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검정 치마저고리

2022. 2. 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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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1987년의 겨울 어느 날, 검정 치마저고리 새 옷을 지어 입었을 때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이끌리고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새 옷을 입으면 동무들에게 자랑하고 싶듯이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석양 무렵 그 옷을 입고 간 곳은 성 라자로마을이었다. 저녁식사 종이 울릴 무렵 나는 한센인들이 모이는 식당 길목에 서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웬일로 왔느냐”며 깜짝 놀라면서 반기는 그분들과 잠시 만나고 돌아왔다. 한센인들이야 내가 새 옷을 입고 온 것을 몰라보았지만, 그래도 새 옷 입은 설렘을 그분들 앞에서 풀었다.

내가 입는 옷은 유행에 뒤떨어지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치마저고리이다. 봄, 여름, 가을에는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겨울이면 모두 까맣게 입는다. 수도인의 본분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처지에 검정 치마저고리 몇 벌이면 한평생 충분하다. 그런데도 새로 지어 입은 그 검정 치마저고리가 나를 그토록 설레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치성당에 다니는 테레사님으로부터 질 좋은 모직 검정 치마저고릿감과 그 옷을 지을 품삯까지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분의 아들은 독일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제서품을 받아 신부가 될 때에 수단을 만들어 주려고 몇 년 동안 푼돈을 정성스럽게 모아 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의 수단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성직자 옷으로 몫 지워 저축한 돈을 다른 일에 쓸 수가 없어서 나의 치마저고릿감을 마련했다고 했다. 무척 놀라워하는 나에게 그분은 제발 기쁜 마음으로 받아만 달라고 했다.

「 천주교 신자가 선물한 검정 치마
한센인에 대한 각별한 사랑 느껴
35년 지난 지금에도 즐겨 입어

그분은 두 딸 모두가 수녀여서 큰 수녀, 작은 수녀라고 부른다. 두 딸을 위해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어찌 하필 원불교 교역자인 나의 검정 치마저고릿감을 마련할 생각을 했을까, 뜻밖에 천주교 신자로부터 받은 선물에 성스러움이 배어 있는 것만 같아 소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1975년 성 라자로마을을 처음 방문한 후 한센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한센인들을 마음의 권속처럼 건사할 수 있도록 주위의 많은 분들이 따뜻한 온정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미국에서 큰 뜻을 품고 귀국한 이경재 신부님이 성 라자로마을의 새판을 짜면서 참으로 많은 집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건축비를 보태기 위해 엿장사를 시작했다.

테레사 님은 내가 겨울철마다 팔고 있는 그 엿을 십 년도 넘게 팔아 준 분이다. 그분은 토요일마다 아파트 단지 장마당에서 여러 수도원의 수녀들이 위탁한 물품을 판매했다. 해마다 십일월 중순이 되면 “금년에도 엿 파는 일 시켜 주이소” 하며 기꺼이 성 라자로마을을 돕기 위한 엿 소매상을 벌였다. 엿값을 계산해 줄 때마다 고마워하면, “그 돈이 도로 우리 천주교로 들어올 텐데” 하며 기뻐했다. 성 라자로마을은 천주교 복지시설이다.

타 종교인끼리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 도우며 협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분의 도움을 더욱 고맙게 여겼다. 테레사 님이 마련해 준 새 옷을 입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렸을 때 두 마음 없이 성 라자로마을 한센인들이 보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사랑을 쉼 없이 주는 사람들이 바로 성 라자로마을 한센인들이다. 그분들은 내 음성만 들려도 이 방 저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서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와요?” 하며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언젠가는 그렇게 말하는 그분들에게 두 달도 안 돼서 왔는데 뭐가 오랜만이냐고, 바른 계산이라도 대듯, 왔다 간 날짜를 밝혔다. 그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박 교무님 뵌 지가 반년도 더 된 것 같은데” 하면서 웃었다. 그러한 것을 따지고 있을 때의 그분들과 나의 모습은 서로가 행복했다.

어느 여름날 그분들을 찾아갔을 때, 한 노인이 방금 아들이 다녀갔다며 두유 한 병을 들고나와서 먹으라고 했다. 그것을 들고 서 있는 그분의 눈빛에는 간청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나는 한 병을 단숨에 마셨다. 그러자 그분은 얼른 또 한 병을 들고 와서 “목이 말랐구먼” 하며 더 마시라고 했다. 그만 마시겠다고 사양하자 그분은 꼭 어머니 같은 눈빛으로 서운해했다. 오랜만에 성 라자로 마을에 갔을 때, 한 남자 한센인이 내 곁으로 다가와 “교무님 건강하세요? 오실 때가 되었는데도 안 오시면 우리들은 교무님이 어디가 아프신가 하고 걱정해요. 우리는 가족은 안 기다려도 교무님은 기다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한센인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테레사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 검정 치마저고리를 지금도 즐겨 입는다.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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