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싫증 난 가방·필통이 개성 만점 소품이 되는 주문, 마카쥬

성선해 2021. 12.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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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은(왼쪽)·윤시현 학생기자가 마카쥬원을 찾아 각종 물건 위에 자신이 원하는 도안을 페인팅하는 기법인 마카쥬에 대해 배웠다.

낡거나 유행이 지난 물건에 자신의 취향을 더해 변형하는 행위를 리폼이라고 하죠. 충동적으로 구매했지만 결국 집에서만 입게 된 티셔츠, 살 때는 예뻐 보였는데 막상 손이 자주 안 가는 가방 등이 리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요. 옷이나 가방을 리폼할 때는 재단·바느질·페인팅 등 여러 기법과 리본·스티커·스팽글·조화·스탬프·인조 보석·징·레이스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돼요. 말만 들어도 어려워 보인다고요. 리폼 방법 중 초보자도 가죽·섬유용 아크릴 물감과 붓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는 마카쥬를 소중 친구들에게 소개합니다. 박시은·윤시현 학생기자가 초보자용 마카쥬를 배우기 위해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공방 마카쥬원을 찾았죠.

김은영(오른쪽) 대표가 소중 학생기자단에 마카쥬의 역사와 의미,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마카쥬(marquage)라는 단어의 의미와 유래가 궁금해요." 시은 학생기자가 김은영 대표에게 질문했어요. "프랑스어로 marquage는 '표시'라는 뜻이에요. 영어로는 marking에 해당하죠. 각종 물건 위에 자신이 원하는 도안을 물감으로 페인팅하는 기법을 말해요."(김) 한국의상학회지에 게재된 관련 논문에 따르면 마카쥬의 역사는 약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당시 유럽의 상류층은 여행 가방에 자신을 상징하는 이름이나 이니셜·문양 등을 그려 넣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수트케이스에 이름표를 다는 것과 비슷한 목적이었죠.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보면 해당 브랜드를 상징하는 로고가 프린팅된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것도 큰 범주에서 보면 마카쥬에 해당하죠.
"취재하기 전 찾아봤는데 요즘 마카쥬가 인기 있는 취미 활동인 것 같아요. 마카쥬가 유행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대표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던 시현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국내에 마카쥬가 알려지게 된 건 3~4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죠. 그런데 브랜드에서 신발이나 옷, 가방을 사면 디자인이 다 똑같아요. 마카쥬로 글자나 그림을 그리면 개성을 표현할 수 있죠."(김)

마카쥬는 가방·신발·파우치·옷 등 거의 모든 패션 소품에 적용해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페인팅 기법이다.

공방 안에는 가방·신발·가죽 재킷 등 마카쥬로 장식한 여러 패션 소품이 진열돼 있었어요. "마카쥬는 꼭 지갑이나 가방 같은 가죽 제품에만 할 수 있나요?"(윤) "거의 모든 물건에 할 수 있어요. 패션 아이템에 국한해 말하자면 가방이나 옷, 신발은 가죽이나 섬유 전용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붓으로 칠하면 돼요. 재질에 따라 혼합제를 섞기도 하고요. 가죽 전용 물감은 덧바르는 작업에 좋고, 섬유 전용 물감은 쨍한 발색이 강점이에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오늘 저는 가죽 전용 물감을 주로 사용할 겁니다. 물감이 옷에 묻으면 잘 안 지워지기 때문에 작업할 때는 소매를 걷어주세요."
마카쥬는 직선보다 곡선을 그리는 게 훨씬 쉬워요. 처음부터 붓으로 직선을 똑바로 그리기 힘들고, 실수하면 수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소중 학생기자단은 형태가 비교적 간단하고 곡선으로 이뤄진 캐릭터를 도안으로 선택했죠. 시은 학생기자는 인조 가죽 필통 위에 수화기를 들고 있는 스누피를, 시현 학생기자는 곰돌이가 크게 프린팅된 캔버스 재질 천 가방 한가운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태양을 마카쥬 기법으로 그리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각자 도안을 두 개씩 인쇄하고, 그중 하나를 칼로 선을 따라 오리는 거예요. 나머지 하나는 참고용입니다. 초보자용 마카쥬는 원본을 오려내 천·가죽 등 작업할 면에 대고 펜이나 연필로 도안을 그리기 때문에 채색을 잘못할 가능성도 훨씬 적죠.

