다. 과거 우크라이나도 러시아가 위협할 경우 자국을 경유하는 가스관을 잠그거나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르트 스트림1과 2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노르트 스트림2가 완공된 이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강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주력 산업의 손실 없이 침공할 수 있고, 설령 침공하지 않더라도 이 새로운 상황이 강력한 외교적 힘을 발휘하게 한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안보상 최후의 보루다. 과거 옛 소련 시절 소련의 영향력은 구 동독까지였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과거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동유럽 국가들은 차례로 미국이 중심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다. 1999년에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가 대거 가입했고 2004년에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등도 NATO 회원국이 됐다. 2017년에도 몬테네그로가 가입하면서 현재 회원국은 29개국에 이른다. 현 우크라이나 정부도 친서구 성향을 보인다. 우크라이나마저 NATO에 가입하면 이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은 바로 러시아와 접경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는 불과 490㎞ 거리다. 이곳에 미국의 미사일이라도 배치되면 러시아 안보를 크게 위협하게 된다. 러시아는 NATO의 동진을 멈추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거부하는 확약을 요구하고 있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미국 입장에서도 노르트 스트림2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NATO 회원국이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망에 편입되는 것을 꺼려왔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이라는 유럽의 목줄을 잡고 NATO 회원국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 송유관의 건설을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건설에 참여한 기업들을 제재하기도 했다. 그래서 2019년에는 장기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노르트 스트림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실행된다면 러시아는 유럽 가스 수출 통로를 모두 잃게 된다. 노르트 스트림이 폐쇄된 상황에서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도 자국의 가스관들을 파괴할 수 있다. 이는 유럽에 엄청난 손실을 야기할 것이지만 러시아에는 손실을 넘어 경제 붕괴까지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는 유럽 가스 수요의 약 40%를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과 노르트 스트림까지 잃게 되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난 1월19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노르트 스트림2를 폐쇄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이 패권국일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해상권과 석유 수송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가스 보급로인 노르트 스트림은 다르다. NATO 회원국이 그것을 운영하며 의존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의도대로 이를 조정할 수 없다. 애초 이 가스관은 미국의 유럽 내 최대 우방인 독일이 기획한 것이다. 2005년 당시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북유럽가스파이프라인’ 프로젝트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국이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했다. 앞으로 노르트 스트림2가 개통되면 러시아는 유럽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레버리지를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미국에는 그 상황이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켜야 할 이유가 된다.

미국은 NATO 회원국들이 러시아산 가스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화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산 셰일가스를 유럽으로 더 많이 수출하거나 유럽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크게 늘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줄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둘 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유럽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계속 증가 추세에 있고, 미국의 올해 천연가스 생산량도 크게 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제 관계에서 에너지는 무기 혹은 방패가 될 수 있는 자원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도 만만치 않고, 한국의 에너지원이 수송되는 항로도 국제 정세의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에너지를 스스로 수급하고 비축하는 사업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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