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안가리고 지구 덮쳤다..12장 사진에 담긴 그들의 복수
“그린란드 빙상에서 처음으로 눈이 아닌 비가 내렸습니다. 깊은 바다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전 세계가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의 2021년 ‘기후 현황 보고서’에 담긴 안토니우 구테흐스(72) 유엔 사무총장의 말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경고처럼 2021년의 첫 기후 재앙은 지구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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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히말라야는 녹고, 텍사스는 얼었다
여름:최악 산불, 천년 만의 폭우 동시에…선진국 향한 ‘기후복수’
캐나다 환경부의 선임 기후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이번 폭염의 이른 시기와 강도, 지속성을 볼 때 기후변화를 부르는 지구온난화에 책임을 돌릴 수 있다”며 “폭염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제는 인간과 관련된 요인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캐나다 서부를 덮쳤던 열돔은 미국 서남부까지 진출하며 7월9일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의 기온이 54.4도까지 올라갔다. 이는 사흘 뒤 발생한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캘리포니아 주에선 가장 강력했던 산불 ‘딕시’(Dixie fire)의 단초가 됐다. 소방력 총 동원에도 잡히지 않던 딕시 산불은 발화 후 3개월이 지난 10월25일에야 완전히 진압됐다.
미국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폭염에 의한 산불 피해가 보고됐다. 그리스는 1987년 이래 34년 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러시아 시베리아는 150년 만에 최고 폭염 피해를 받으며 '동토가 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온과 건조함에 시달렸다. 이 와중 발생한 산불로 북극이 역사상 처음으로 산불 연기에 덮였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쿠글리에리 마을이 산불피해를 입어 양들이 마을 도로변에 죽은 채 쓰러지는 등 쉽게 이동하기 어려운 대형 가축들이 화마에 직격으로 당했다.
같은 시각 독일과 벨기에 일대 등 서유럽에선 ‘1000년 만의 폭우’(우베 키르셰 독일 기상청 대변인)가 내리며 곳곳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특히 7월14일부터 이틀간 집중적으로 내린 비로 180명 이상이 사망했다. 라인란트팔츠주의 마을 진치히에선 7m 높이의 급류가 장애인 요양시설을 덮치며 1층에서 잠을 자던 장애인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럽의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에도 지구 온난화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가을:전세계 85%가 기후 고통 사정권…굶주린 아프리카선 쿠데타
지구온난화는 인간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 지난 10월11일(현지시간) 기후 관련 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미트 체인지(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된 독일 메르카토르 기후변화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미 전 세계 인구의 85%가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로 폭염과 폭우, 가뭄 등 고통을 겪고 있다.
토드 켈스톰 호주 국립대 공중보건학 교수는 “일 년 중 높은 기온을 보이는 날이 늘고, 그 강도도 심해짐에 따라 열대 및 아열대에 사는 전 세계 인구 3분의 2가 이런 현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며 “수백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건강을 위협받게 된다”고 경고했다.
아프리카에선 가뭄과 홍수 등으로 흉작이 계속되며 기후변화에 따른 정치적 혼란마저 가중되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기아의 60%가 분쟁지역에서 발생하는데, 여기엔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식수 부족이 재해-흉작-식량부족으로 연결되는 ‘빈곤의 악순환’이 작용한다.
지난 11월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곳은 수단과 기니, 차드, 말리 등 4곳에 달한다. 마다가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에서도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대부분 기후변화와 기아를 겪는 나라다.
겨울:머리 맞댄 세계 정상들, 투발루의 침몰 막을 수 있나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8)는 COP26에 대해 “요약해줌: 어쩌고저쩌고(Blah, blah, blah.)”라며 “‘작은 한 걸음이지만 올바른 방향이다’, ‘어느 정도 진보를 이뤘다’, ‘느린 성공이다’ 같은 말은 패배와 같다”고 혹평했다.
이번 COP26에선 남태평양 중앙에 위치한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수중 연설을 하는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우리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며 “바닷물이 항상 차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말뿐인 약속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인구 1만2000명의 투발루의 육지 고도는 평균 해발 6피트 6인치(약 2m)에 불과하다. 바닷물이 매년 거의 0.2인치(0.5cm)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에도 기후 변화로 인한 전대미문의 자연재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주말 미국 중부를 강타한 토네이도는 이미 88명의 희생자를 냈고,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현지에선 사망자의 수가 100명에 달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가장 피해가 컸던 켄터키주의 앤드루 버시아 주지사는 “여러분은 아마 내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괜찮은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문 같은 건 없다. 문제는 사람들이 수천 채의 구조물 위 수천 개의 잔해 속에 있다는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이번 겨울 토네이도의 원인으로도 급격히 따뜻해진 기온이 꼽힌다. 빅터 겐시니 노던일리노이대 대기과학 교수는 “겨울철 비정상적으로 높은 온도ㆍ습도로 인해 극단적 이상 기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번 폭풍우는 세대(약 30년 주기)를 넘어선 역사적 사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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