마카쥬는 도안을 작업할 면 위에 대고 스케치하는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초보자도 배우기 쉽고, 실수할 가능성도 적다.

도안을 스케치한 뒤에는 원하는 부분에 흰색 물감으로 도안의 전체 형태를 따라 면을 만들어줍니다. 이는 마카쥬를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으로, 물감이 잘 발릴 수 있게 캔버스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물감을 종이나 팔레트 위에 약간씩 던 뒤 가죽일 경우 붓으로 칠하고, 캔버스 천일 경우 스펀지로 콕콕 두드려 가며 흰색 면을 만들어요. 그리고 선풍기로 충분히 말려줍니다. 단번에 또렷한 색감의 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최소 3~4번은 반복해야 해요.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덧칠하면 덩어리가 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색을 진하게 내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김)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아랫면의 소재가 비치지 않을 정도로 두텁게 발린 흰색 면이 시은 학생기자의 가죽 필통과 시현 학생기자의 캔버스 가방에 나타났어요. 시은 학생기자는 스누피가 들고 있는 수화기도 파란색 물감으로 칠해줬죠. "이렇게 기초가 탄탄해야 위에 선을 그리는 작업을 할 수 있어요."(김)

박시은 학생기자의 작업 과정. 마카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은 흰색 물감으로 면을 만드는 것이다. 이후 원하는 색과 선을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제 선으로 디테일을 더할 차례입니다. 스누피의 경우 몸 색깔이 흰색이고, 이목구비와 바깥 선이 검은색이죠. 일단 얼굴 부분에 눈과 코를 오린 도안을 올려서 스케치 한 뒤 검은색 물감으로 칠해줍니다. "작업이 끝나거나 색깔을 바꿔 칠할 때는 붓에 묻은 아크릴 물감을 얼른 물로 헹궈야 해요. 안 그러면 물감이 굳어버리죠." 김 대표의 말에 따라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시은 학생기자. 어느새 스누피의 귀여운 얼굴이 보이네요.

시현 학생기자는 앞서 완성한 흰색 면 위에 태양의 얼굴 색깔인 노란색 면을 입히는 데 집중했어요. 기초 작업엔 스펀지를 활용했지만, 아크릴 물감으로 된 면이 생긴 뒤부터는 붓으로 칠해줍니다. 도구는 달라도 방법은 비슷해요. 물감을 해당 면에 골고루 칠하고 충분히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거죠. "스케치북에 작업하면 수정이 가능한데 마카쥬에 사용하는 아크릴 물감은 쉽게 굳잖아요. 혹시 실수하면 복구할 방법이 없나요?" 시현 학생기자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어요. "하하, 맞아요. 사실 완벽하게 실수를 만회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바로 물감으로 덧칠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수정은 가능해요."

윤시현 학생기자의 작업 과정. 처음부터 붓을 사용하는 인조 가죽과 달리 천 소재는 먼저 스펀지로 흰색 면을 만든 뒤 붓을 사용한다. 그림 외에도 액션 페인팅으로 개성을 더할 수 있다.

