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해시계 '앙부일구' 보물 지정 예고

서믿음 2021. 12. 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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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조선 천문학 기구인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세 점을 비롯해 조선 전적·불교조각 등 다섯 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한다고 30일 예고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을 포함해 세 개의 앙부일구는 ▲제작기법에서 시반의 시각선과 절기선, 지평면의 절기글자와 24방향 글자에 표현된 은상감 기법과 영침, 받침대에 새겨진 용무늬, 구름장식, 거북머리 장식 등이 뛰어난 조형미를 보이고 있어 숙련된 기술자가 제작한 최상급의 앙부일구로 판단되는 점 ▲태양의 그림자로 시간 뿐 만 아니라 날짜(절기)를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독창성이 뛰어나다는 점 ▲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의 발전과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과학문화재라는 점에서 보물로서 지정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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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계 '앙부일구' 세 점
'조선시대 전적 및 불교조각' 두 점 보물 지정 예고
앙부일구(고궁박물관 소장)

문화재청은 조선 천문학 기구인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 세 점을 비롯해 조선 전적·불교조각 등 다섯 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한다고 30일 예고했다.

앙부일구는 총 세 점이다. 각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에 있다. 여기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은 지난해 미국에서 돌아 온 환수문화재다.

‘앙부일구’는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한 해시계다. 1434년(세종 16) 장영실(蔣英實), 이천(李?), 이순지(李純之) 등이 왕명에 따라 처음 만들었다. 그 해 10월 종묘 앞과 혜정교(惠政橋·현 서울 종로에 설치됐던 다리)에 각 한대씩 설치했다. 조선 말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에 널리 보급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을 포함해 세 개의 앙부일구는 ▲제작기법에서 시반의 시각선과 절기선, 지평면의 절기글자와 24방향 글자에 표현된 은상감 기법과 영침, 받침대에 새겨진 용무늬, 구름장식, 거북머리 장식 등이 뛰어난 조형미를 보이고 있어 숙련된 기술자가 제작한 최상급의 앙부일구로 판단되는 점 ▲태양의 그림자로 시간 뿐 만 아니라 날짜(절기)를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독창성이 뛰어나다는 점 ▲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의 발전과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과학문화재라는 점에서 보물로서 지정가치가 충분하다.

‘자치통감 권266~270(資治通鑑 卷二百六十六~二百七十)’은 1434년(세종 16) 편찬에 착수해 1436년(세종 18)에 완료된 총294권 가운데 권266~270의 1책(5권)에 해당하는 서책이다. 주자소(鑄字所)에서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금속활자본으로, 워낙 수량이 많아 완질(完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정 예고 대상 자치통감은 현재까지 해당 권이 없는 유일본으로, 초주갑인자로 인쇄한 금속활자본이다. 이미 지정된 자료와 비교할 때 인쇄 및 보존상태가 매우 우수해 서지적 가치 또한 높다.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慶州 芬皇寺 金銅藥師如來立像)’은 높이 3.4미터에 달하는 대형 불상으로, 조선 후기의 유일하고 규모가 가장 큰 금동불 입상이다. 1998년 분황사 보광전 해체 수리과정 중 건축 부재에서 ‘분황사상량기(芬皇寺上樑記)’(1616년)와 ‘부동명활성하분황사중창문(府東明活城下分皇寺重創文)’(1680년) 묵서(墨書)가 확인돼 이 약사여래입상이 1609년(광해군 1) 5360근의 동을 모아 제작된 사실이 밝혀졌다.

분황사는 신라시대부터 자장율사(慈藏律師), 원효대사(元曉大師) 등 여러 고승들의 수행처이자 중요한 가람(伽藍·사찰)으로 인정돼 온 한국의 대표적 명찰(名刹)이다. 원래 이곳에 봉안됐던 금동약사불은 정유재란(1597년)으로 소실됐으나,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약사도량으로서 분황사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전란 후 얼마 되지 않아 지금처럼 장대한 규모로 복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1616년과 1680년에 작성된 두 건의 상량문을 통해 1609년에 동(銅)으로 불상을 조성했다는 경위와 불상의 명칭까지 분명히 밝히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앙부일구’ 등 다섯 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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