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가 외면한 '태종 이방원'에 희망은 없다 [박정선의 엔터리셋]
역사왜곡 '조선구마사'도 병영 2회만에 폐지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3주째 결방 중이다. 방송을 시작한지 5주 만에 평균 시청률 10%를 넘어서면서 정통 사극의 확장성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얻었지만, 촬영장에서 발생한 동물 학대 사건이 알려지고, 당시 동원됐던 말이 촬영 일주일 뒤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진 결과다.
KBS는 늦게나마 “생명윤리와 동물복지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불러온 참사”라고 인정하며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작 관련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발 방지 약속과 함께 이번 일을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 마련 등 생명존중, 동물권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KBS를 향한 대중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태종 이방원’뿐만 아니라 1997년 방송된 ‘용의 눈물’부터 2014년 ‘정도전’, 지난해 방송된 ‘연모’까지 촬영을 위해 많은 동물이 소품처럼 쓰이며 학대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 같은 여론 탓에 ‘태종 이방원’의 조기 종영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거세다. 방송을 강행한다 하더라도 흥행을 점치긴 어려운 상황이다.
시청자의 여론은 방송의 성패를 좌우한다. 최근엔 작품과 관련한 논란들로 시청자들의 반발이 나오면서 예정보다 일찌감치 종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앞서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 방영 2회 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바 있다.
‘조선구마사’는 1회가 방영된 직후부터 역사를 왜곡했다는 논란에 휘말렸고, 반중 감정이 거센 와중에 중국식 문화를 연상케 하는 요소를 집어넣은 점이 문제가 됐다. 광고주와 제작지원을 한 지자체에 항의가 빗발쳤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방송 중단을 요구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2회가 끝난 시점에서는 모든 광고주가 광고를 끊었고, 촬영지를 제공하고 제작비를 지원했던 문경시·나주시는 이를 철회하고 환수를 요구하기로 했다.
SBS는 조선 초기를 배경으로 한 제작비 320억원의 대작 판타지 사극으로 관심을 모은 이 작품에 대한 방영권료 대부분을 방송 전 선지급했고, 제작사는 촬영 분량의 80%를 완료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방송사와 제작사는 한 주 결방 후 재정비를 준비했지만 방송에 따른 파장이 거센 탓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편성 공백 등이 불가피함에도 폐지를 결정했다.
JTBC ‘설강화’는 방송 전부터 1987년 대학가를 배경으로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받는 간첩과 정의롭고 대쪽 같은 성격의 안기부 요원이 등장한다는 설정으로 논란을 야기했다. 시청자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설강화’는 70년대 유명 민주화운동가와 동명인 ‘영초’를 ‘영로’로 수정하고, 운동권 학생과 무장간첩이었던 설정도 달리했다. 극이 진행되면서 당초 우려됐던 역사 왜곡 논란에선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여전히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결국 ‘설강화’는 최고 3%, 최저 1%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채 퇴장했다.
과거엔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거나 방송국 게시판에 몰려가 항의 글을 올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지금의 소비자들은 더 똑똑하고 기민해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한 문제 해결에는 심의와 의결까지 시간이 걸리고, 실효성이 없는 사후 규제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경험했던 터라 직접 해당 작품의 제작을 지원하거나 광고를 진행하는 기업에 압박을 가하는 식이다.
물론 시청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모두 수용할 순 없다. 상황이나 과정을 세세히 따져 봐야 하고, 단순히 공격에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을 땐, 시청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소비를 멈춘다.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은 작품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태종 이방원’ 측의 거듭된 사과에도 여전히 여론이 쉽게 돌아서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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