그사이 시은 학생기자는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어요. 스누피의 테두리와 귀를 검은색 물감으로 그려주는 것이죠. "집에서도 해보고 싶은데 재료를 구하기 어렵지 않나요?"(박) "요즘은 마카쥬에 필요한 섬유나 가죽 전용 물감을 온라인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어요. 원하는 도안과 붓, 물감과 칼만 있으면 쉽게 도전할 수 있죠. 마카쥬는 기초만 알고 부지런히 연습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어요. 다만 면이나 선과는 달리 동물의 털과 같은 소재는 터치 작업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그래서 가끔 제게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그려달라고 의뢰하는 고객도 있어요."(김)

태양의 얼굴을 노란색으로 다 칠한 시현 학생기자는 검은색 물감으로 익살스러운 표정과 후광까지 그려 넣었죠. 가만히 살펴보니 가방 면적이 넓어서 다소 심심해 보입니다. 김 대표가 물감을 붓에 묻혀 흩뿌리는 액션 페인팅을 제안했어요. "으악,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다소 망설이던 시현 학생기자가 "오늘 한 작업 중 가장 쉬울 것"이라는 김 대표의 설득에 결국 도전했죠. 물감이 묻으면 안 되는 부분을 종이테이프를 붙여 보호하고, 신문지를 바닥에 깐 뒤 캔버스 백을 놓습니다. 그리고 섬유용 물감을 붓에 듬뿍 묻히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마음이 가는 대로 흩뿌려주면 돼요. "이 작업을 가죽용이 아닌 섬유용 물감으로 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발색이 쨍하기 때문이에요."(김) 노랑·초록·빨강·파랑 등 여러 색깔의 물감을 마음 가는 대로 뿌리고 나니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캔버스 가방이 완성됐죠.

소중 학생기자단이 김은영 대표와 함께 마카쥬로 장식한 인조 가죽 필통과 캔버스 백. 초보자도 약 3시간 정도면 자신이 원하는 간단한 도안을 그려 넣을 수 있다.

많은 사람에게 쇼핑은 즐거운 행위예요. 하지만 옷 한 벌과 가방 하나가 우리 생활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미국 CNN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의류 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23억1000만t으로 전 세계 총량 중 약 4%에 달해요. 또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버려지는 의류폐기물의 양이 2008년 162t에서 2016년 259t으로 8년 만에 59.9%나 급증했죠. 버려지는 옷을 처리하는 방법도 문제예요.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의류 관련 산업에서 매일 900t에 가까운 폐기물이 발생했는데요. 이들 중 소각되는 이산화탄소·다이옥신 등 각종 유해 물질을 발생시켜요. 또 옷이나 가방을 만들 때 사용되는 플라스틱 섬유는 땅에서 자연 분해되지 않고 바다로 흘러 들어간 뒤 수산물 등을 통해 우리에게 돌아오죠.
옷이나 소품을 리폼하는 것은 내 물건에 개성을 더한다는 뜻도 되지만, 싫증 나고 오래된 물건에 다시 한번 생명력을 불어넣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환경보호에 일조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마카쥬를 통해 리폼의 세계에 발을 들여보는 건 어떨까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물건과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거예요.

■ 학생기자 취재 후기

마카쥬원에 취재하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마카쥬는 제게 굉장히 생소한 분야였어요. 기대를 가득 품고 마카쥬를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아주 재미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약간 힘들었던 부분도 있어요. 생각보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여러 번 덧칠하는 것이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제 손으로 직접 나만의 물건을 만든다는 것이 의미 있었어요. 마카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여러분도 처음 접해도 쉽게 할 수 있는 마카쥬를 한 번 해보세요.

박시은(서울 여의도초 5) 학생기자

학교에서 패브릭 마커로 에코백이나 필통을 꾸미는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마카쥬도 그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취재를 갔는데, 더욱 전문적인 가죽 물감과 도구를 활용하더군요. 마카쥬로 저의 가방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으로 다시 꾸민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번 취재 덕분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마카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정말 뿌듯합니다. 모든 물건은 많은 재료와 비용,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을 텐데, 조금 낡고 싫증이 났다고 해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너무 아까워요. 마카쥬는 이런 아까운 물건에게 오래오래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저와 추억이 깃들고 익숙한 물건을 더 새롭게 오래 사용할 수도 있어서 일석삼조(!)인 것 같아요. 소중 독자 여러분들도 가까운 마카쥬 공방을 찾아서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윤시현(서울 서일초 6) 학생기자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박시은(서울 여의도초 5)·윤시현(서울 서일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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